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멋졌다
날이 너무 좋았어요, 그죠? 그래서 다가올 저녁 약속을 생각하니 낮부터 설레더라고요. 낯설고 정을 못 붙이던 서울도 저녁에 멋진 야경을 선사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만히 멈추어 한참을 바라보고는 했는데. 학생 때는 어둑해진 후 저녁에 타는 버스가 그렇게 설레었다면, 더 큰 후에는 언덕이든 산이든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 야경을 보는 게 그렇게도 설레는 것 같아요.
몇 번 기회가 남지 않은 거 같아 오랜만에 보기로 약속을 잡았죠, 서울 야경을 보러 가자고. 야경을 보러 가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그 가운데 한참을 고민하다 근처에 공원을 가기로 선택했어요. 가까운 동네인데도 이사 오고 나서 한 번도 못 가본 게 떠날 때가 되니 마음에 걸렸고, 마침 또 찾아보니 그곳에서 담은 사진들이 너무나 멋지길래 그곳으로 정했죠. 그러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저녁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어찌나 시간이 느리게 가던지. 나는 참 복도 많죠. 어떻게 이렇게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예쁘고 멋진 걸 나눠보고 싶은 친구를 얻었을까요?
역에서 만나 너무나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너무나 좋아하는 메뉴를 시키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조금씩 선선해질 무렵 사거리를 지나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가고. 나 진짜 그 카페 가보고 싶었는데. 야경을 보기도 전부터 너무 신이 났어요. 집순이도 돌아다니는 게 이렇게 신이 날 때가 있구나 싶을 만큼 말이죠.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혀 비록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 하긴 했지만 그 과정이 하나도 지치지 않았어요. 그렇게 노선을 바꾸고 버스를 갈아타고 하면서도 정말 신이 났어요. 다니는 건 좋아하지 않아도 걷는 건 참 좋아하는 내게 함께 걸을 수 있는, 걷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거든요. 그래서 한참을 걷고, 또 걷고, 길을 모르고 길을 잃어도 순간순간이 다 즐겁더라고요. 물론, 무엇보다 끊기지 않던 우리의 대화 때문이겠죠?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오랜만에 컴퓨터에 하얀 백지를 띄웠어요. 그날 우리가 나눴던 대화에 대하여.
“근데 있지 - ”
얼마 전에 만나게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얼마 전에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된 사람인데, 이렇게 편할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잘 맞는 사람이라 했어요. 그래서 깜짝 놀랐다고. 처음 만나는 건데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고 오래 알고 지내온 것처럼 너무 편안한 사람. 그리고 -
무엇보다 처음으로 오빠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이제까지는 누구를 만나도 항상 마음 한쪽에 오빠 생각이 났었는데,
처음으로 오빠 생각이 나질 않았다고.
놀랐어요. 아니까요, 언니의 마음을. 옆에서 지켜봐 온 저로서는 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오빠에 대한 마음을 아니까. 그래서 제자리로 돌아가듯 늘 오빠에게로 돌아가던 마음을 아니까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물었던 질문이 이해가 가더군요. 편안함과 설렘. 편안함과 설렘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무얼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그날은 망설임 없이 편안함이라고 했는데. 그 질문만을 물었을 땐 답이 정말 명쾌했어요. 편안함. 정말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처럼 편안했던 관계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있으니까요. 어딜 가고 무얼 하고 전날 밤 설레는 고민에 잠 못 드는 시간보다, 편안한 옷차림에 머리를 질끈 묶고 집 앞에서 만나 동네 한 바퀴, 두 바퀴 돌면서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즐거우니까. 그래서 그 질문 하나만 놓고 물었을 때 내 대답은 굉장히 명쾌했는데, 최근 언니의 삶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듣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간단한 질문은 아니었더라고요. 편안함과 설렘, 편안함과 설렘.
새로 만나게 된 사람은 너무나 편안한데, 처음 만난 그 자리 함께한 몇 시간 동안 오빠 생각이 나지 않았을 만큼 너무 편안했는데, 근데 – 근데 이제 거의 3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오빠를 마음에 품게 된 그 설렘과는 다르다고. 그 설렘은 없는 것 같다고.
그날 나는 결국 편안했던 새로운 만남보다 오랜 시간 마음에 두었던 오빠의 연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거 같아요. 혹여나 타이밍의 문제라면, 마음이 겹치게 되었을 때 시기가 겹치지 않아 놓치면 아쉬울 거 같아서요. 언니는 한결같이 마음을 간직했으니까요. 옆에 있을 때나 옆에 없을 때나, 오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그 긴 시간 동안 언니는 흔들림 없이 마음을 준 채 기다렸으니까요. 그 마음이 너무 소중하니까. 그래서 혹시라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장난처럼 시기가 엇갈려 서로를 놓치게 될까 하는 그 고민 때문에. 그래서 그냥 왠지 더 어려워 보여도 오빠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해보는 건 어떻겠냐, 그런 결론을 전달했었죠. 참 우리는 재밌게도 또 신기하게도 처한 상황과 그 속에서의 마음이 비슷해 더욱 공감이 가고 더욱 이해가 돼서. 그래서 더 그랬던 거 같아요.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간직한 채 긴 시간을 기도로 보냈다는 걸 아니까.
