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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Jun 09. 2016

“그래, 난 이별을 사랑하면서 살아”

어느새 너는 저 멀리 있는 남산보다도 더 멀어져 버렸다



“그릇 물에 담궈놔라 나중에 할매가 씻치게…

무서우면 2층 올라오고…”


마당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시계를 보니

어느 새 8시 20분

시간이 많이 흘렀네…


세제가 닿으면 손이 다 까져버리고는 했는데

고무 장갑을 끼고 하기 시작한 후 설거지가 재밌어졌다

전에 라디오를 틀고 설거지 하시는 모습을 본게 기억에 남아서

남들은 모르고 지나칠 조그만 나의 친구에게 다가간다

치익 소리를 내며 점점 선명해 지는 DJ의 목소리

고무 장갑을 끼고 물을 튼다


라디오를 대할 때는 계산하지 않아도 되고

따지지 않아도 된다

다음에는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1초에도 수 백 가지의 생각 할 필요 없이

어색하면 어떡하지 걱정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 친구,

날 편하게 해준다


“자, 이영현씨의 이별사랑 듣고 다시 올게요!”

“체념이 더 좋은데”


라디오,

날 수백만 가지의 생각에서 덜어주는 대신

내 말도 곱게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원래 곡을 튼다

곧이어 멜로디가 흘러 나오고

아무 생각 없이 난, 설거지를 한다


“사랑은 언제나 그래 이별을 이기지 못해

그래 난 이별을 사랑하면서 살아

눈물은 잊지 않아 기억 속에 너 추억 속에 널

그리움 속에 네 모습”


내 손에 들린 그릇 위로 물이 흐른다

비누거품이 더는 남아 있지 않는데도

그 위로 물이 계속 흐른다


그렇게 몇 십초가 흘렀을까

다시 한번 귀에 또렷하게


“그래, 난 이별을 사랑하면서 살아…”


머리는 이게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는데

마음은 이미 입력시켰다 고개를 끄덕인다

뭐지, 이 감정… 뭐지, 저 가사…


정신 차리고 다시 설거지를 마무리 한다

물을 끄고, 고무장갑을 벗고서는 주전자를 올린다

아무 생각없이, 무슨 차인지도 모른채 티백을 꺼내 잔에 담는다

다 끓은 물을 그 위에 붓고

식탁을 지나 내가 좋아하는 서울 야경이 보이는 창가로 간다



“노래는, 처음 두 줄만 들어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아야 노래인거야”

“그런 게 어딨어. 후렴이 더 좋을 수도 있잖아”

“들어봐”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어,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다…


“가지 말란 말, 사랑 한단 말

가슴 멎을 한숨으로 힘겹게 삼키고

잘가라며 손인사로 널 들여보내던 그때

시간이 너무 빠르다”


그렇게 그 말을 들은 후에는

인트로가 끌리지 않으면 노래를 다 듣지도 않은 채

다른 곡을 틀고는 했는데


그런데 왜

50초가 지나고서야 들린 후렴 그 한줄에서

심장이 이렇게 죄여오는건지…


이게 무슨 뜻인지, 내가 왜 이러는건지 묻고 싶은데

너는 저 멀리 있는 남산보다도 더 멀어져 버렸다



“맞다, 저녁에 한 번 서울 야경 보려 남산 가자 했었는데…”


그 생각만 한지도 벌써 얼마나 오래 됬는지

생각이 생각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이번 만큼은


“그래, 난 이별을 사랑하면서 살아”


라디오 너머로 들려온다, 낯익었던 그 목소리

처음 30초가 다라 알려준 목소리

평소 같으면 “잘자요” 한번만 해달라고 문자를 열심히 날리고있을텐데

오늘은 내가 라디오에게 잘자라 인사를 하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그래

이별을 이기지 못해

그래, 난 이별을 사랑하면서 살아


“남산, 내년에 가지 뭐”


그 생각과 함께

낯익은 목소리는 갑자기 침묵으로 변하고


“그래, 난 이별을 사랑하면서 살아”


2011년 12월 어느 날, 그저 그렇게

남산, 내년에 가지 뭐…





Reference. "이별사랑," 이영현

글 & 사진.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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