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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Sep 13. 2020

식탁 일기 - 마흔넷, 자주 못생김

평범한 주말 아침. 

차 한 잔을 하고, 아침 운동을 하고, 아침 식사를 챙기고, 이제 좀 일을 해볼까 하고 식탁 위에 앉았다. 키보드를 치며 연신 왼쪽 귀밑에 이물감을 느낀다. 뭐가 났나? 마스크 라인을 따라 뾰루지 하나가 뾰족 올라왔다. 40년이 넘게 난 뾰루지인데 오늘은 왜 특별하지? 뭔가 뻐근한데... 싶다가도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욱신 하는 느낌이 든다. 귀밑과 턱선을 따라 살이 부어오른 게 느껴졌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뭐지? 하고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보니 오른쪽과 달리 확연히 부어오른 왼쪽 턱선이 보인다. 급히 욕실로 가서 요리조리 얼굴을 살펴본다. 보통 부은 게 아니다. 몇 시간 만에 혹부리 영감이 되었다. 갑자기. 왼쪽 귀밑부터 턱선까지 확 부어올라 있다. 이럴 수가 있는 건가? 급히 인터넷을 검색해본다.


 포털 사이트 의학 전문 지식인들의 견해를 추측해보니. 병명은 급성 이하선염(침샘염)으로 추정됐다. 사이트에 보이는 염증 부위가 정확히 나의 부위와 겹친다. 갑자기 침샘에 세균이 감염되어 염증으로 부어오르는 거라고 하는데, 심할 경우 고열을 동반, 안면마비까지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주말이고, 어지간하면 내 발로 병원에 걸어가는 일이 드문지라 잠깐 병원을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다  안면마비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안면마비를 맞는다면 지금의 나를 영영 미워하게 될 것 같다. 부지런한 나를 애써 불러일으킨다. 퉁퉁 부은 얼굴을 보며 옛이야기 속의 혹부리 영감의 마음을 헤아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혹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잘 이해가 될 줄이야.


 요즘 들어 거울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났다. 40년을 함께한 얼굴이 이제 와서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는데,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게 사실이었다. 자타공인 미인은 아니지만 나름 자기 얼굴에 만족하는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정이 든 나의 얼굴이었는데, 이제 그런 노력도 소용이 없는 건지 거울 속 내 얼굴은 하루하루 못생겨지고 있었다. 삶의 격변, 몸무게의 변화를 맞이한 것도 아니고 특별할 것도 없는 날들인데, 거울 속 얼굴은 매일매일 한 스푼씩 생기를 잃어 가고 있었다. 아니 어쩜 한 스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건 진정 나이 탓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진정 의학의 힘을 빌어야 할 때가 왔나 진중하게 고민한다. 보톡스와 필러, 울세라와 프락셀, 화이트닝과 경락 사이를 갈팡질팡 하는 날이 늘었다. 결론은 부작용 걱정과 용기 부족으로 늘 냉장고 속 마스크 시트 하나를 꺼내 붙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조만간 피부과에 전화를 걸어 진지하게 상담을 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두세 달에 한 번 하는 뿌리 염색으론 이제 감당이 안 될 처지가 되었다. 깎아지른 브이라인 까지는 아니었지만 몸무게가 늘지도 않았는데 턱선이 점점 주저앉고 있다. 백옥 같지 않아서 나름 건강미 넘치던 피부색이라 생각했던 얼굴색은 이제 건강은 빼고 칙칙만 남았다.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도 바른 것 같았던 입술은 색을 잃었다. 마스크를 쓰느라 립스틱을 바르지 않은 날이 늘며 가끔 마스크를 벗은 내 입술색을 보고 흠칫 놀랐다. 이건 분명 이삼일은 앓은 사람의 입술이야. 노화인가?...... 노화이다.라고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가고 있고, 시간이 나만 비켜 갈 일은 만무하니 나는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으며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금방 늙어버릴 줄 이야. 이젠 점점 급속해질 노화와 함께 살아야 하는데,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신호인가?


‘못생겼다’ 급성 이하선염으로 퉁퉁 부은 얼굴을 보며, 걱정보다 먼저 든 생각이었다. 손으로 느껴진 퉁퉁 부은 얼굴을 만질 땐 채 깨닫지 못했다. 평소 보다 더 못생겨진 얼굴을 마주하고,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고서야 덜컥 겁이 났다. 이 얼굴로 살 수는 없다!  

남들이 볼 땐 그 얼굴이 그 얼굴이겠지만. 어차피 40이 넘은 아줌마 얼굴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갑자기 변해 버린 얼굴은 당혹스럽다. 못생김에 못생김을 더 얹어 변해버리다니. 침샘염은 내게 고통보다 못생김으로 더 크게 다가왔다.


 문득 고통과 못생김 중에 무엇을 택해야 할까 혼자 고민해본다. 아픈 것도 싫고, 못생긴 것도 싫다. 아픈 것도 견딜 자신이 없고, 이보다 점점 못생겨지는 것도 견디고 싶지가 않다. 하루하루 나이가 들면 이제 내게 못생김과 병만 남을 거 같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노화란 점점 약해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건가. 물론, 젊을 때 나는, 예쁘고 완벽히 건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인 건가? 지나온 성격을 보건대, 이제 와서 각성하고, 인생 역전으로 50대 동안 미녀로 다시 태어날 일도 만무하다. 그저 서서히 늙을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본다. 부디 노화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속도와 신체의 속도가 너무 차이가 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


 병원에 가서 전문의의 진단을 받았다. 포털사이트의 답변대로 병명은 급성 이하선염(침샘염)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 면역력의 저하로 염증 수치가 높아진 것이란다. 항생제를 한 움큼 받아와서 삼시 세 끼를 놓치지 않고 식후에 약을 잊지 않고 먹는다. 까먹기 일수였던 홍삼과 유산균을 빼먹지 않고 챙겨 먹는다. 홈트를 미루고 싶은 마음을 버린다. 조금씩 천천히 늙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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