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푸레나무 식탁 Jun 30. 2020

식탁 일기 -
윗집엔 대체 누가 사는 걸까?

(층간 소음에 대처하는 소심이의 자세)

 옆집엔 백일이 갓 지난 예쁜 아기와 젊은 부부가 산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부부는 내게 ‘아기 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시죠?’라고 물었으나. 애가 우는 건 당연한 거고, 이런 귀여운 아기 울음소리가 거슬려 본 적은 없다. 가끔 현관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옆집의 닫힌 문에서 애기 우는 소리가 나면, 아이고 엄마 힘들겠네.라는 생각만 했을 뿐. 

 밑에 집에는 2학년 남자아이와 3살 여동생이 산다. 밑에 집 부부는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치기도 해서 안면을 텄다. “제가 애들 혼내는 소리가 다 들리진 않나요?”라고 아랫집에서 물어봤을 때도, 나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뭐 애가 울고 엄마가 혼내는 소리는 우리도 다를 바 없었고,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확인 해볼 필요도 못 느꼈다. 그것 또한 그리 거슬리지 않았다. 사람 사는 소리니까. 우리 집도 역시 새벽에 들어와 가끔 쿵쿵 걷는 남편이 있고, 낮에 피아노를 치는 딸이 있으며, 의자 밑에 붙여둔 방음 스티커는 왜 그렇게도 잘 떨어지는지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때, 끼익 하는 소리가 들리면 괜히 미안해질 때가 있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윗집엔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한다. 이 집에 산 지 6개월쯤 되었으니 오며 가며 만날 법도 한데,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윗집 이삿날과 집들이 때 존재감을 확실히 느끼긴 했으나 뭐 이사와 집들이는 큰일이기도 하니까. 그저 그런 생활 소음과 발 망치 소리는 간헐적인 것이기도 하고,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별 생각이 없었다.  


 지난 토요일엔 오후부터 윗집에서 쿵쿵하는 발걸음 소리가 계속됐다. 우리 집은 거실과 작은 방 하나를 튼 구조여서 거실에 앉아 있으면 윗집에서 주방 거실 작은방을 횡단하는 소리가 그대로 머리 위로 울린다. 낮이기도 하고, 늘 그런 것도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긴 코로나의 여파로 이렇다 할 외출이 없이 지내고 있는데, 이번엔 윗집의 쿵쿵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오후 시간이 지나고 어둠이 내리 깔고, 잘 시간이 되어서도 쿵쾅쿵쾅 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쿵쾅쿵쾅은 걷는 것 소리 같고, 우르르르 쿵쿵쿵쿵은 뛰는 소리인가? 애들이 있는 집 같지도 않은데 성인이 저렇게 계속 움직이나, 궁금하기도 하고, 잘 시간이 되어서까지 소리가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아 경비실에 전화를 했다. 윗집은 자기 발소리가 얼마나 큰 줄 알 수 없으니 걷는 소리가 이렇게 들리는 줄도 모르겠지. 슬리퍼를 집에서 안 신는 것 같으니 일단 잘 시간이 되었으니 조금 조심히 걸어달라고 당부할 수밖에. 경비아저씨에게 얘기하고, 그 밤에 더 이상 어필도 하지 않았다. 내가 두 시가 다 되어 잠들 때까지 쿵쿵 쿵쿵 소리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저 집도 참 잠이 없네, 토요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일요일 오전. 

