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사실
나와 친한 사람들도 이에 대해 잘 모르지만
2016년의 시작은
강인하지 못하고 무디지도 못한 내게
생각보다 조금 버거웠다
계획했던 첫 번째 작업은 끝이 났는데
기도하던 그다음 길은 열리지를 않고
마음은 하루하루 초조해지고, 착잡해지고
조금 더 의연하고 의젓하게 기다릴 수 있으면 좋으랴만
어리고 철없는 나는 급하고 불안하기만 한 채
제대로 맞서지 못한 것 같은 그런 한 해의 시작이었다
여러 변화에 아직 익숙하지도 않고
청춘이란 명목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 같은 느낌이었던 터라
2016년도 그렇게 기다림 속에 마냥 흘러가는 거 같더니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8월이 되고, 또 올림픽이 시작되고
그저 이기면 기쁘고 지면 아쉽고 하는 정도일 줄 알았으나
리우 올림픽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 며칠, 올림픽 덕분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새벽에 경기가 많이 열려서
보다가 잠이 들기도 하고, 먼저 잠이 들기도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꼭 경기 소식부터 확인한다
그러면 승리 소식, 메달 소식, 또 감동의 순간순간들이
매일 아침 핸드폰 화면을 꽉 채운다
그렇게 나는 아침마다 새벽에 올라온 기사를 보다가
이미 결과를 다 알면서도 경기 영상을 찾아서 다시 보는데
그중 지난 며칠 가장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온 세 장면이 있으니
첫 번째로는 박상영 선수와,
두 번째로는 핸드볼 대표팀과,
세 번째로는 장혜진 선수이다
박상영 선수의 경기는 과정과 결과 모두 다 기적의 감동이었다
4점으로 뒤져 상대 선수는 한점만 더 내면 이기는 상황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한 점도 주지 않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5점을 연속 따내는 모습은
펜싱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멋지고, 또 멋졌다
그러나 박상영 선수의 경기 중 내가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본 장면은
아마 두 번째 세트를 마치고 잠깐 의자에 다음 세트를 기다리던 중
객석에서부터 경기장 소음을 뚫고 들려온 “박상영 할 수 있다!”라는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있다”를 연속 중얼거리던 모습이었다
자신만의 생각과 계산과 부담감과 두려움, 그 외 여러 가지 감정들로
그 무엇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와중에
이미 점수 차가 어느 정도 나고 계속해서 좁혀지지 않던 터라
역전은 어렵겠다 하고 말았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객석으로부터 들려온 “할 수 있다”라는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며
믿음을 보인 박상영 선수의 모습은
몇 번을 보고 다시 봐도 계속 눈물이 고였다
그러고 그다음 날 아침이었던 거 같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도 유명한 여자 핸드볼팀의 무승부 소식이
승부만큼이나 값진 소식으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던 와중
올라온 모든 기사를 뒤져서 다시 돌려본 장면은
방어를 하고 무승부로 경기를 종료하려던 찰나 네덜란드에 무조건 들어간다는 7m 드로우를 허용하며
많이들 졌다고 예상하던 순간이었다
44세, 두 아이의 엄마,
대한민국 대표팀 통틀어서 최고령 선수이자 올림픽은 이미 8년 전에 은퇴한
오영란 선수의 얼굴도 많이 어두워 보였다
이미 전 두 게임에서 패한지라 이 게임을 지면 사실상 핸드볼팀의 올림픽은 끝이 나는 거였다
마지막에 선방해 무승부로 끝내려던 와중 7m 드로우라니
팀에 오히려 해가 될까 봐 올림픽 출전을 망설였다는 오영란의 얼굴에
마치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 같은 그늘이 보였다
그 순간 오영란 선수의 마음은 어땠을까
7점 드로우는 던지면 무조건 들어간다는
겨우 무승부로 막을 내리나 했는데 들어가면 한 점을 내주고 승리도 내주게 생긴 그 순간
이제 나머지 대표팀 선수들은 지켜볼 수밖에 없고
오로지 공을 쥐고 있던 네덜란드 선수와 골대 앞에서 있던 오영란 선수, 그 둘 뿐
그 순간 경험이 많지만, 또 그만큼 나이도 많은
오영란 선수의 어깨에 모든 무게와 짐이 올려진 순간
바로 그 순간 그동안의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으니
네덜란드 선수의 손에 있던 공이
시속 1백 킬로미터가 넘는다는 공이
오영란 선수의 배를 맞고 튕겨 나갔다
많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웃음보다는
묵묵히 골대를 뒤로하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나가던 오영란 선수에게
대표팀 선수들이 뛰어가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던 순간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감히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중압감을 안고
모든 경우의 수가 이미 공중으로 던져진 후
사실상 탈락 확정의 기로 앞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고 오늘 아침
올림픽에 나가기보다 국가대표로 뽑히기가 더 어렵다는
여자 양궁 대표팀 주장의 금메달 소식을 보고선
단체팀 경기마다 첫 번째 선수로 자신 있게 활을 당기던 모습에
경기를 보는 우리는 늘 든든했지만
세 명 중 가장 주목을 덜 받고, 그만큼 기대도 덜 받았던 장혜진 선수이기에
시상식 중앙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모습을 보자니
더욱 자랑스럽고, 너무 고마웠다
올림픽 선수들의 나이를 보면 더 대단하고 존경심이 든다
이제는 나보다 어린 선수들이 많아진 국가대표들을 보며
국제적인 행사 때는 엄청난 관심과 응원 속에 세상의 중심이 되어 경기를 치르고는 하지만
그 뒤에 보이지 않는 노력, 희생, 눈물과 땀
20살에 금메달이란 결과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더욱 귀하지만
또 그만큼 20살의 청춘들이 누리는 일상의 행복은 양보하고 훈련에 매진해야 하기에
그렇게 우리나라를 대표해주는 이들이 있기에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것이
자랑스럽고 기쁠 때가 많다
물론, 2년 전 이곳에 이방인으로 뚝 떨어진 채
내가 생각했던 한국과 다른 한국을 맛보게 되면서
헤매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길을 잃은 채 주저앉기도 했지만,
정치, 경제, 연예계 등 수많은 사건, 사고, 갈등, 반대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플 때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세상에 문제없는 완벽한 나라는 없다
팀 내에 갈등이 있다고 해서 갑자기 대표팀 선수가
우리나라 골대로 자살골을 차는 일은 없는 것처럼
더 좋은 우리가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
올림픽을 계기로 더 깊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내가 나라의 등에 업혀 여기까지 온 만큼
나도 나라를 등에 업고
자랑스러운 대한의 딸이 되고 싶다
대한민국,
고맙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나는 언제나 능력을 주시는 분을 믿고 한다
모든 결과는 하나님이 주신다고 본다"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장혜진 선수 인터뷰 중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