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우주를 담아서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꼭 했으면 좋겠다

by 일요일은 쉽니다


회사에 출근하던 마지막 날

정이 들었던 팀에 선배가 불러서 그런 말을 해줬다


“내가 정말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다음에는 분석하는 쪽의 일을 알아봐

내가 보니까 너는 딱 그 스타일이야”


대화를 하며 되게 씁쓸했다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싶니?

너에게는 어떤 이야기와 어떤 꿈을 품고 사니? 라는 질문이었으면

나누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을 텐데

꺼내지도 못한 채 묻혀버린 그 마음은


“내가 네 나이면 다시 학교로 가서 박사를 할 거야

내가 네 나이었으면 정말 그렇게 할 거야

박사과정을 밟고 그다음에 연구소 같은데 들어가

내가 너를 보니까 딱 알겠어서 그래”



그 선배는 알았을까

명분을 위한 박사와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은

나를 설레게 하지 않는다는 걸


대화가 끝난 후 돌아서서도,

아니 돌아서서는 더 씁쓸했다

어린 나이에 회사에 들어갔고

또 어린 나이에 회사를 떠났다

그 두 사건의 가장 큰 공통점은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어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회사를 들어갈 때 약으로 작용했고

회사에서도 약으로 작용했고

떠나는 순간에도 약으로 작용했다


근데 어린 나이에 회사를 떠나는 나에게도 그랬다면

하물며 내가 서 네 살이라도 더 많아 적당한 나이였다면

애초에 떠날 수는 있었을까

그 나이에는 그 나이에 해야 하는 일들이

나도 모르게 벌써 정해져 있는데

학생 때는 공부해야 하고

커서는 일해야 하고

그러다가 벌어야 하고, 살림해야 하고, 애 키워야 하고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나이가 있기는 할까

언제부터 우리는

마음과 상관없이

적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사회로 변해버린 걸까



“학교에 다니면서 정말 부끄러울 것 없이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로 대학에서 일 년이라는 시간을 벌었고

이른 나이에 대기업에 들어가 그 길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이제는 열심히 번 시간과 돈으로

하고 싶은 걸 해보겠습니다”


그 선배의 뜻을, 또 마음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살아보니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지망생이란 직업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어딜 가서든 누군가를 만나면

어렸을 적에는 이름 다음에 나오는 것이 학교였고

조금 더 커서는 이름 다음에 나오는 것이 회사이자 직업이었다


고로 선배의 당연한 조언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그래서 선배에게 씁쓸했던 것이 아니라

선배가 그런 조언을 해줄 수밖에 없게 물들여버린

사회에 씁쓸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그래서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


세상이 정해 놓은 모범답안을

나에겐 맞지 않는 옷이라며 벗어두고 나오는 길에

무엇이 네 가슴을 뛰게 하니? 가 아닌

A가 아니라면 넌 B지, B야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넌 B야



학생 때는 공부해야 하니까

커서는 일해야 하니까

그러다가 벌어야 하니까, 살림해야 하니까, 애 키워야 하니까

그렇게 때만 맞추다 가면

살고 싶은 인생은 언제 살 수 있는 것인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노후준비는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을 최대한 많이 하고

나중에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추억들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인데

그것이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인생에 있어 후회 없고 보람차게 살았다는

가장 든든한 보험일터인데

왜 자꾸 우리 사회는

노후준비를 연금과 보험으로만 정의하고 있는가


내가 더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 사회가 성공이라고 정해 놓았으면 이유가 있겠지 하는 마음에

그 길을 걸어봐야 한다 생각했고

둘, 자격을 갖추고 싶었다

A라는 답안에 성실히 임했으므로

B라는 답안은 내가 만들어갈 수 있는 권리


나는 해보았고

고로 후회가 없고

여기에 오기까지 들어간 나의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모든 노력이 있었기에

그 무엇 이전에 나를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믿음

그것이 나에게 가장 든든한 방패라는 걸

우리는 언제쯤 깨달을까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것에 설령 특별한 재주가 없거나

혹은 삽질부터 실컷 해야 하는 일이더라도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

누가 손가락질하고

누가 뭐라 한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꼭 했으면 좋겠다


온 우주를 담아서

정말 진심으로

오늘도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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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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