어제부터 시작된 쿵쿵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주말인데 윗집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부지런하건가? 저렇게 온 집안을 다 돌아다니며 무슨 일을 하는 건가? 우리 집 식구들은 주말 내내 최대한 누워서 하나라도 덜 움직이려고 애를 쓰는 이 마당에 윗집은 이렇게도 다다다다, 쿵쿵 쿵쿵, 쿵쾅쿵쾅 온 집안을 누비는 건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애기가 놀러 왔나? 그렇다면 좀 참아 볼 수도 있는 일이고 일단 어제부터 계속되는 쿵쿵 소리에 이 정도면 윗집은 정말 얼마나 큰 소리가 나는지 본인은 모르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요일 오후 세시쯤 경비실에 전화를 했다. 낮 시간이라 인터폰 하면 기분이 나쁠 것 같기도 한데, 라는 생각도 잠시 했으나 오전부터 계속되는 쿵쾅쿵쾅의 정체라도 알면 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접 인터폰을 할까 생각하다 간소음 대처법이 생각나 경비실에 정중히 인터폰을 했다. 어제부터 뛰는 소리가 오늘까지 계속되는데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인터폰을 끊은 지 1-2분 되었을까. 천정을 둔탁한 도구로 내리찍는 소리가 열 번 정도 들리더니 발로 찧는 소리가 쿵쿵 쿵쿵 들렸다. 설마, 이거 보복인가? 하고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야이 씨발 &&*&*&*” 하는 소리가 열린 거실 창을 뚫고 들어와 내 귀에 꽂혔다. 이거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건가? 설마? 

 어제 윗집에 제사가 있어 식구들이 많이 왔다는 얘기를 경비실을 통해 듣고 인터폰 수화기를 내려놓고 몇 분후, 이번엔 관리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정중한 목소리의 직원이었다. 


 - 원래 혼자 사시는 분이라 어제 손님이 많이 온 거고 내 집에서 이 정도도 못 움직이냐고 하더라고요. 

-   아 저는 평소와 달리 너무 소리가 크게 나서, 어떤 이유인지 좀 알아봐 달라고 말씀드린 건데요.

   평소에 발걸음 소리가 커도 그냥 말씀드리진 않았어요. 어제오늘은 너무 하길래 인터폰 부탁한 거예요. 

-  밑에선 그래도 위에선 또 인터폰 받고 굉장히 불쾌해하십니다. 

-  그럼 조금 전에 욕하고, 바닥을 더 쿵쿵 차던데, 그거 저희 들으라고 그런 건가요?

-  뭐 그건 또 모르죠.     


 요는 인터폰을 했더니 윗집이 엄청 화를 냈다는 얘기. 

어제오늘 두 번, 인터폰을 해서 화가 났나? 그렇게 억울한 일이면 이러이러하다고 사정을 말해주면 우리가 이해 못할 것도 아니고, 집안 행사가 있어 식구들이 많이  왔다고 얘기하면 되는 거 아닌가.  도리어 중간에 끼인 경비 아저씨에게 화를 내고, 욕을 들어 먹은 경비 아저씨가 억울해 관리실 직원에게 전화, 그 관리실 직원이 나에게 전화를 한 거구나. 직원과 전화를 끊고 , 심장이 두근두근 뛰다가, 뭐야 지금 장난해? 화르륵 분노가 타올랐다.  뭐야 지금? 예의 갖춰서 참다 참다 말했더니 오히려 화를 냈다고? 경비 아저씨에게 갑질 한 거야? 그러고 보복 소음?  요샌 이런게 상식이야?

 남편이 ‘내가 올라갈게.’라고 했으나 다혈질 남자 둘이 만나면 또 어떤 일이 발생될지 알 수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층간소음 보복 칼질, 윗집 보복 도끼 살해가 남일이라고만 할 수 없지 않나.     


- 어제 식구들 다 모여 싸웠나?

- 혼자 살다 모처럼 식구 왔는데, 인터폰이 와서 열 받았나? 

- 그래 혼자 살아서 자긴 안 시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인터폰 와서 열 받았나 보다. 

- 나 같아도 기분 나쁠 수 있는데, 그래도 나는 일단 죄송하다고 하고 속으로 욕을 할 텐데. 

- 기분 나쁘다고 저렇게 욕을 하고, 더 시끄럽게 하나?

- 그러게 그건 좀 이해가 안 되네. 

- 오해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편지라도 붙여 놔야 하나? 

- 인터폰 한 게 그렇게 죄송할 일이야?    


