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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Aug 09. 2016

남은 건 그때 사랑했던 마음과

내 눈에 참 멋졌던 너와, 두 손 꼭 잡고 주어진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



있잖아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글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라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를

이렇게 한 장 한 장 적으며 지내는데


긴 사연은 잘 읽어주지 않는 인기 많은 라디오에

너에게 보내지 못했던 편지가 읽히기도 하고

또 이렇게 이곳에 올리는 글들이

다음이나, 카카오나, 여러 채널을 통해 뽑혀서 내보내 지기도 하고

지난 주말에는 어느 한 곳에 떠서

그 주말 이틀 동안 거의 십만 명이 들어와

너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을 읽고 갔거든


근데 정작

이 모든 글의 주인공인 너는

그 사연들을 읽을 수도, 또 들을 수도 없다니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어딘가 조금 쓸쓸하기도 하고


그 십만 명은 읽었지만

너는, 그 한 명은, 내 모든 글의 주인공은

아마 읽지 못했을 테니까

알 수 없는 여러 감정이

밤이 저무니 한꺼번에 밀려오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 너는 나에게

이렇게 따뜻하고, 멋졌던 사람으로

남아있구나



냉정하게 뒤돌아서던 네 모습은

사라지고

갑작스러운 통보에 마음이 멍하던 내 모습도

옅어지고

옛사람으로 변하면 안 되었던 사람이

옛사람이 되어버려 애써 부정하려 하던, 믿기지 않던 수많은 날도

이제는 다 흘러가 버리고


남은 건

그때 사랑했던 마음과

내 눈에 참 멋졌던 너와

두 손 꼭 잡고 주어진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루하루 조금씩 떼어내려

창밖에 마음을 비우고는 하지만


시간이 가도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 자리에 남아있기에


앞으로 그렇게 기억될 거 같아

뭔가 삐딱한 듯 까다롭고 어렵던 네가

몇 년 전 그 날, 1월의 어느 날

키보드 뒤에서 네 반주를 따라가기 위해 앞에 있던 너를 빼꼼히 쳐다보던 나를 보고선

아예 뒤로 돌아서서

너의 반주를 맞추던 나와 눈을 맞추던 너를

그렇게 한참을 고개를 끄덕이며

든든하게 있어 준 너를


모든 게 시작되었던

그때 그 모습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한들

그 누구도 이렇게

오래, 깊이, 또 또렷하게

새겨지진 않을 테니


한때 가장 소중했던

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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