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고 작은 이야기>
은은하게 어두운 불빛 아래서 평소 잘 마시지도 않던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시원한 맛에 꿀꺽꿀꺽 마셔라도 보겠지만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여전히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다. 뜨거우면서 쌉쌀한 그 맛을 굳이 천천히 머금다가 느껴야 하는 지를 잘 모른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킨 이유는 딱 하나였다. 머금는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낸 시간 때문이었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 기다려보고자 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다. 정당한 이유로.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쓴맛 나는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시간이 흐를 길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길 기다린 건지 그 사람이 나와주길 기다린 건지 그렇지 않다면 둘 다인 건지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다.
마음을 열지 않겠다는 다짐, 진심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다짐, 아니 애초에 진심 따윈 믿을게 안 된다는 신념이 허물어졌다. 신념이라는 것이 어렵게 가졌을 텐데 이렇게도 소소한 것들에 무너지는 것이 허무하면서도 기대감이라는 것도 있었다. 혹여 이 약속에 그 사람이 나온다면 어떤 관계로 진전이 되는 걸까 하는 기대감과 한편으로는 확신이 없는 앞날에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약간의 바람도 섞여있었다.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되고 나아가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관계가 성립된다는 말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삶이 바뀌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반밖에 마시지 못한 아메리카노가 미지근하지도 않았다. 지금, 아메리카노의 온도가 마음의 온도라면 몇 도나 될까.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과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던 나의 존재감은 슬프다 못해 처참함이 느껴졌다. 어떤 직접적인 말보다 체감으로 느껴진 "너는 나에게 이 정도는 아니야"하는 진실을 나는 눈치가 빨라서 너무 쉽게 알아버렸다. 대화에 집중했어야 할 어느 날, 우리의 만남에서 대화도 나도 중요해 보이지 않던 모습이 많은 것을 설명해주었다. 그럼에도 사람은 생각보다 희망을 기대한다. 해서 모든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에도 굳이 마음을 주면서 기대를 해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좋아한다, 사랑한다 관계를 이어가는 결정적인 말을 듣지 못했는데 일방적으로 성급하게 마음을 건네었다. 역시 소유는 상실의 시작이라는 구질구질한 핑계가 통할리는 없었다. 왜 소유한 적도 없는 것에 상실감을 느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면서 왜 사랑도 아닌 사랑인듯한 감정으로 느끼는 상실감은 혼자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직접 겪은 바로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몇 모금 남은 아메리카노를 두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일방적이고 불안하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 관계에서도 슬며시 걸어 나왔다. 아메리카노가 뜨거우면서 식는 동안 나는, 만났다 그리워하고 이별하는 모든 과정을 겪었다.
이 밤, 나는 설명되지 않는 상실감을 느꼈다. 나에게 너라서 가능한 것들이 너에게는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 외에는 딱히 얻은 것은 없었다. 창가에서 바람 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늘리고 싶었던 기다림의 시간이었는데 평소보다 더 빨리 식어갔다. 우리의 관계가 식은 아메리카노의 온도라면 몇 도쯤일까 다시 생각했다. 뜨거웠던 아메리카노는 나의 온도였다면 식은 아메리카노의 온도는 너의 온도였을까? 서로 맞지도 않던 온도를 허공에 식어가는 시간을 맡겨보았다. 어쨌거나 좋아하지도 않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시간은 정말로 사랑은 맞다고. 식어가는 시간 동안 불안하게 기다렸던 마음도 진심이었다고. 끝내 나타나진 않았지만 나는 이별을 했다고.
카페를 나서면서 생각했다.
확신이 없을 때는 신념은 함부로 허물 것이 되지 못한다고. 그러니 어떻게든 사랑은 피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