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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May 09. 2019

여행 일기 - 봉하마을, 감천마을, 국제시장

봉하마을 갈래?라는 옛 동료 언니의 카톡.

그렇다면 언제?

5월 , 4,5,6 연휴에.

그 빨간 날에? ( 역시나 나도 특별한 계획이 없다. )

그래, 콜!


봉하마을이라.

한 번쯤 가봐야지 했으나 너무 늦었다 생각했고, 애들까지 데리고 가면 너무 슬플 거 같긴 한데, 그래 말 나온 김에 한 번 가보자, 이렇게 누가 옆구리라도 찔러야 움직이게 되니까.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두 시간 반에 진영역에 내렸다.

지로 보면 거의 남쪽 끝인데, 이렇게 금방 도착하는구나. 거의 5-6년 만에 탄  KTX는 쾌적했고, 이제 좀 커서 말 좀 통하는 딸과의 기차 여행은 해볼 만한 것이기도 했다.

네 살쯤 같이 탔을 때는 옆 칸에도 가보자, 창 밖을 보자, 화장실도 가보자는 녀석 때문에 특별히 KTX가 엄청 편하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나란히 앉아서 챙겨간 간식을 순서대로 알아서 꺼내 먹고, 중간엔 수학 숙제까지 한다고 문제집을 펼치는 너를 보니 감개가 무량하구나. (물론 다섯 문제 정도 풀고 다시 넣긴 했으나, 그 잠깐 황홀했었다. ㅋ)


편안하게 앉아서 진영역 도착, 렌트 한 차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봉하마을이 있었다.

엄청 시골이기도 했고, 이런 화창한 연휴에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우리말고도 많아서 생각만큼 쓸쓸하지 않아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마을 초입 카페에는 문 블랜딩을 팔고 있어서, 부암동에서 한 번쯤 마셔보려 했던 문 블랜딩도 마셔보고, 두 시반 예약한 해설 투어 전에 마을을 살짝 둘러보기로 한다.

봉하마을은 노 대통령이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하고 신접살림을 차리고,  고시 공부를 하고,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기억 속엔 밀짚모자를 쓰고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던 노 대통령의  선명한데, 생가와 사저만 남아 있고 반겨 주는 사람이 없으니 자꾸 아린다.  노 대통령 생가와 사저를 지나면 부엉이 바위를 비롯한 아득한 산자락 아래 노 대통령 묘역이 마련돼있다. 묘역을 가는 길엔  추모의 글 1만 5천 개가 바닥에 새겨져 있고, 외롭고 허망한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고 있다.

뉴스 화면에서 보던 그 부엉이 바위를 보니 자꾸 십 년 전 그날이 생각나고, 저 부엉이 바위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언니와 나는 한 동안 말이 없었고, 아이들에겐 하얀 추모 꽃을 손에 들려 함께 기도했다.

5월이라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하필이면 묘역 옆의 잔디는 어찌 그리 파릇파릇하고, 사저 앞의 작약은 왜 그렇게 예쁜 분홍빛인지, 이렇게 화창한 오월의 어느 날, 대통령은 어떤 마음으로 이 조용한 시골 마을을 걸었을지 생각해본다.

예약된 사저 해설 시간에 다른 관람객들과 함께 사저 안을 둘러본다.  “대통령님 나오세요”라는 방문객들의 부름에 방문객들과 대통령이 같이 얘기를 나누던 담벼락을 따라 올라가면 보이는 단층집. 창이 넓고, 층고가 낮은 산자락 비탈길에 오붓하게 세워진 집이다. 손주들의 그림 스티커가 붙어 있는 유리창도 그대로, 원래 쓰던  PC와 서재의 책들도 그대로지만 적막하기만 하다.  그저 우리는 기념사진이라도 찍어 볼 수밖에.

관람을 마치고 원래는 자전거를 대여해 대통령의 자전거길을 달려볼까 했는데, 아침 6시부터 일어나 기차를 타고 오후 네시까지 돌아다녔으니 아이들은 이제 좀 침대에 눕고 싶다고, 좀 쉬게 해야 저녁에 또 놀 수 있으니 이제 숙소를 잡아 둔 김해로 향한다.



봉하 마을에서 차로 30-40분이면 도착하는 김해.

그저 작은 지방 소도시인 줄 알았는데 숙소 바로 옆에 마트에 백화점에 경전철까지 지나다니니 서울 핫플과 다를 것 없다 싶다. 오히려 서울처럼 사람이 북적이지도 않고, 적당히 한가롭고 편리한 시설들을 즐기며 사는 것은 어떨까 상상해본다.

저녁으론 김해 맛집이라는 해산물 칼국수를 먹고, 칼국순데 해산물이 해물탕처럼 들어 있어 깜짝 놀라고, 마트에서 각자 먹고 싶은 간식들을 사서 첫날밤을 보내기로 한다.



