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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Aug 08. 2016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2016.08.08, 한때 가장 소중했던, 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예전에 말이야, 생각해보니 벌써 몇 년 전이네

예전에 내 친구가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

일이 되게 재밌다 하며 했는데

블로그에 가끔 자기가 최근에 본 영화를 추천하고는 했거든


난 원래 영화도 잘 안 보고, 또 한국 영화 외에는 더 관심이 없었기에

추천 글들을 대충 넘기고는 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올린 추천 영화 중 제목에 끌려

나도 나중에 봐야겠다 싶었던 영화가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那些年,我們一起追的女孩) 이었어


추천하며 다른 특별한 후기를 올렸던 것도 아니고

그저 꼭 보라는 말과 영화 제목, 또 포스터 한 장을 올린 게 전부였는데

긴 글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정말 한 줄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고

처음 느끼게 해 준 한 줄이자 제목이었던 거 같아



그로부터 또 몇 년이 흐르고

학교를 졸업하고, 지구 건너편으로 이사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바쁜 삶에 치여 봐야겠다 했던 마음도 잊은 채 지냈어

그렇게 마음에 아련한 인상을 남겼던 그 한 줄도

어느새 잊힌 채 시간이 흘러가더라


그러다 또 시간이 얼마 흘러 신분의 변화가 생기고

묻은 채 살았던 여유와 생기가 돌아온 후

어떠한 계기로 인해 다시 그 영화가 생각이 났더라지

갑자기 왜 몇 년 만에 그 영화를 봐야겠다고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누가 영화 제목을 꺼냈다거나, 스틸컷을 봤다거나

그런 계기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어쩌면 무의식 속에 저장되었던 그 아련했던 한 줄의 힘이

여유를 찾았을 때 돌아온 게 아닌가 싶다



극장에선 상영을 마친 지 오래라 아쉽게도 집에서 아이패드로 봤어

스크린의 웅장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스피커의 웅장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한 줄 제목에서 느꼈던 감동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실망하게 하지 않더라

참 오랜만에 되게 좋아하며 봤던 영화인 거 같아

영상도, 인물도, 이야기도, 음악도,

또 무엇보다 대사도 참 긴 여운을 남겼어

어렸을 적, 대학이란 문턱을 넘기도 전 학창 시절의 순수했던, 또 소중했던 첫사랑을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그려내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달 후

잠깐 미국에 지내러 가게 되었는데

가장 친한 친구 집에 함께 지내면서 바쁘던 몇 주가 지나니

주말에 친구가 영화 한 편을 보자고 하더라


그때 다시 생각이 났어, 그 제목이

혹시 아직 안 봤으면 같이 볼까? 하고 물어봤는데

예고편을 보더니 좋다고 그러자 하더라

그래서 그렇게 또 보게 되었어

너무 아끼는 영화를, 다시



근데 있지, 여기서 재밌는 일이 일어난 거야

친구와 영화를 보기 전에 내가 그런 말을 했었거든

물론, 결말에 있어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나왔던 장면 때문에

나는 생각보다 후회가 없는 결말이었다고


내가 말했던 그림은, 션자이의 결혼식장에서

커징텅이 회상하는 장면이었는데

비가 오던, 그 둘이 헤어지던 날, 션자이가 앉아 있던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

그 앞에 앉아 눈을 맞추고 달래주던 커징텅의 모습이었어

내가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마지막에 그 장면을 보고

그래도 커징텅이 돌아가 션자이에게 손을 내밀었고, 최선을 다했으니

비록 둘이 함께 남지 못했더라도 후회는 없는 결말이다 – 라 생각했었는데



두 번째로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똑같은 장면에 대해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

‘그때 그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거 같아

만약 그때, 정말 커징텅이 발걸음을 돌려 션자이에게 갔더라면

그래서 둘이 오해를 풀고 함께했더라면 어땠을까 – 라는 생각에

그래도 자기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고


난 그 당시 그 장면을 보고, ‘그때 그랬더라면’에 대한 회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

난 그 당시 그 장면을 보고, ‘그때 그랬기 때문에’ 지금이 어떻든 후회가 없다의 회상이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나의 해석은 엉뚱하고 친구의 해석이 맞구나를 깨닫고는

참 새롭고, 신기하고, 여러 마음이 뒤늦게 들어

처음 보는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



그렇게 두 번째로 다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본 것도

어느새 벌써 거의 일 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오랜만에 우연히 영화에 대한 글을 접하고는

그 당시 나의 뚱딴지같던 해석에 웃음이 피식 나서

다시 영화의 영상들과 대사들을 찾아봤지


사실 처음에 봤을 때 제일 마음에 남았던 대사는

"성장하는 동안 가장 잔인한 것은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성숙하며, 그 성숙함을 견뎌낼 남학생은 없다”라는 대사였어

명대사라고 자주 회자되는 한 줄이기도 하지만

아마 그 당시 내가 그 사람과 헤어진 지 이제 겨우 석 달이 되어가던 때인가 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더욱 마음에 남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근데 두 번째로 보고 나서 내 마음에 새겨진 대사는

영화 끝 무렵에 나오는 대화 중 일부인

“나를 좋아해줘서 고마워” “나도 그때 너를 좋아했던 내가 좋아”로 새로 새겨졌어

이 또한, 시간이 흘러 옅어지고 다르게 적힌 그 당시 우리의 기억 때문이겠지

일 년 반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마음의 변화는 조금씩 있었던지라

우리가 함께 남지 못했던 상황의 아쉬움보다는

그러하였지만, 그 당시 아름다웠던 우리의 모습이,

또 너를 그렇게 순수하게 좋아하고 아꼈던 나의 모습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남겨져서가 아닌가 싶다



있지, 비록 마지막에 나왔던 그 장면은

친구의 말대로 커징텅의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하에 나온 장면일지라도

너와 나, 우리는

“그때 그랬기 때문에”라는 결말을 쓰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으니


션자이와 커징텅의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사랑은

비록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할지라도

너와 나, 과거의 한 장으로 기록돼버린 우리의 마음은

아쉬움이 남지 않기를 바라며



그때 나를 좋아줘서 고마워


나도 그때

너를 좋아했던

내가 좋아



2016.08.08

한때 가장 소중했던

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친구에게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那些年,我們一起追的女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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