Myanmar, bagan
이른 새벽 바간에 도착했다. 미얀마에서 다른 곳은 가지 않더라도 이곳만은 꼭 가야 한다는 바간, 나 또한 가장 기대했던 바간. 버스에서 내려 바간 시내로 들어가는 봉고에 올라탔다. 이 봉고는 우리를 시내까지 데려다 주기도 하지만 바간 지역 출입 비용 지불을 위한 장소를 피해가지 못하도록 해주기도 한다. 도시 출입 비용이 있다니 세상에. 심지어 매우 비싸다. 바간 대부분의 장소는 이 표 없이도 구경이 가능하고 특정 몇 곳에서만 이 표가 필요한데 사실 그곳도 관리가 허술하기 때문에 필요가 없는 건 사실이다. 주변 지인이 바간에 갈 일이 있어 알려달라면 피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지만 비용 지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바간은 그냥 다른 세상이니까. 바간은
지금의 나를 그대로 과거 시간으로 데려다 놓은 곳
미리 예약한 숙소에 들어간 나는 11시 체크인이라는 소식을 듣고 현기증이 났다. 방은 분명 비어있는데 주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짐을 맡겨놓고 아침도 먹을 겸 길을 나섰다. 아침 6시라 그런지 주변은 깜깜했고 문을 연 음식점이 거의 없었다. 한참을 가서야 나는 길가 노점 같은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커피를 주문했는데 미얀마 스타일의 커피. 말로 형용하기 힘든 맛인데 주변에 현지인들은 다 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주문한 볶음밥을 먹고 나와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저씨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하고 갔다. 살짝 당황스러우면서 웃긴 상황.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한참을 기다려 체크인하고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잠에 들었다.
오후쯤 일어나 E-바이크를 빌리러 나갔다. 바간은 환경보호를 이유로 외국인들에게는 연료 바이크를 빌려주지 않고 E-바이크만 렌트한다. 덕분에 오토바이 소음이 좀 적어서 좋다. 숙소 사장은 죽어도 5000에 안된다고 해서 주변 인심 좋아 보이는 사장에게 빌렸다. 그리고는 바로 슝슝 달려 주변을 돌아다녔다. 먼저 둘러본 곳은 Shwezigon Pagoda.
온통 황금빛으로 이루어진 템플은 너무나 빛이 났다. 한 가지 문제라면 맨발로 다녀야 하는 이곳이 한낮의 빛으로 내 발을 익히고 있다는 것. 그래도 이제는 맨발로 다니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전엔 찝찝해서 망설였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뒷길을 통해 나오는데 한 여자분이 꼭 봐야 하는 것이 있다며 나를 인도했다. 왠지 돈 달라는 것 같아 의심했지만 진짜 있는 것 같아 따라갔는데 역시나. 구경시켜주더니 돈을 달란다. 내가 줄 것 같은가 절대 안 주지. 구경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근처의 Kyan-Sit-Thar Umin. 처음에는 Cave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막상 가보니 동굴은 아니고 템플이었다.
이곳을 보고 나니 시간이 어느덧 저녁을 향하고 있었고 E-바이크 특성상 7시까지 반납을 해야 했기에 돌아가는 길에 잠시 작은 길로 빠져보았다. 그곳에서 발견한 건 예상치 못한 작은 마을. 작은 마을의 중앙으로 보이는 곳에서 학생들은 대나무로 만든듯한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어린아이들은 그 옆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즐길 수 있는 거라곤 '공' 뿐이었다. 물론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의 스마트폰이 아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도시 전체가 유적지인 바간을 보러 오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저 돌일 뿐일까?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을까? 의문이다.
다시 마을을 떠나 나오는 골목에서 마주친 덩그러니 놓인 집 옆에 소 4마리 정도가 있었다. 소에게 다가가니 소 주인이 나와 그들이 하루에 얼마나 우유를 생산하는지 값은 얼마인지를 소개해주었다. 참 친절도 하시지. 몇 마디 나누고 나와 충전을 위해 오토바이를 반납하고 오전에 갔단 그 식당을 찾아 다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복귀해 잠을 잤다.
일출과 일몰이 유명한 바간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바이크를 다시 받고 가로등 조차 없는 길을 지나 일출 포인트로 유명한 곳을 향했다.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한 바간의 새벽길은 상당히 위험했다. 도로 중간중간 파여있을 뿐 아니라 언제 동물들이 출몰할지 몰랐다. 시속 30km 달려 30분 만에 도착한 그곳은 이미 외국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걱정은 비가 올 듯 가득 찬 구름이 일출시간에 맞춰 지나갈지였다.
역시나 가득한 구름 속에서 태양은 볼 수 없었다. 그저 구름 너머로 해가 떴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을 뿐. 날씨 탓인지 유명한 열기구도 뜨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의식 중에 발을 향한 내 시선에서 상처 투성이이고 까맣게 탄 발이 들어왔다. 두 번째 발가락에는 발톱이 없었고 선명하게 슬리퍼 자국이 나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기분이 잠시 묘했다. 돈을 아끼고자 숙소로 복귀해 조식을 먹고 올드 타운과 뉴바간을 보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먼저 방문한 곳은 Shwe lake too. 이름이 맞는지 모르겠다. 사실 바간에는 너무 많은 템플이 있어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하나하나 이름으로 구별하지 않으면 모습만으론 분간이 어려워 갔던 곳을 또가기도 한다. 그래서 방문한 곳마다 나올 때에는 항상 이름이 표기된 안내판을 찍었는데 못 찍은 것도 상당히 많다.
둘러보는데 입구 오른쪽에 눈길이 가는 내 키보다 작은 문하나가 있어 들여다보니 계단이 있었다. 올라가도 되는 곳인가 싶어 올라가 보니 템플 상단의 바깥과 연결돼 있었다. 새로운 길을 발견한 듯한 기쁨과 그곳에서 바라본 전경은 참 좋았다. 조용하니 차분하게 만드는 분위기.
