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멋졌다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되고 그렇게 우연히 읽게 된 책이었어, 모든 요일의 기록.
그 책을 읽고 있는데 예전에 입사 시험 문제였다며 친구한테 편지를 쓰라는 주제가 있었어.
난 자기계발서적을 읽을 때도 본인한테 적용해서 질문에 답해보라 하면 주로 빈칸으로 둔 채 넘어가는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언젠가는 써야지 하고 그 한 장을 카메라에 찍어두고 있더라.
그래서 오늘, 어느덧 벌써 5월이 시작되고도 한 주가 지난 오늘 이렇게 조심스럽게 키보드에 손을 얹었네.
시간이 참 빠르다. 너의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게 벌써 일 년 전이라니.
하루도 가지 않는 것만 같았던 느림 속에서, 매일을 살아온 그 하루가 답답할 만큼 낯설고는 했는데
그래도 너를 만난 후에는 하루가 그 본연의 일상을 되찾아간 것 같다.
너한테 고맙지, 정말로.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서,
아니 어쩌면 그 제자리걸음조차 떼지 못한 채 가만히 흙투성이인 바닥에 앉아있는 것만 같은 날들이었는데,
그날 우리가 처음 만나서 대화한 저녁, 무언가 새로운 많은 것들을 얻은 느낌이었어.
아마 그건 아직 한자도 적지 않은 새 수첩이 있더라도 모두 나열하기에는 부족하겠지만
하나의 단어로 묶어야 한다면 너의 진심, 그래, 너의 진심이라고 적을 수 있겠지.
그 어색함과 그 낯섦 가운데 살짝씩 비춰 보이던 너의 진심.
우리 사이에 높은 벽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단단히 쌓아 올린 것과 동시에
중간중간 구멍이 뚫려있던 그 벽 사이로 보이던 너의 진심.
그게 나한텐 어떠한 새로운 계기가 되었던 거 같아, 이 상자를 열고 나가야 할 것 같은.
뭐랄까... 나였더라면, 내가 너였더라면 아마 이렇게 했을 텐데 하는 공식들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거든, 너의 삶이.
그리고 그 속에는 어떠한 진심이 있었어. 삶에 대한 진심.
달이 점점 짙게 내려앉던 그 날 저녁 그 마음이 틈틈이 보였던 거 같아.
그래서 너는 무채색이던 나와는 달리 너만의 색깔로 빛이 났어. 비록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지만.
나는 사실, 길을 잃은 상태였거든.
다 아는 듯 괜찮은 척하려 했지만, 적어도 사람들 앞에선 그래야 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는, 그런 상태였어.
그래서 모든 게 괜찮은 듯하지만 아무것도 괜찮지 않은 그런 날들이었는데
그러다 너를 만나게 된 거야.
그리고 그날 나눈 대화를 두고두고 곱씹어보다
나는 그날의 대화로 인해 내 삶 속에서 꽤 큰 결정들을 내리게 되었어, 너는 상상도 못 했겠지만.
네가 평범하게 나눈 너의 일상 속에서 나는 그와는 조금 다른 것들을 보게 되었으니까.
배울 게 많은 친구다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돼 덕분에 많이 배우게 됐다고 할까.
그래서 고마웠어. 무언갈 느끼고 깨닫게 해주어서.
네가 물었었잖아. 무얼 할 때 진정한 쉼을 느끼냐고.
예상을 못 한 질문이었기에 흐지부지 답을 했는데, 그 당시 진정한 쉼이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거 같아.
쉬고 있으면서도 쉼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거든. 그때 난 방향을 잃었었어.
그래서 그런지 그날 밤 집으로 걸어가는 길, 그리고 그 후에도
그 질문이 두고두고 생각이 나더라. 무얼 할 때 진정한 쉼을 느낄까, 나는.
그러다 보니 답을 알겠더라. 산책.
나는 걸을 때, 나는 저녁에 걸을 때, 나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에 걸을 때,
나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에 같이 있으면 편안한 친구와 걸을 때, 그럴 때 진정한 쉼을 찾더라고.
아마 그게 내가 학부를 보내며 지친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었고
또 먼 서울을 그리며 꿈꿨던 하루였기에 더 그랬던 거 같아.
강의가 끝나고 잔뜩 책에 뒤덮여 있다 문득 잠깐 캠퍼스를 한 바퀴 돌고 오는,
혹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과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 그 여유로움 속에서
한강을 따라 걷는 시간, 그게 나에게는 쉼이었더라고.
아쉽다. 너와도 그런 시간을 보냈더라면
우리는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너무 면접 치루 듯 너를 만나러 간 것 같더라.
그래서 한 번 더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만약에 우리의 길이 한 번 더 겹치게 된다면,
그럼 나 묻고 싶은 이야기도, 또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는데.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았어.
그날 우리의 벽의 틈으로 비추던 너의 모습은
내가 배울 점이 많고, 배우고 싶은 점도 많은
그런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았어.
그게 두고두고 아쉬워.
낯선 서울에서 낯설지 않은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글쎄, 우리가 또 만날 일이 있을까?
생각보다 세상은 좁은데, 생각보다 또 세상은 넓더라고.
만약에 우리의 길이 한 번 더 겹치게 된다면,
바람이 부는 선선한 저녁,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산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변함이 없어.
나는 궁금한 게 많거든, 여전히.
고마웠어. 잠깐 스쳐 가는 인연이었는데, 스쳐 가지 않고 머무르게 된 무언갈 받았거든.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한 번은 꼭 하고 싶었어.
덕분에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또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아직 저쪽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그래서 참 고맙다고.
2017년 5월
마지막 봄, 서울에서
그대는 꼭 행복하길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시오.
내가 그 사람을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가 그 편지를 본다면 연애편지로 읽히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친구에게 보내는 일상적인 편지처럼 읽히도록 쓰시오.”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22. 그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