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줍음 많던 부산 소년을

어쩌면 이제껏 받았던 가장 소중한 선물은, 너를 만난 것이 아닐까 싶다

by 일요일은 쉽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다

어느덧 시간이 늦었길래 자야겠다 싶어서 책을 덮고 누웠는데

어제 오랜만에 네 이야기를 써서 그랬는지

문득 네가 나한테 줬었던 선물이 생각나더라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특별한 선물이 뭐가 있냐 하면

이것도 생각이 나고, 저것도 생각이 나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물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너에게 받았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초등학생 때부터 외국에 살았으니까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늘 깊었거든

그런 한국에 나갈 수 있는 건 여름방학 때였고

일 년에 한 번이면 자주 나가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겨울에도 나가는 친구들이 부럽고는 했었어


그해 너는 겨울방학을 맞아

집이 있는 부산으로 간다고 하였고

그 소식에 부러움을 대신 담아 “선물 사와!” 라고 했는데

“뭐 사올까?” 하는 네 물음에

한참을 앉아 생각했던 거 같다


가장 달래고 싶었던 건

서울에 대한 그리움이었는데

그리운 여름날의 한강 한 조각을 가져다 달라 할 수도 없고

저녁노을이 진 양화대교를 달리는 버스 한 조각을 가져다 달라 할 수도 없고

할머니 댁 근처에 기가 막히는 깻잎 떡볶이 한 조각을 가져다 달라 할 수도 없고

그러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 걸까?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



“모래, 바닷가 모래를 좀 가져다줘

빈 물병에 해운대에 가서 모래를 좀 담아와 줘”


곰곰이 생각하다 떠올린 답은

정말 최고의 선물일 거 같았어

내가 직접 가지 못해도, 한국의 한 조각을 받을 수 있는

그 모래와 함께 나도 직접 해운대 바닷가를 거닌 것처럼

바닷가 냄새, 바닷가 소리, 바닷가 촉감,

그 바람, 그 노을, 그 감성과 그 하루

그걸 네가 담아올 거라 생각하니

방학 내내 참 설레었거든


개학을 하고 다시 만난 너는

사물함에서 무얼 주섬주섬 찾더니

별 모양 유리병 안에 정말 해운대 모래를 가득 담아서 건네주었다지

난 그냥 아무런 빈 플라스틱병에 들고 올 줄 알았는데

예쁜 별 모양 유리병 안에 더 반짝이던 모래를 보며

가지 않고서도 정말 그리움 한 조각을 받은 듯

소중하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매일 보고는 했어



있잖아, 고마워

너한테는 생뚱맞은 부탁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한테는 그 무엇보다 더 마음에 드는 선물이었어

그리움이라는 게, 달래진다고 달래지는 것도 아니고

옆으로 밀어낸다고 밀어내지는 것도 아닌데

보이는 것도 아니라, 그저 마음에 담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꾹꾹 누른 채 살아가는 건데

그 모래에 대신 그리움을 쏟아낸 듯

마음이 참 편안하고, 따뜻했던 거 같아


어쩌면 사실은

이제껏 받았던 선물 중 가장 소중한 선물은

8학년이 시작되던 그 날,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더 착하고, 더 순수함 가득했던

4층으로 올라가던 계단 옆 사물함 앞에

수줍음 많던 부산 소년을

만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내가 서울을 지키고 있으니

다음에 한국에 오면 보자

이제는 다 커버린 듬직한 부산 청년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함께 있고 싶고, 계속 함께하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