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푸레나무 식탁 Jan 11. 2019

사교육 일기 -SKY캐슬과 수학 학원

<SKY캐슬>이 화제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자식을 서울 의대에 보내야 하는 대한민국의 상류층 가족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야기. 입시 코디네이터에게 수십억을 내면서 아들을 서울 의대에 보내지만 가정은 파탄나는 이야기.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부를 대물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지만 실상은 더 강렬하다. 현실과 막장을 오가며 온갖 술수와 계략이 넘쳐나는 데, 그 모든 이유가 알고보면 ‘자식을 서울 의대에 보내기 위해 = 부모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이기에 더 잔인하다.

이제 5학년에 올라가는 딸을 키우며 <SKY캐슬>을 보는 심정은 만감이 교차한다. 극 중 한서진(염정아)처럼 자식을 서울 의대에 보내고 싶은 명분은 없지만 사실 내 자식이 서울 의대에 간다면 싫다고 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오직 서울 의대에 보내기 위해 저렇게 애를 쓰는 한서진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열정적이고, 지혜로우며(?), 처연하고, 사실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부모가 저렇게까지 노력한다면야 그 자식이 서울 의대에 가는 것이 당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문득 드라마를 보다가 나를 되돌아 본다.

나는 저렇게 자식을 서울 의대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가?

물론 우리 딸은 의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바꿔보자. 그렇다면 나는 자식을 자기가 원하는 꿈을 위한 최고 대학, 최고 학부에 보내기 위해 한서진처럼 노력하는가?


초등 5학년을 맞이하는 겨울 방학을 앞두고, 드디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처음 키워보는 내 자식이 드디어 초등 고학년을 맞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계획적이지 못한 사람이라 자식을 낳고서도 따로 별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저 밝고 건강하게 자라라라는 생각으로,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아이로 크게 하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었다. 삶의 즐거움을 알고, 소소한 일상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행복한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돌이켜보니 딱히 아이에게 해 준 것이 없다. 흔히 말하는 유아 사교육 시장에 뛰어 들어보지도 않았으며, 온갖 학원과 각종 체험들을 적당히 무시하며 잘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을 맞이하는 부모의 마음이 되어보니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 이거 우리만 신나게 놀고 있었구나.’


수포자가 나오는 첫 시기라는 5학년을 맞이하며 아이의 수학 학원을 검색한다. 온갖 수학 공부 방법을 인터넷으로 서칭하고, 수기를 읽고, 비법을 메모하고, 우리 동네 유명 수학 학원 리스트를 체크하고, 수학 학원에 전화를 하고 나는 첫 번째 충격에 휩싸인다.

아, 모두다 선행을 하고 있었구나.

어느 학교 몇 학년인가요? 다음에 나오는 선행은 어디까지 했나요? 질문은 이미 이 업계에서 당연한 것이 되었고. “선행 하지 않았는데요.”를 말하는 엄마는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 자신감이 하락한다.

이미 평범한 아이들은 지난달부터 5학년 수학 선행이 상당히 나가 있고, 이 아이는 평범한 반에 들어가기 위해서 보충을 해서 합류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놀라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직, 방학도 시작하기 전에 엄마는 늦어도 11월에는 초등 수학 학원 리스트를 들고 전화를 돌리고 있었어야 됐다는 것이다.


놀란 엄마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다시 정보를 찾아본다. 내 아이를 받아줄 평범한 학원을 찾으며 여기저기 지역 카페를 기웃거리다 또 다른 충격을 받는다. 이름하여 “상위 1% 카페” 이름만으로도 나를 정색하게 만든 이 카페는 그 가입 절차 또한 어려워 엄마를 당혹시켰다. 몇 번의 출석과 댓글, 자기소개와 가입인사를 제대로 작성해서 일정 시간이 지나야만 가입 승인이 되는 카페였다. 급한 마음에 번번이 써야할 것을 쓰지 않고, 봤어야 하는데 놓친 공지로 가입이 계속 거절되다 어렵게 들어간 카페에는 또한 이제껏 보지 못한 신세계가 있었다. 그야말로 거긴 “상위 1% 카페” 였던 것이다.

상위 1%로 살고 싶은 열망도 없었고, 상위 1%였던 적도 없던 엄마에게 상위 1% 카페의 아이들은 우리아이를 평범하다 못해 모지리로 보이게 만들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내 딸이지만 “상위 1% 아이들”과 비교하면 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물론,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이미 이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중학 수학은 기본으로 하고 있었고, 영어는 이미 수능을 치고도 남을 실력이라 유지만 해도 되는 수준, 그 와중에 독서도 좋아하고 개인의 반짝이는 특기도 여러 가지 있는 정말 엄친아, 엄친딸들이 한 둘도 아니고 카페에 가득 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면 영어는 다 끝내놨으니 이제 수학을 열심히 달릴 때에요”라는 댓글을 보며 짬짬이 “상위 1% 카페”를 접속하는 엄마의 불안을 아마 우리 딸도 눈치 챘으리라.