근데 언니, 며칠의 시간을 더 보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다른 마음이 들기도 해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도, 그 시기에 서로 옆자리가 비어있는 것도, 또 무엇보다 그 좋은 사람과 마음이 맞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사람 인연이 어렵고 묘해서, 한쪽은 마음이 가는데 상대방은 마음이 없거나, 한쪽이 혼자가 됐는데 그사이 상대방에게 누군가 생겼거나, 아니면 멀리 이사 가게 되거나, 연을 갈라놓는 이유는 생각보다 많고 그 모든 걸 뛰어넘어야 함께할 수 있죠. 근데 얼마 전 만나게 된 그 사람은 거의 모든 것이 서로 맞물린 거잖아요. 생각하면 할수록 그게 정말 대단한 일이더라고요.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 어쩌면 가장 좋은 사람은 나를 알아봐 준 사람 아닐까. 그도 나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준 사람 아닐까…
그래서 아마 이번 주에 다시 언니를 만났다면 그때와는 다른 답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인연은 만들어가는 거라고 주장했던 것과 달리 어쩌면 정해져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지금 이 시기에 그 사람이 언니 곁에 찾아온 것이 정말 인연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만약, 그 오랜 시간 마음에 품어왔던 사람이 만약 정말 인연이라면, 그러면 그 인연만의 정해진 시간에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물론 다시 생각해봐도 어려워요, 그죠?
사실 어쩌면 더 많은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요.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말은 하지만, 막상 우리는 혼자 지내는 삶에 더 익숙해졌던 걸지도 몰라요. 사실 마음속으로는 조금 귀찮고 번거롭게 느꼈을지도 몰라요, 누군가를 다시 인생에 들인다는 것이. 어쩌면 그래서 정말 좋은 사람을 두고도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해 그저 떠나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괜히 한번 해보는 소리와도 같으니까. 나는 두렵기도 한 거 같거든요. 이제 겨우 그 빈자리를 덮고 혼자 지내는 삶에 익숙해진 거 같은데, 누군가를 새로 들였다 그 사람도 떠나면 이 과정을 다시 겪어내야 하는 게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근데 좋은 사람이 내 곁에 왔고
그 사람도 나를 좋은 사람으로 봐주는 것은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기적을 내가 지금
과거의 두려움 때문에 놓치는 걸 지도요.
이렇게 적으면서도 참 어렵네요. 차라리 헤어질까 말까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면 그 답은 생각보다 정해져 있을 때가 많은데, 누군가와의 인연을 시작해야 할까 말까를 놓고는 무어라 선뜻 말하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이전의 결론은 오랜 시간 좋아했던 오빠에게 다가가 보라는 것이었다면, 이번의 결론은 옆에 있는 사람을 놓치지 않기를 하는 것인데… 결국 나의 결론은, 전자든 후자든 나는 응원하겠다는 것! 이라고 내린다면 좀 싱겁지요? 그래도 진심인걸요.
최근에 약속이 많았는데, 그 모든 사람에게 한 번씩은 꼭 물어봤어요. 당신이라면 언니의 상황에서 어떡하겠냐고. 마침 또 결혼을 결정한 선배들이 많아서, 어떻게 만나게 됐으며, 언제 함께하기로 결심했는지 그런 이야기와 함께요. 그들은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결혼을 마음먹었을까. 어떻게 확실한 것 하나 없는 삶 가운데 한평생 함께하자는 그 어렵고 중대한 결정을 내렸을까.
근데 참 신기하게도 모두의 대답은 같더라고요. 이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기에, 이 사람이니까 함께할 수 있겠다 싶었다는 말. 처음에는 괜찮은 사람 같아서 만나기 시작했다가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이라서, 그 사람이기에, 그 사람이니까 하루를 같이 시작하고 하루를 함께 마무리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말.
이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기에
이 사람이니까
혼자인 것이 더 익숙해지기 전에, 본래 우리의 지어진 모습대로
좋은 사람 곁에서 세상에 한 송이뿐인 꽃으로 피어나기를.
더없이 멋진 사람 옆에서, 더없이 행복할 언니를 그려보며.
P.S. 먼 훗날 (혹은 머지않은 미래에) 어디에 있어도 결혼식에 꼭 갈게요. 앞줄에 앉아서 언제 이렇게 컸냐며 통곡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25. 그녀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