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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Jul 01. 2019

식탁 일기 - 알람을 열 개 맞추는 엄마

아침 7시부터 알람이 계속 울렸다.

7시, 7시 5분, 7시 10분… 아예 포기하고 7시 30분.. 3분만 더 33분. 일어난 시간은 35분.

분명 딸은 오늘 책상 정리를 하고 학교에 간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래서 7시에 깨워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나 울리는 알람을 끄고, 5분만 더 잘래? 십 분만 더 자자 하다가 둘은 35분에 극적으로 일어났다.

딸 학교를 보내고 주문한 책상이 내일 올 예정이므로 오늘 아침에 남편이랑 기존 책상을 빼야 해 당장 책상 정리를 하고 남편을 도와 책상을 빼고 발레를 하러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잠이 깨지 않았고 정말 딱 십 분만 더 자면 세상에 제일 가뿐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십 분만 더 침대에 눕기로 한다. 십 분만 자야 하는데 알람을 맞춘다는 핑계로 스마트 폰을 들고 여기저기 들어갔다 나왔다 하니 이미 십 분이 지나있었고, 아 그럼 피곤이 풀리지 않아 정말 십 분만 자야 해 하고 다시 알람을 맞추고 누워 8시 40분, 45분, 아 50분.. 에라 모르겠다, 일어난 시간은 9시였다. 그것도 정말 겨우겨우 억지로.

다행히 남편은 바로 일어나지 않으면 나의 폭풍 잔소리가 시작될 것을 알았는지 "일어나." 라고 하자마자 바로 눈을 번쩍 뜨고 잠도 깨지 않은 채로 책상을 옮겼으나 할 일을 하고 한 숨 돌리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보니 역시나 이미 발레는 시작한 시간. 또, 십 분 늦게 발레를 하러 갔다.

계획은 7시에 일어나서 말끔한 하루를 시작하기였으나 결론은 또 이렇게, 그렇다고 할 일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끝까지 닥쳐서 "정말 더 이상 버티면 망하는 거야." 하기 직전에 끝내는 나란 여자. 하기 싫은 일일 수록 그 정도는 더 한다.


아침에 알람을 열 개씩 맞추는 습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독 아침잠이 많은 나는 학교 다닐 때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요즘은 9시 등교라지만 그때는 8시 등교여서 7시 50분까지 갔었나 뭐 그랬기도 하고, 집 앞에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라 아침마다 학교를 가려면 정말 만원 버스에 간신히 끼어 정말 압사 직전에 학교에 도착하기라도 하면 그나마 운 좋은 것이었다. 버스는 늘 만원이어서 정류장을 정차하지 않았고, 나는 버스를 늘 놓치고 지각이라고 교문을 닫기 직전에 아슬아슬 학교에 도착하는 게 일상이었다.

당시에도 알람을 오 분 간격으로 맞춰 놓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인간 알람이었던 엄마가 오분 간격으로 나를 깨우다 급기야 큰 소리가 나고, 등짝을 몇 대 후려 맞고, 이불을 다 뺏기고, 분무기로 얼굴에 물세례를 맞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일어나라 할 때 일어나면 욕도 먹지 않는 상쾌한 아침이었을 것을 욕은 욕대로 들어먹고, “알았다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안 늦었다고!!”를 외치고 엄마와 한 판하고 씩씩거리고 나오는 것으로 등교 전쟁은 마무리됐다. 중고등 시절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대학 때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정말 죽어도 못 할 일이 되어 대학 시간표는 늘 오전 시간이 다 빠져 있었고, 오후나 되어 어슬렁 학교를 기어 나왔던 그런 내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엄마라는 이유로 날마다 7시 30분이면 죽어도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 나조차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정말 최소의 책임감으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아침이라 할 것도 없는 것들을 간단히 데워주고 어서 보내고 조금이라도 누워 있다 하루를 시작해야지 하는 나와는 달리 30년 전의 엄마는 어찌 그리 새벽마다 일어나 새 밥을 하고 온 가족 먹을 아침을 차리고 도시락을 싸고,  이런 진상 딸내미를 오 분 간격으로 깨웠을까.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 학교 가기는 사실 딸보다 나에게 힘든 일이고, 고백하건대 지난주부턴 일주일에 한 번 브런치에 글쓰기도 흐지부지해졌다. 분명 나와의 약속은 1주일에 한 번이었으나 일주일을 넘겨도 쓸 얘기도 없고, 쓰기도 귀찮고,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하루만 더 있으면 정말 뭔가 대단한 얘기거리가 짠 하고 나올 줄 알았으나 역시 그런 일은 없었다. 지난 일주일 내내 미루고 미루던 일은 오늘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 더 이상 미루면 너는 너와의 약속도 못 지키는 의지박약이 되는 거야!  너는 약속을 6개월밖에 못 지키는 딱 그만큼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나는 거야!”라고 생각되기 일보 직전에 일주일을 오롯이 다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오후가 되기 전에 뭐라도 쓰고 있는 나를 돌아다보니 오늘 아침 알람 열개를 세팅하고, 열개를 끄고도 일어나지 못하는 나의 실체가 고스란히 보인다.

그래서 오늘은 닥쳐야 할 수밖에 없는 나란 인간에 대한 고백과 점점 게을러지는 나에 대한 반성이다.(돌아보니 나는 자꾸 반성만 한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를 학교 보내고 집안 싹 치우고, 운동도 하고 , 화장도 하고, 커피 모임도 하고, 심지어 새벽같이 일어나 출퇴근하는 워킹맘도 태반인 마당에 아침에 알람 열 개를 맞춰 두고 겨우 일어나 정신을 차려보는 내 모습이라니.

그러나 40년을 이리 살아왔고, 딱히 고치겠다는 의지도 없는 것으로 보아 아침잠은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쓰는 나의 글쓰기는 어째야 하나 이렇게 6개월 만에 아무것도 아닌 걸로 자체 종결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기엔 글이란 게 너무 기록이 남아 피드만 보면 날짜가 뜨는 것이  스스로의 의지가 어디까지였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니 이쯤에서 알아서 그만두긴 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오늘의 반성을 핑계 삼아 다시 마음을 다 잡아 보기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의지란 사실 얼마나 어려운 것이란 말이냐.  


덧, 아보카도 씨앗을 두 개나 담아 물에 넣어 놨는데, 이 주가 지나도록 발아의 기미가 안 보인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매일매일 아보카도 씨앗을 보는 재미로 살고 있는 요즘인데 기다림에 대한 선물로 떡잎이라도 하나 나와줬으면 좋겠다. 아보카도에게도 의지가 있다면 얼른 좀 잎을 보여주지 않겠니? 너의 마음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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