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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Jun 21. 2022

chapter 02. 편지를 보내요

일곱 번째 편지 ㅡ 틀딱

“그러니까 선생님이 틀딱이라는 거예요!”    


한 학생이 제게 ‘틀딱’이라고 말했어요.  

‘틀딱’이라니요... 세상에...


몇 년 전, 처음 ‘틀딱’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 뜻을 알았을 때, 그 단어에 꾹꾹 눌러 담은 혐오의 감정이 제게도 튀는 것 같아 불쾌함을 참을 수 없었어요. 틀니 딱딱 이라니. 도대체 그런 말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고,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인터넷에서만 돌아다니는 줄 알았던 혐오의 단어가 제 바로 앞에서 발가벗겨져 나동그라졌어요. 그것도 초등학교 6학년 독서 수업 시간에 말이죠.     

우린 ‘내게 잊을 수 없는 책’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어요. 인상 깊은 책을 소개하고, 친구에게 추천해주는 시간이었죠. 그 중 ‘요즘 웹소설’만 읽어서 할 말이 없다는 학생에게 그렇다면 우리가 그동안 읽은 책 중에 특별한 책을 얘기해보자 했죠. “왜요? 웹소설은 왜 안 되는데요? 웹소설과 책의 차이가 뭔데요?” 하는 질문에 웹소설과 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제 얘기하려던 참이었어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틀딱이라는 거예요!”

순간 못 들은 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틀딱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혀 도끼로 머리를 내리치는 기분이 들었어요. 한순간에 ‘틀딱’이 된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저는 진정하기가 힘들었어요. 부들부들 목소리마저 떨렸지요.


“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하는 거니?”

네, 그 학생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동요하지 않는 척하며 남은 수업을 하면서도 저는 그날 온종일 ‘틀딱’이 뿌린 똥물에 빠진 기분이었어요.     


‘틀딱’이라고 뱉어 놓고(설마 농담이라고 생각한 걸까요?) 정색하는 저를 보고 아이도 아차 싶었다는 것을 눈치는 챘습니다. 그저 유튜브와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쓰는 말이고, 그렇게 많이 접하다 보니 일상에서도 툭 튀어나와 버렸다는 것을요.


‘맘충’이나 ‘김치녀’,‘된장녀’니 ‘한남’이니 ‘고추장남’이니 하는 혐오의 단어들은 계속 진화하고 재생산되고 있어요. ‘맘충’을 읽어 본 적은 있었으나 ‘맘충’이라고 불려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일까요. ‘틀딱’이라는 말의 여파는 셌어요. 초등학교 6학년의 입에서 나온 ‘틀딱’이라는 말은 생각할수록 일파만파 제 감정을 요동치게 했습니다.      

‘꼰대’나 ‘맘충’, ‘급식충’이나 ‘진지충’ 이라는 말은 이제 전 국민이 다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초등학생들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말들이에요. 아이들은 유행어처럼 ‘꼰대’와 ‘00충’이라는 말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꼰대’니 ‘00충’이니 하는 말을 듣고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흠칫흠칫 놀라는 게 제가 정말 꼰대여서인가 싶은 요즘입니다. 어쩔 수 없는 ‘꼰대’라서 아이들에게 일일이 그 말에 주의를 주지만 유행처럼 번지는 말들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입니다. ‘꾸꾸루삥뽕’이나 ‘안물안궁, 어쩔티비’는 차라리 귀여워요.    


아이들이 어쩌다 ‘꼰대’와 ‘00충’, ‘틀딱’을 재미로 쓰게 되었을까요? 이 또한 유행이니 지나가리라고 생각하고 지나쳐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재미라고 넘어가기에 아무래도 그 말의 무게가 가볍지 않아요. 다른 이를 ‘충’, ‘꼰대’, ‘틀딱’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아이들이 배울까 걱정돼요.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라고 알게 될까 봐 걱정돼요. 상대방의 기분은 생각 안 하고, 자기 기분대로 아무렇게나 내뱉어도 된다고 생각할까 봐 무서워요.     


철 지난 표어 같은 ‘바르고 고운 말’을 되뇌며 ‘꼰대’와 ‘틀딱’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언어가 시대의 반영이라면 초등학생이 ‘꼰대’와 ‘틀딱’을 말하는 시대는 정말 괜찮은 건가요? 이런 말을 들으며 자꾸 걱정이 되는 건 정말 제가 ‘꼰대’고 ‘틀딱’이 되는 나이가 되어서 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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