둘째 날,

작은 도시 김해 관광을 위해서 렌트는 과한 선택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아무리 김해 박물관 수로왕릉을 돌아도  도보 가능 거리인지라 렌트도 한 김에 좀 더 멀리 떠나보기로 한다. 급히 남쪽 출신 지인들에게 카톡을 해서 김해 근처에 차로 가볼만한 관광지를 수소문, 부산 출신 지인이 추천한 감천 마을, 보수동 책방 골목, 국제 시장을 돌아보기로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일찍 김해를 출발하니 40분 만에 감천 마을 도착. 부산과 김해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구나. 어제 김해에선 김해 사람들 다 어디 갔나 싶을 만큼 한적했는데, 감천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깨달았다. 김해 사람들 다 부산 가 있었나 보구나. 세상에나 동양의 산토리니 사진 한 장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감천마을까지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필이면 오르막길 공포증 있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오르막 올라가는 경사가 거의 90도에 가까웠고,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다 여기로 오는지 오르막길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상황. 악, 진심 사고 날까 봐 벌벌 떨며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주차전쟁이다. 주차장을 네 바퀴를 돌고 다른 차들과 신경전, 주차 운 없는 시추에이션 몇 번을 반복한 끝에 주차 성공. 그렇지, 이게 관광지의 위엄이지. 잊고 있었다. 오늘이 빨간 날이라는 것을.

주차는 힘들었으나 감천마을은 동양의 산토리니라 할 만큼 아기자기 알록달록 이뻤다. 물론 이제 너무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서울이나 여기나 차이나 타운이나 통영 동화마을이나 할 것 없이 국적 불명의 기념품 파는 가게들로 살짝 실망할 때쯤, 하늘 마루에서 올라가 밖을 내다보면 와~ 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한쪽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쪽으론 오밀조밀 집들이 서로 시야를 언덕에 가지런히 늘어선 모습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6.25 전쟁 후 피난민들이 하나둘 몰려들어 집을 지어 만든 동네라는데, 그 배고프고 힘든 시절에 여기를 어떻게 걸어 올라와 집을 짓고, 매일매일 이 길을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득해진다. 지금은 환골탈태해서 온갖 국적의 관광객들이 모이는 핫플이라고 하지만 전쟁을 피해 맨몸으로 부산에 와서 산꼭대기에서 시작하는 하루에 이 풍경이 보이기나 했을까, 딸애에게 아마 몽실언니가 부산 와서 살던 집이 이쯤 되지 않았을까 하며 어른다운 척을 해볼까 했으나 엄마 얘긴 들었는지 말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딱히 모르겠다.


마을 풍경에 넋을 잃고, 아기자기한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니 아이들이 더위와 목마름을 호소한다. 아이들과의 여행이란 불만과 원성이 나오기 전에 당류를 필수적으로 섭취하게 해 줘야 큰탈이 없는 법. 원랜 감천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려 했으나 거기까지 끌고 걸어가면 분명 짜증으로 화답할 것이 분명하기에 엄마의 욕심도 접어두고, 그저 눈 앞에 제일 먼저 보이는 카페로 향한다. 일단 애들 욕구불만 해결이 먼저라  감천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카페는 또 다음 기회로 미뤄둬야 하는구나. 흑.


감천 마을을 뒤로하고 보수동 책방 골목과 국제 시장으로 향한다. 책방 골목은 우리야 옛 시절  추억이 방울방울 이거 저거 찾아보며 신나지만 애들한텐 그저 헌책일 뿐, 간단하게 훑어보고 국제 시장으로 향한다. 애들도 시장 구경은 재미있는지 부산서 유명한 물떡 맛도 보고, 온갖 아기자기 장난감에 간식, 구제 옷들 구경하다 짠~ 하고 나타난 피겨 가게. 레고 좋아하는 언니 아들과 귀여운 거 좋아하는 우리 딸은 여기서 얼음이 되어 피겨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상에서 젤 어려운 그중에 하나 고르기 미션에 돌입한다. 이 많은 예쁜 것 중에 하나 고르기라니 어린이날 기념으로 피규어 하나 득템하고, 다음 부산 여행에 또 방문하기로 약속.

이런저런 구경으로 점심시간을 놓쳐 부산 지인이 추천해준 냉채 족발로 점심을 먹고

맛집이라 대기하며 냉채족발 클리어. 맥주 한 잔 생각이 간절했으나 운전 때문에 낮에 금주하고 밤에 마시게 되는 여행이 되었다. 차가 원수임.