불안은 엄마를 움직이게 하여, 처음으로 학원 쇼핑에 나섰다.

서울은 아니지만 교육열 세다는 00학군 중심으로 들어선 학원가에서 어찌 단 하나의 수학 학원을 고를 수 있을까? 이름도 가지가지, 교재도, 레벨도, 선생님도, 교육비도, 위치도 서비스도 제각각이며 또 어찌보면 비슷하기도 한 그 학원들에서 내 아이에 맞는 단 하나의 학원을 내가 고를 수 있을 것인가? 골랐다고 한들 그것이 정답인가? 이 학원이 단 하나의 학원인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선배 엄마들과 동기 엄마들에게 물어봤으나 이것은 아이마다 다른 문제, 또 부모마다 다른 문제, 정답도 없다. 어차피 이것은 나 같은 엄마가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는 확신만이 강해질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게임에서 다들 원하는 아이템과 학원을 찾아 그렇게 열심히 보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들 무엇을 믿고, 학원을 보내는 것인가?

아이의 실력 향상? 믿을 수 있는 강사진? 다들 확신하는 지 정말 알고 싶었다.

사실, 이게 초등 5학년 아이의 수학 학원을 하나 고민하며 할 수 있는 고민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엄마가 예민하다, 엄마가 의심이 많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초등, 중등, 고등을 지나야하는 긴 학업의 터널에서 학원 선택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인데 말이다.


지난한 수학 학원 원정기의 끝은 보잘 것 없다.

사실 부모가 똑똑하고, 시간도 있고, 욱하지 않는다면 아이의 좋은 수학 선생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5학년 수학 응용과 심화 문제를 답지를 보고도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모르는 수준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문제가 너무 어렵다. 사실 막히는 문제는 이제 답지를 같이 봐도 아이가 더 먼저 이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이 앞에서 수학 선생님으로서의 카리스마는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나보다도 잘 하는 아이를 보며 답답한 마음이 자꾸 든다. 이렇게 하면 빨리 할 텐데, 저렇게 하면 더 좋은데 하는 수많은 잔소리들이 마음에 쌓여, 말은 하지 않아도 기분이 안 좋아지는 엄마의 기운이 아이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아, 수학 학원 가는 학원비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예쁜 것도 사자 엄마도 잘 해 볼게 라고 구슬렸으나, 딸은 엄마와 공부는 안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수백개의 학원에 하나하나 전화를 하지는 못 했으나 서너군데의 학원에 전화하고 상담을 하고 커리큘럼과 학원의 분위기를 봤으며 원장 선생님의 교육관을 들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도 있었으나 수많은 사전 조사와 상관없이 그냥 직감으로 한 군데 학원을 선택했다,

그리고 방학과 함께 다음주부터 이제 아이도 수학 학원 다니는 학생이 된다. 월금에는 수학 학원을 가고, 월수금엔 영어 학원을 간다. 하루는 엄마와 독서 수업을 하고, 짬짬이 발레와 피아노 학원을 간다. 다른 아이와 비교할 때 어마어마한 스케쥴이 아니란 것도 안다. 하지만 방학 스케쥴을 학원 스케쥴로만 짜 둔 엄마 마음이 어쩐지 미안하다. 그냥 집에서 쉬라고 할까, 실컷 책이나 읽고 신나게 놀자고나 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 이번 방학을 그냥 보내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남들 다 보내는 수학 학원 하나 보내며 왜 이렇게 생각이 많나, 하는 이들도 분명 있으리라. 하지만 이것은 그저 걱정많은 엄마인, 나만이 겪는 문제인 것인가? 현관만 나가면 늘어서 있는 온갖 학원들 속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제대로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어차피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안 한다는 말도 사실일 것이나 아직 아이가 할 놈인지 안 할 놈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렇다 엄마는 40을 넘게 살고도 이렇게 확신이 없다. 이 수많은 정보가 많은 세상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서 어떤 삶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삶은 성공하고, 어떤 삶은 실패했다 말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수학 학원의 선택이 잘못됐다면 그것은 실패한 방법이고, 실패한 공부였다 말 할 수 있겠는가? 어차피 인생은 확신을 갖고 되는 것이 아니리라. 이것은 그냥 사교육을 대하는 어느 엄마의 기록이다. 부디 나처럼 어쩌지도 못하는 부모들에게, 여기 당신과 같이 갈팡질팡하는 또 다른 이가 있었다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두서 없이 적은 글이다.


그래요, 우리가 학원 하나 잘못 선택했다고 그렇게 쉽게 망하진 않을거잖아요? 그리고 뭐 학원이 대순가요! 김주영 선생님 없이도 일이삼등 하는 혜나도 있잖아요. 그리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작가의 이전글 십 년 만에 쓰는 사적이고, 공적인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