그리고 방문한 다음 장소. 규모는 상당히 컸지만 안에는 사실 크게 감흥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에서 뜻밖의 여승(?)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참 흔치 않은 기회일 텐데 운이 좋았다. 뭐라 해야 할까 여승들을 이끈 리더?라고 해야 하나 한 여성분이 이 사진을 찍는데 자꾸 앞에서 어슬렁 거려서 사진마다 그분의 뒷모습이 담겨 매우 매우 짜증이 났지만 사실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수 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나마 한 장 건질 수 있었다.
다음은 바다 근처에 있는 Bupaya로 향했다. 날씨가 조금씩 안 좋아 짐을 느끼고 얼른 둘러보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아주머니가 계속 새우과자를 맛보라고 하길래 먹어봤더니 너무 맛있었다. 4개에 1000짯이면 나에게는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사버렸다. 아주머니가 아주 장사를 잘하신다. 맛으로 혹하게 만들고.
이렇게 올드 바간을 둘러보고 뉴 바간으로 향했다. 뉴 바간으로 향하는 길에 멋있어 보이는 곳이 있어 오토바이를 돌려 슬쩍 구경하고 나오려던 찰나에 한 소녀가 다가와서 '저 위에 올라가면 좋은 뷰가 있어' 라고 말했다. 그 말에 또 혹해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올라갔고 그 소녀가 따라오면서 조심히 올라가라는 둥, 어디로 가라는 둥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내가 내려올 때 그 소녀는 나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돈을 요구했다. 어쩐지 왜 친절한지 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들의 친절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지나가다 들렸던 다른 곳에서는 한 소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돈을 보여주며 나에게 자랑을 했다. 맞장구를 쳐주며 좋겠다고 했더니 마침 한국돈이 없다며 한국돈을 달라고 했다. 정말로 한국돈이 없었던 내가 돈이 없다고 하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볼일 다 봤다는 뜻이지. 참 씁쓸했지.
그렇게 올드 바간을 둘러보고 뉴바간을 향했다. 하지만 단지 '뉴'자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상가도 있고 음식점도 많고 카페도 많을 것이라 예상한 나를 비웃든 그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 때문에 물이 한강처럼 불어난 도로만 있을 뿐. 올드 바간을 열심히 눌러본 탓에 목이 말랐던 나는 근처 호스텔에서 수박주스를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너무 뜨거울 시간을 피해 2시부터 5시까지는 숙소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다시 일몰을 보러 나와 일몰 포인트로 향했다. 분명 출발할 때만 해도 가득 차 있던 오토바이의 전기가 목적지를 거의 다 왔을 때쯤 방전이 됐다. 헐. 목적지까지 끌고 가서 보자니 돌아올 때 너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고. 그대로 돌아가자니 그길도 멀뿐더러 다시는 일몰을 볼 기회가 없어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결론은 돌아가기로. 오토바이 반납 시간도 있고 해가 지고 나면 정말 답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 무거운 오토바이를 끌고 1시간 넘게 달려온 곳을 어떻게 돌아가느냐 이 말이다. 혹시나 끌고 가는 길에 널리고 널린 빈 트럭들이 실어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터무니없는 기대였다.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얼마나 끌고 갔을까 호텔이니까 손님들을 위해 E-바이크를 운영하지 않을까, 그럼 충전기도 당연히 있을 테니. 끌고 들어오는 오토바이를 보고 매니저가 마중 나와 무슨 일이냐 물었다. 상황을 설명하니 그는 오토바이 렌털 샵에 전화하면 된다며 오토바이 키에 달린 전화번호로 전화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오토바이를 가져온데, 여기 안자 좀 쉬고있어.' 라고 했다. 세상에. 이렇게 해결할 수 있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중간에 만났던 경찰들에게 전화해달라고 할걸. 뻔히 보이는 우리 상황을 경찰들은 무시했다. 아무튼 너무 친절한 매니저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오토바이를 끌지 않아도 됐고 30분쯤 기다렸을까 가게 주인 부부가 오토바이 1대씩을 끌고 나타났다. 분명 한 명이 그냥 교체용 배터리를 들고 오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뭐지. 아무튼 완충된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반납했고, 두 부부는 도대체 어떻게 본인들이 타고 온 1대와 우리가 탔던 방전된 오토바이를 가져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주변 슈퍼에서 라면 두 봉지와 밥을 사서 숙소로 가져와 주인에게 끓인 물을 달라고 하고 뽀글이를 해 먹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지만 맛 또한 좋으니까. 열심히 먹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 없어 그대로 정리하고 내려와 씻고 잠을 청했다.
어제 못 본 일출을 보기 위해 또다시 새벽부터 일어나 같은 장소로 향했다. 어제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기에 오늘은 구름이 없을 것이라 기대하며 길을 나섰다. 7시가 돼서도 끝내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바간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끝내 일출과 일몰을 보지 못했다.
포기하고 돌아가는 갑자기 해가 번쩍 뜬것을 보았다. 조금만 더 그곳에서 기다릴걸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 이미 지난 일 어쩔 수 없었지만 너무도 깊은 후회가 남았다. 심지어 이날 열기구까지 뜬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쉬움이 너무 남아서 일까? 바간을 꼭 다시 오고 싶다. 그토록 몽환적인 바간을 제대로 사진에 담지도 못했고 일출과 일몰, 심지어 열기구도 못 봤다. 나를 과거 시간으로 데려다주었던 바간을 꼭 다시 오고 싶다. 마치 앙코르와트처럼. 앙코르와트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간을 떠났다.
Pic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