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있잖아요

있잖아요, 그 열두 번째

12. 부러짐의 시간에 대하여

by 일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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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퇴사한 걸 후회한 적은 없어?”


쌀쌀했던 금요일 저녁. 아니, 쌀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추웠던 밤이었는데

송년회를 마치고 먼저 일어선 동기들이랑 역으로 걷다가 버스정류장에서 인사하고

나랑 우리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동기 오빠랑 둘이서 지하철역으로 걷고 있었어요,

퇴사한 걸 후회한 적 없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


어려운 질문이죠.

퇴사 직후에는 미련이 전혀 없다는 명쾌한 답이 굉장히 빨리 나왔는데

시간이 일 년 반 즈음 흐르고 보니 대답하는데 몇 초 더 망설이게 되는 거 같아요.


“음, 없죠. 퇴사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나는 너무 어렸고, 그때는 낯선 환경에 너무 지쳐있었어요.

그래서 그 길을 떠난 것에는 여전히 후회가 없죠.

설상 남았더라도 시기만 달라졌을 뿐 결국에는 같은 결정을 내렸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대답에 앞서 조금 망설이게 되는 것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서일 거예요.

그 아쉬움이 조금 더 또렷해졌기에 내 대답은 더 길어지는 거겠죠.

마지막에 왔던 다른 부서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그때 그리로 갔으면 어땠을까? 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요. 다만 이 아쉬움이 후회로 번지지 않은 건

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던 그 당시에도 이건 두고두고 생각나겠다를 알았기 때문이죠.


시간이 지나며 이 아쉬움이 조금씩 더 또렷해진 건

퇴사 후 지난 일 년 반의 시간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물론, 인생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은 적이 생각한 대로 흘러간 적보다 훨씬 많았지만

퇴사 이전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졸업과 취업은 감사하게 원했던 대로 되었기에

퇴사와 그 이후가 조금씩 길어지고 어려워졌을 때는 여러 마음이 들었던 거 같아요.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 정말 괜찮을까? 너무 순진했나? 어릴 때 해보고 싶은 걸 실컷 해보겠다 했는데,

과연 그 실컷은 언제까지 용납되는 걸까? 결국 돌아가게 될까? 처음부터 아니었던 걸까? 하는

그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질문들 있잖아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마음속에는, 복잡하고 착잡해서 감추고 싶은 속내도 있으니까.


처음에는 그동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기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하기에도 바빴어요.

그래서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생각이 처음에 한 6개월은 들지 않을 정도로

회사 다닐 때와 비슷하게 바쁘게 살았죠. 이문 저문 열심히 두드리면서.

근데 두드리는 문들이 닫히고, 그래서 두드리는 문들이 많아지고, 두드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러면서 의문, 불안, 걱정, 두려움, 그런 게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이게 아니었나,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실수한 걸까, 하는 그런.


부러짐의 시간이었어요.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 계획들, 가치관, 자아, 그 많은 것들이

모두 부러지는 과정이었어요. 하나하나씩 전부다.

그래서 신나게 바쁘게 살다가, 조금씩 기운이 빠지다가, 조금씩 걸음이 느려지다가,

내 선에서 해결하겠다고 더 바쁘게 길을 알아보고 찾아보다가,

그러다 어느 선에서 아, 길이 잘못되었는가는 둘째치고 방법이 잘못되었던 거구나를 깨닫고

어쩌면 힘든 시간이 아니라 부러짐의 시간이구나 생각이 들어 잠잠히 앉아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 잘 가고 있는 거 맞죠? 제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요? 무얼 잘못한 걸까요?

제가 지혜롭지 않았던 걸까요? 재능이 없는 걸까요? 현실 파악을 못 했던 걸까요?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요?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가도 되나요? 아니면 멈출까요?


처음에는 질문하다가도 ‘아 아니에요, 그냥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 하고 관두고는 했어요.

가끔은 질문을 할 용기도 없었어요. 무서웠으니까.

말씀을 해주신다 한들 그게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면 그 말씀대로 순종할 용기가 없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일단 내가 해보는 데까지 내 힘으로 한번 해보자고 악을 쓰다가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 거 같아요.

마냥 길어지는 깜깜하고 힘든 시간이 아니라 힘든 만큼 꼭 필요한 부러짐의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나의 길이 가장 올바르고 지혜롭고 좋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이해합니다.

당신의 생각은 높고, 넓고, 또 깊고 위대하다는 것 또한 이제야 인정합니다.

나의 고집을 내려놓고 당신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가라는 곳에 가고, 하라는 것을 하겠습니다.

그게 나에게 가장 좋고 또 나를 위한 길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나의 어리석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말씀하시면 이제는 열린 마음으로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가 무너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찬찬히 돌아보니 그보다 내가 부러지는 과정이었어요.

내 안에 다른 것들이 너무 많았기에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부러뜨려야 하는 과정.

내가 가진 걸 다 뺏기는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 모든 걸 주시기 위해 교체하는 시간 있잖아요.

너무 아픈데, 너무 괴롭고 퇴사에 대한 마음이 자유롭지 못할 만큼 괴로웠는데,

왜 이렇게 깜깜해 보이기만 하냐고 막막했던 시간이 사실은 꼭 필요한 시간 있잖아요. 나에게 꼭 필요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창세기를 찬찬히 읽던 중에 주석에 쓰여있는 설명을 하나하나 보는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에서를 만나기 전 마지막에 홀로 남아 기도하다 밤새 씨름한 날

창세기 32장 옆에 주석에 이렇게 설명이 붙어있더라고요.


“환도뼈가 위골 되기까지 한 기도. 환도뼈는 인체에 있어서 힘 있는 부분이다.

그것이 위골됨은 그 사람의 낮아짐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도자가 먼저 받아야 할 은혜이다.

참된 기도자는 먼저 뼈가 위골됨 같이 꺾인다. 바울이 평생 쏘는 가시로 말미암아 낮아졌으므로

그에게 은혜가 지속되었던 것처럼, 그는 우리를 떨어뜨리신 다음에 붙들어 주신다.”


에서가 두려워 형의 화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 철저한 계산하에 무리를 나누어

덜 아끼는 순서부터 가장 아끼는 순서까지 차례대로 보내며 자기 생각으로 최대한 지혜롭게 대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 때문에 결국 마지막에 엎드려 기도하며 씨름할 때.


그 마지막 엎드림. 그 간절한 기도.

부러짐으로 인한 온전한 낮아짐, 사실은 그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는 걸.


하나님의 축복의 시간이 오기 전에 부러짐의 시간이 먼저 옵니다.

야곱도 그랬고, 저도 그런 부러짐의 과정 속에 머물러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낮아지는 것, 내가 꺾이는 것.

내가 나의 지혜와 명철을 내려놓고 내 생각과 계산을 내려놓고 전능하신 분 앞에 진실로 아뢰는 것.


이제야 제가 깨닫습니다.

제 길이 결코 빠르지도, 옳지도, 또 좋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그리시는 그림이 나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걸,

당신이 기쁘게 사용하실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과정이라는 걸 이제는 신뢰합니다.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는 만큼

걸어갈 길 또한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부러짐의 시간에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이 광야의 여정에 내가 신뢰할 가장 좋은 나의 편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창세기 33:4


있잖아요, 그 열두 번째

12. 부러짐의 시간에 대하여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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