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당신의 자리에서

그녀는 멋졌다

by 일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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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제법 쌀쌀한 날이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평소에는 늘 밥을 선호하지만

가끔 밥 말고 다른 음식이 당기는 날들이 있고 그날 또한 그런 날이었다.

보통은 피자를 시키고는 하지만, 며칠 전 본 광고가 생각나서 그날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새로 나온 메뉴가 뭐죠?”


햄버거나 샌드위치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예전에 기숙사에 있을 때 너무 많이 먹어서 (혹은, 너무 맛없는 햄버거를 많이 먹어서)

굳이 햄버거를 사러 먹으러 간 적은 거의 없고 혹여 가게 되더라도 너겟이나 다른 메뉴를 시켰었다.

근데 평소에는 광고를 봐도 별로 당기는 메뉴가 없었던 반면에 며칠 전 본 햄버거는

일 분도 안 되는 단 몇 초 만에 맛이 궁금하다는 생각을 심어줬고

그래서 며칠 후 이곳에 온 것이었다. 결국 실망하더라도 한번 먹어나 보자는 마음에.


“아, 행운버거 말씀하시는 거죠?”


그 순간 메뉴판 디스플레이가 다시 바뀌었고 광고에 나왔던 햄버거가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맞다고, 그걸로 달라고 하니 다음 질문을 물어왔다.


“칠리랑 골드랑 두 가지 맛이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아, 음…”


원래 선택을 잘 못 하고 특히 먹을 것에 있어서는 더욱 선택을 망설이는데

저녁 시간이라 하필 또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주방에서는 정신없이 계속 햄버거가 쏟아져 나오고

옆에서는 번호를 확인해달라며 준비된 제품을 쟁반에 혹은 포장해서 올려놓는데

바쁘면 바쁠수록 본인도 정신이 없어서 그저 빨리 주문받고 빨리 계산해서 빨리 내보내는 게 일인 곳에서

계산대 건너편에 있는 직원은 천천히, 차근차근, 재촉하는 눈빛도 손짓도 보내지 않고

오히려 각각 차이를 설명하며 결정하기를 기다려줬다.



그때부터 그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간에, 이렇게 바빠서 직원들 모두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주문을 처리하기 급급한데

그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매장에 들어와서 계산대 앞에 섰을 때 웃으며 인사하고 친절하게 질문하는 모습도 흔치만은 않은데

(그것은 비단 맥도날드뿐만이 아니라 다른 식당이든, 카페든, 가게든, 어디에서도)

주문이 먼저이기보다 손님이 먼저인 듯 대하는 무언가가 그녀에게 있어 그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러면 칠리로 두 개 주세요.”

“세트이신가요?”

“네, 둘 다 세트로 주세요.”

“음료는 어떤 거로 준비해드릴까요?”

“아, 음… 둘 다 콜라로 주세요.”

“컬리 후라이 괜찮으신가요?”

“아, 아니요. 그냥 일반 후라이로 주세요.”

“드시고 가시나요?”

“포장해주세요.”

“네, 11,800원입니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앞에 기계에 긁었는데 결제가 들어가지 않아 잠시 당황하니

반대편으로 돌려서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영수증이 나오고 그걸 끊어내서 중앙에 숫자를 보여주고 다시 오른쪽 천장에 모니터를 가리키더니

저기에 번호가 뜨면 와서 받아가면 된다고 설명해줬다.

고맙다 하고 뒤로 물러서 앞에 비어있던 테이블에 앉아 계산대를 지켜보니

그 직원은 그다음 손님한테도 웃으며 친절하게 주문을 받고 있었다. 가장 바쁜 이 시간에조차.


맥도날드에 가면 딱 맥도날드 수준의 서비스만 기대하게 된다.

비교적 싼 값에 음식을 제공하는 이곳은 단순히 음식의 재료나 질뿐만이 아니라

장소나 분위기, 또 직원들의 서비스 또한 내가 내는 금액 정도의 가치만큼만 예상하게 된다.

고급 레스토랑에 갔는데 웨이터가 너무 불친절하면 기분이 상할 수는 있어도

맥도날드에서 직원이 정신없이 주문만 받더라는 둥 마음 상해하지는 않는다.

