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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May 02. 2019

식탁 일기 - 두서없는 일주일

#1 . 가양대교 앞에서 끼어들기 다 하나요?

겨울 끝, 봄 시작 이벤트로 친구가 빌려 둔 카라반에서 불금을 보내기로 했다. 딸애 수학 학원이 땡 하고 끝나는 6시에 뿅 하고 출발했더니 금요일 퇴근 시간의 정체를  그대로 함께하며 일산에서 의왕까지 세 시간 만에 도착했다.  그래, 금요일 퇴근길의 정체는 어쩔 수 없지 내심 릴렉스 릴스 하며 운전하긴 했지만 세상에, 가양대교 앞에서 한 시간은 정말 최악이지 않은가? 가양대교를 타기까지 300미터를 한 시간 동안 서서 기다리다 보니 욕이 욕이. 차가 많아서 기다리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남들 다 줄 서서 가고 있는데 중간중간 자꾸 끼어드는 차 들 때문에 나는 또 여기서도 호구가 된 것인가? 하는 생각에 운전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끼어들기 금지 차선에서 왜 자꾸 끼어들기를 하는 것이며, 나 하나쯤은 하고 자꾸 끼어드니 300미터를 한 시간이 걸려서도 지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같이 줄을 서 기다리는 차들도 지쳐서 중간에 에잇 하고 옆 차선으로 나가 다시 끼어들기 시도를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묵묵히 기다리며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쭉 갈 것인가, 다시 나가서 전진 후 끼어들 것인가?를 수만 번 고민하다가 양심과 규칙을 지키는 운전자가 되고자 묵묵히 기다렸으나 양심과 규칙을 지키는 운전자는 64KM를 세 시간 만에 도착하고, 탈진 상태가 되어 모처럼 불금 캠핑에서 12시 취침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2. 엄마 학교보다 농사가 훨씬 재밌어

일만 하면 진수 성찬을 차려주는 친구네 별장

이왕 경기 남부까지 내려온 김에 다음날은 친구네 별장이 있는 충주를 들러 봄맞이  텃밭 농사에 고기도 구워 먹자는 야심 찬 계획으로 친구네 어머니 별장으로 출동했다. 전날 워밍업 세 시간 운전으로 토요일 오전 정체는 가뿐하게 이겨내고, 충주 도착. 사방 산자락 안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봉황리 마을에서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겨우내 자란 잡초와 냉이 시금치도 뜯어주고, 냉이와 시금치를 다듬고, 텃밭 엎고 갈아 모종 심기까지가 오늘 할 일.

워낙에 뭘 키우거나 돌보는데 재능이 없는 관계로 베란다 텃밭 한 번 해보지 않은 내겐 모든 일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목표지향형 인간이라 눈에 일거리가 있으면 조바심이 나는 관계로 보이는 족족 일을 해치우니 친구네 가족도 일꾼 모녀가 왔다며 분에 넘치는 엄청난 환대를 해주셨다. 딸애는 냉이 뽑고, 잡초 정리하고, 삼지창으로 텃밭 다 다듬어 모종 심는 것 까지 몇 번 하다가 힘들다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웬걸, 너무나 재미있다며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땡볕 아래 농사일을 즐기고 있는 딸애는 “엄마, 학교보다 농사가 훨씬 재밌어.”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지렁이 같은 거 질색하는 주제에 여기선 일일 농부라고 장갑 낀 손으로 지렁이도 척척 만지고, 지렁이는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동물이라며 여기저기 재배치(?) 신공도 보이는 너, 낯설다.  게다가 집에선 입에도 안 대는 각종 나물들을 친구 어머니가 바로바로 맛깔나게 무쳐 주시니 제비 새끼처럼 입 벌리고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니, 아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텃밭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 귀한 시간이었다.  물론, 친구네 온 가족의 환대와 배려로 얻은 일일체험이고, 1회성 체험에서 오는 노동의 즐거움이겠지만 내년 봄쯤은 손바닥 만한 텃밭이라도 분양받아 농사가 재능인 딸의 소질을 개발해보기로.

덧, 둘 다 엄청나게 즐거운 농사일을 한 대가로 다음날 아침부터 온 몸이 푹푹 쑤신 딸은

하루 만에 농사가 재능은 맞는 거 같은데 체력이 안 돼서 못 할 것 같다는 고백을 한다. 그러니 “ 농사나 공부나 체력은 기본이다. “라고 알려줌.


#3. 엄마 이제 수학 학원 그만 다닐래 - 진실 찾아 삼만리

월요일, 수학 학원을 마치고 온 딸이 “엄마, 나 이제 수학 학원 그만 다닐래.”라고 선언했다.

