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은 쉽니다 Sep 05. 2016

하물며

가장 오랜 친구였던 사람을 어떻게 잊어야 하는지



우리 할아버지는

뒤늦게 발견해 이미 많이 진행되어 있던 희귀암과

끝까지 오랜 시간을 싸우시다가

4년 전, 이 세상을 떠나셨다


아마 작별하기 하루 전이었던 거 같다

“오늘은 밥도 드시고 편안히 주무시네”라며 평안했던 병실 안으로

얼마 후, 모니터에 이상 신호가 떴다며

갑자기 의사와 간호사들 여럿이 기계를 끌고 들어와 응급처치하던

한 번의 위기를 맞고


원래는 중환자실로 올려야 했지만

기적같이 자리가 나 급히 표를 당겨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서 건너오고 계시던 삼촌이 있었기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일반 병실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항공사에서 조치를 해주어

제일 우선으로 내려 얼른 도착한 큰삼촌이

여러 장치에 연결되어 계셨던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그렇게 우리 가족은 병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사실, 할아버지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이셨고

그 전에 몇 주 동안 집에서도 잘 움직이시지를 못하고, 잘 소화하시지를 못하고

발이 많이 붓는 등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셨던지라

모두 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만


눈조차 감고 계신, 겨우 호흡만 유지하고 계신 할아버지를 보면서도

아무도 생명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 상태에서 지속되면 될수록

옆에서 병간호하는 가족에게도 무리가 가는데

아무런 말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할아버지를 보시면서도

할머니는 이렇게라도 옆에 계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이렇게 만이라도 계속 옆에 계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이렇게라도, 이렇게 만이라도

몇 번이고 되뇌시고, 또 되뇌셨다



그러나 2012년 5월 29일 아침 6시

병원 근처에 작은 삼촌네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자고 있던 나를

삼촌이 들어오셔서 조용히 깨우셨고


할머니는 그 후로 한참을 그리워하셨다

한동안 자식들이 그 옆을 지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빈자리는 다른 사람의 존재로 덮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50년이 조금 덜 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세월을 함께하시면서

다툼, 짜증과 화, 그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 좋은 날들만 보내신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그 후로 한참을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셨다


동사무소에서 서류 작성할 때 더는 채울 수 없는 배우자 칸을 보며

비자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더는 대답할 수 없는 남편에 대한 질문에

그리고 동네에서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같이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며

그 후로 한참을, 오랫동안, 멍하니 그리워하셨다



그래도 야속한 시간은 흐르고

그때는 정말 하루도 겨우 넘기시는 거 같았지만

어느새 또 하루를 보내시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많이 나아지셨다 생각했는데

어제 문득, 오랜만에 놀러 오신 옛 친구들과 대화하시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들었다

길가다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사람만 봐도,

마음이 철렁한다고


50년 그 세월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을 머물렀던 친구와의 이별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자국으로 남아 있는데

하물며 가장 오랜 친구였던 사람을

어떻게 잊어야 하는지

체크무늬 남방만 보면 할아버지 생각에

아닌 걸 알면서도 따라가시던 그 모습을 떠올려보며


세월은 진하고, 인연은 깊은지라

떠난 자는 먼저 가고 남은 자는 오늘을 또 살아야 하지만

하루가 갈수록 곧 다시 만날 날이 하루만큼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오늘 다시 힘을 내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우리 오늘 더 많이

사랑하기를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움을 어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