 검색창에 층간 소음을 검색한다. 층간 소음, 보복 소음 끔찍한 사건 사고 뉴스 사이 아랫집의 대처 사례가 눈에 띈다. 막대기로 천정(윗집 바닥) 찌르기, 우퍼를 천정에 달기가 검색되며 실제 사례와 활용법이 동영상으로 자세히 설명돼 있다. 아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나의 열정을 윗집 소음에 보복하는 용으로 쓰고 싶지는 않은데. 한 번 열린 귀가 좀처럼 닫히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어제부터 더욱 윗집의 발자국 소리가 신경 쓰였다. 들리지 않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일단은 정신 건강을 위해 잠시 나가 있기로 했다

일단, 나가자. 윗집도 분노가 사그라지면 조용해지겠지. 어른이 혼자 저렇게 계속 뛰어다니려면 본인도 매우 피곤할 테니.     

 

 그리고 오늘 오전.  

 아침부터 나는 윗집의 발 망치 소리를 들으며 윗집의 기상 시간을 가늠했다. 아 윗집은 슬리퍼 따위는 안 신고, 그냥 쿵쿵 걷기로 작정했군.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오전부터 인터폰을 하는 것 또한 실례지. 자잘한 소음은 라디오를 틀어 커버하자, 창을 열었더니 도로에 차 지나다니는 소리도 들리고, 얼마나 많은 생활 소음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가. 잊자. 잊자. 잊어보자고. 

 오전 열 시. 

쿵쿵 쿵쿵 둔기로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림. 뭐지? 이건 그냥 뛰는 소리도 아닌데?

우르르 쾅쾅 이번엔 발을 미친 듯이 구름. 설마 지금 이렇게 뛰는 거야? 어른이?

창밖으로 씨발년아! 소리가 들림. 

목소리에 알코올 냄새가 느껴진다.... 아 월요일 오전 열 시에. 윗집 남자는 취한 건가?     


- 들었어? 

- 들었지? 

- 지금 월요일 아침에 술 마시고 씨발년이라고 한 거야?

- 집에 우환이 들었나? 

- 식구들 모이고,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 어디가 아픈 건가? 

- 마음이 아프나? 화가 많이 나나 봐. 

- 그런 건가.

     

그런 건가. 

윗집은 지금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건가. 너무너무 화가 나고 분노 탱천 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밑에 집에선 시끄럽다고 인터폰이 두 번이나 오다니! 그는 지금 이 거지 같은 세상에 아랫집까지 보태져 온 세상이 다 자기를 다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원통함을 풀 수가 없어 천장을 발로 찧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인가?     

어제까진 어떻게 저렇게 비상식으로 행동을 하지? 예의가 없네! 라고 생각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윗집 남자를 내 멋대로 상상하고 씩씩 거리고 화를 냈는데, 윗집 남자의 씨발년 아를 듣고 잠시 멈춰 생각해봤다. 어쩌면 미지의 층간소음 유발자, 보복 소음 유발자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을 수도 있겠다. 월요일 오전 열 시부터 창밖을 향해 '씨발년아'를 외칠 수밖에 없는 사연은 쉽게 상상이 되진 않는 일이다. 무슨 일인지 감당이 안 되는 일을 두고 혼자 화라도 내고 싶어 온 집안을 헤집고 다녔는데, 속도 모르는 아랫집에선 이틀 연속 인터폰을 울렸으니. 더러운 세상!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화도 못 내냐!로 귀결될 수도 있겠구나. 아 이 얼어 죽을 공동주택의 비애여. 내 집에서 내 맘대로 욕도 못하는 현대인이여. 미지의 윗집은 쿵쿵쿵과 '씨발년아'로 안면을 튼 것처럼 됐으니 이 또한 어찌할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윗층이  눌린 버튼을 보면 난 움찔할 것만 같은데.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는 이런 건가. 딸애의 피아노 소리가 윗집 남자의 분노를 부채질할까 겁이 난다. 옆집, 아랫집 식구들처럼 얼굴이라도 알았으면 이렇게 무섭고 화가 나진 않을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이제껏 얼굴도 모르던 이웃의 안녕을 이제야 빌어본다. 부디 무탈하기를.  

작가의 이전글 식탁 일기 - 오늘의 시간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