아니 왜? 이제 5개월, 잘 다니고 있는 거 아니었니?라고 물었더니, “ 뭐 굳이 학원 안 다니고 혼자 해도 될 것 같아.”라는 시크한 대답과 함께.  그래 혼자만 한다면 학원 다닐 필요가 뭐가 있겠니 엄마 아빠는 네 의견을 존중하겠다. 그래도 이유나 알아보자.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어디서 어디까지 풀어라 하고 나가 계신 동안 자기와 친구가 너무 떠들어서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딸애 말로는 자기는 좀 그만 떠들고 싶은데, 친구가 떠드는데 같이 안 떠들 수도 없어서 떠들다 보니 시간만 흘러가고 (철저히 자기 입장)  그러느니 집에 가서 혼자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 얘길 듣더니 딸 바보인 아빠는 “그래? 너는 역시 사리분별이 명확하구나! 아빠도 어릴 때 학원 다니면 자꾸 애들이랑 놀고만 와서 그 시간이 얼마나 찝찝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논 것도 아니고 안 논 것도 아니니 차라리 집에 와서 마음만 먹으면 너 혼자 잘할 수 있다. 그 시간이 문제인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 대단하다.”며 당장 학원을 그만두라며 옆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한 술 더 뜨는데, 나는 도대체 어제까지만 해도 즐겁게 가던 수학 학원을 왜 돌연 오늘부터 안 가겠다고 하는지 그 극과 극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나 하고 혼란스러웠다.

일단은 네가 학원을 안 가고 싶다는데 내가 억지로 보낼 수도 없는 일, 이번 달 교육비는 완납했으니 남은 기간은 잘 다녀보도록 하고, 학원 분위기가 문제가 있으면 엄마가 선생님과 상담을 해보겠다로 마무리한 그날 밤. 잘 시간이 다 됐는데 갑자기 울먹이며 “엄마, 나 그냥 내일부터 수학 학원 안 가면 안 돼?”라고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촉이 이상하다.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선생님께 호되게 혼날 일이 있었니? 아님 친구랑 싸웠니? 이거 저거 물어봐도 그저 눈물만 뚝뚝. 분명 할 말은 있는데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엄마는 또 큰 일 났구나 싶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이다.  그리하여 어르고 달래서 그래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하니, “ 흑흑.. 오늘 학원에서 원장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는데, 밑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사 왔거든. 근데 흑흑.. 가게에 아이스크림 통이 문이 안 열려서 내가 손잡이를 좀 세게 잡아당겼거든. 근데 흑흑. 아이스크림 통 손잡이가 원래 흔들리고 있었는데 내가 잡아 다니니까 이게 살짝 빠지는 거야. 근데 이거 내가 그런 거 아니거든. 너무 무서워서 내가 손잡이 다시 꽂아 놓으니까 다시 꼈는데 이게 아까처럼 흔들리는 거야.. 흑흑 근데 내가 그런 건 아닌데 아저씨가 나보고 그랬다고 하면 어떡해?

아저씨가 흔들려서 이상하다고  CCTV 돌려보고 나 찾으러 오면 엉엉엉”

뭐라고 대체 뭔 소리야? 왜 거기서 갑자기 아이스크림 통이 나와? 자꾸 울면서 말하니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다시 어르고 달래서 물어보니 아이스크림 통 손잡이가 헐거워서 내가 손잡이를 세게 잡아당겼는데 손잡이가 빠졌다. 그래서 다시 꼈는데. 그래서 망가졌으면 어떡하지? 의 이야기. 하아~ 그랬구나. 놀랬구나. (여기까지 마음 읽어주기)를 한 후, 망가진 거 같았으면 아저씨한테 바로 말을 하지 그랬어?라고 하니 아니야 원래 그랬어. 내가 망가뜨린 건 아닌데 아저씨가 나라고 의심하면 어떡해 어흑… 그리고 무서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어. 엉엉엉. 그래서 그 편의점 아저씨를 만나면 자기를 범인으로 오해할까 봐 수학학원으로 가기가 너무 싫다고 엉엉엉.. 아 그럼 수학 학원 안 가겠다는 진실은 편의점 아이스크림 통 때문이었니? 했더니 그건 당장 가기 싫은 이유 중의 하나이긴 했는데, 그거 때문은 아니야 흑흑 수학 학원에서 ** 가 자꾸 떠들어. 나도 안 떠들었다는 건 아니야. 엉엉엉.

대충 종합해보자니 수학 학원을 가기 싫은 이유는 아이스크림 통 사건에 대한 두려움과 친구랑 너무 떠들고 난 후 죄책감의 콜라보네이션이구나. 그래, 일단 아이스크림 통 사건은 문제가 생기면 사과하고 보상하면  되는 거니 걱정하지 말거라, 너는 다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이 되면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말하는 게 더 좋다는 것을 알았겠지? 수학 학원 분위기는 선생님과 상담해보도록 하자.로 결론을 내리긴 했다. 엄마는 여기서 잠깐, 자기 주도 학습 아이가 되어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생긴 것이라 기대했는데, 진실은 역시 저너머 어딘가에 있었고. 그간 수학 학원에서 돈 버리고 시간이나 버린 것이 아니길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바라본다.  


덧.. 하아~ 그래서 조만간 수학 학원을 또다시 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학원을 안 다니겠다면 하아~ 내가 수학 공부를 또 해야 하나~ 하아~ 수학 공부는 진짜 수능과 함께 끝난 줄 알았는데… 수학 고민, 애 하나도 키우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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