이쯤 되니 오후 4시. 송도 케이블카를 타고 석양을 보면 딱이라는데, 아이들은 이미 체력 고갈, 집에 가자고 바다고 뭐고 케이블카도 다 필요 없다고, 그러고 보니 주일이라 우리는 미사도 드려야 했기에 짧은 부산 여행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시 김해로 출발한다.


둘째 날 숙소는 한옥 체험관. 어제는 5성급 호텔에서 야경을 보고 잠이 들었으니 오늘은 고즈넉이 한옥의 정취를 느껴보자고 툇마루에 쪼르르 앉아도 보고, 한옥 구경도 하고 이불 펴고 저녁까지 누워있다 저녁 미사를 드리러 김해 성당으로 간다.

여행지에서 주일이 겹치면 여행 시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는데,  지난 3월엔 100년 된 인천 답동 성당에서 이번엔 60년 된 김해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렸다. 조용한 시골 성당이라 신자들이 많지 않았고 성당이 화려하진 않았으나 손수 주보를 받아 주고, 신자들 하나하나 인사해주시는 신부님이 계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주일 시간을 보냈다.

여행지에서 가장 큰 고민, 저녁은 또 뭘 먹나?

사실 여행지 고민 중에 제일 큰 게 그거 아니 뭐 있나?  특별한 것을 먹고 싶었으나 점심을 너 무 많이 먹었고, 소화도 안 됐고, 특별한 걸 먹으러 차로 30분쯤 가려면 아이들이 싫어할 테고 나는 그저 맥주 한 잔이나 하고 싶었으나 애들은 또 밥을 먹어야 하니 그냥 숙소 근처에서 간단히 해결하기로 한다. 간단히 해결하려고 했으나 숙소 아주머니가 추천한 삼겹살 집은 숙소 바로 옆에 있었고, 삼겹살은 어지간하면 실패하기 힘든 메뉴 인터라 배도 안 고픈데 또 너무나 맛있게 먹었구나. 배부르면 맥주 못 마시는데 ㅎㅎ..  경남 소주를 한 잔 하려 했으나 내 입엔 너무 쓰고, 삼겹살에 콩나물 구워 먹으니 꿀맛이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김광석 노래가 나오는 동네 카페에서 호가든 생맥주와 아이스 초코 라테로 하루 마무리한다.




셋째 날.

우리는 1시 45분에 기차를 타야 하기에, 내일은 학교에 가고 일을 해야 하기에 오전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로 한다. 일단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수로왕릉에 들러 김해 김 씨의 시조이며 가야의 왕인 수로왕릉을 둘러봤다. 명색이 왕릉이지만 신라의 능에 비해 아주 소박하고, 봉분 외엔 딱히 볼 것이 있진 않다. 왕릉 뒤 정원이 좋아 보이고, 나무가 울창해 한 번쯤 걸어봤으면 했으나 김해박물관 관람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수로왕릉만 짧게 보고 바로 옆 김해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사실 김해박물관은 별 기대 없이  의무적으로 들른 곳이긴 한데,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가야의 흔적을 찾아보기엔 군더더기 없이 좋은 곳이 아닐까 싶다. 서울에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있는 고대 유물과 삼국 시대의 유물이 사실 더 종류도 많고 훌륭한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워낙 방대한지라 아이들 같은 경우엔 길게 집중하기 쉽지가  않은데, 여기선 규모가 작은 만큼 집중하고 보고 나오기 딱 좋은 규모란 얘기다. 놀라운 것은 그동안 별 관심 없이 그저 신라 이웃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가야 유물이 김해에 이토록 많다는 사실이다.. 토기며 무덤이며 각종 가야 유물들이 이토록 많고, 김해 근처에 유물  출토 유적지가 한 두 군데가 아닌데 가야 역사가 많이 소외되어 있었구나 싶다. 김수로왕과 김유신, 가야금 정도로만 요약되는 가야의 역사를 김해에 와서 둘러본 것은 뜻밖의 소득이었다.


국립 김해박물관 구경까지 마치고 나니 이제 떠나야 할 때, 봉하마을 갈래?로 시작된 2박 3일의 여행은 진영 발 1시 45분  KTX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6시가 되어 마무리됐다. 신나게 놀고 오니 나에겐 엄청난 빨래와 텅 빈 냉장고가 기다리고 있었고, 딸은 못다 한 숙제에 기가질려 입을 댓 발 내밀고 이럴 거면 여행가지 말 걸 그랬다며 징징 거리며 2박 3일 중 가장 바쁜 저녁 시간을 보내며 5월의 황금연휴를 마친다.


돌아와 정산을 해보니 어머 우리 참 잘 먹고, 잘 놀았구나. 동남아 여행보다 비싼 2박 3일 기차 여행에 깜짝 놀랐지만 마음 맞는 사람과 훌쩍 다녀온 여행에 충전하고 다시 일상을 이어갈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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