몇천 원으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이곳. 이곳에서는 딱 몇천 원만큼의 서비스만 바란다.



근데 이 직원은 좀 달랐다.



이전에 이곳에 몇 번 들렀을 때는 주문을 하고 기다리다 음식을 받고 나가면 그만이었는데,

그날은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자꾸 그 직원에게 눈이 갔다.

능숙해 보이는 걸로 보아 신입이라 열심히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요령껏 대충 해도 되는 일을 정성껏 하는 그 직원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메뉴얼대로 행동한 것뿐이고 그녀가 한 질문들은 다른 직원들 또한 똑같이 하는 질문들일 뿐이지만

그녀의 태도, 그 태도가 그녀를 차별화했다.

나는 분명 맥도날드에 왔는데 마치 호텔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녀가 한 질문이 달랐던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 질문을 할 때 손님을 대하던 자세,

좀 더 나아간다면 그녀의 마음가짐이 특별했던 게 나에게까지 전달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는 마치 이 일을 그저 일이라든가, 아르바이트라든가, 최저임금밖에 못 받는다거나,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해야 한다든가, 식사시간에는 바빠서 힘들다든가 하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또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만 같았다.

일 분 남짓 되었을 그녀와의 대화로 나는 그날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 또한 집 앞 맥도날드에 갈 때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차림으로 가서 먹고는 돌아오는데

그렇게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에 이미 수십 명의 손님을 상대하고

내 뒤로도 수십 명의 손님을 계속 받아내야 하는 일을

그녀는 대충하고 빨리하고 무표정으로 혹은 찡그리며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환경 속에서도

누구보다 친절하고 누구보다 기쁘게 자기 일을 해내고 있었다.



맥도날드에서 맥도날드 이상의 서비스를 받아볼 줄은 몰랐다.



마침 얼마 전 아는 분이 직원을 구한다고 하셨던 게 생각나 얼른 연락을 드렸다.

그러고는 혹시 아직도 직원을 구하시냐 물으니 그렇다는 대답에 그날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그분이 기존에 아르바이트생들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셨는지 알기에

아직 사람이 필요하시다면, 이 사람 참 괜찮을 거 같다고.


새로 나왔다는 메뉴는 기대했던 것보다 맛있었고, 그래서 그 후로도 한두 번 먹으러 간 적이 있다.

같은 시간대에 가서 그런지 두 번 다 똑같은 직원이 주문을 받았고,

그날들도 변함없이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대였지만

계산대 뒤에 있는 그녀는 한결같이 웃으며 친절하게 주문을 받았다.


그녀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명찰에 적혀있던 이름 석 자뿐.

나이도, 성격도, 방학이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인지 직원이 되려 하는 것인지

이름 석 자 외에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그녀에 대해서 또 참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기회였다.

일을 대하는 태도, 주어진 자리에서의 마음가짐, 좀 더 나아가서 삶을 대하는 자세.

그 몇 번으로 얼마나 알 수 있겠냐만, 어차피 회사에서도 글 몇 줄과 대화 몇 번으로 직원을 뽑아야 한다면

나 같으면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어디서든 정성인 그녀를 가장 먼저 채용하고 싶을 것 같다.



하찮게 여길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의 계산대.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몇천 원어치의 서비스만 제공하면 되면 그 공간에서도

그녀는 그 값의 몇 배의 가치를 제공한다면,

나는 이런 직원을 채용하고 싶고, 또 이런 사수에게 배우고 싶고,

이런 후배를 키우고 싶고, 마지막으로 이런 동료와 일하고 싶다.



평범한 일상으로 지나쳤을 수도 있는 시간 가운데

그녀를 통해 손에 쥐었던 햄버거 그 이상을 얻고 돌아갔다.

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주어진 자리에서 정성을 다할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며 살아가기에 너무 버거운 세상이 되었다 돌아설 수도 있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참 많은 걸 배웠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최근 내가 만난 스승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 또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마음가짐 덕분에

직접 찾아와 우리 가게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

아르바이트생을 스카우트해가는 것도 전례가 없겠지만,

나는 훗날 더 좋은 자리에서 그녀를 스카우트해갈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21. 그녀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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