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오두막
있잖아요,
며칠 전에 영화를 보러 갔어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극장에 갈 정도로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데,
이번만큼은 개봉하는 날 가서 본 영화였어요. 제목은 “오두막.” 들어보셨나요?
원작이 워낙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킨지라 들어보신 분들이 꽤 있을 거로 생각해요.
윌리엄 폴 영의 장편 소설, “오두막.”
작년에 친한 목사님이 한국에 잠깐 방문하셨을 때 이 책을 선물해주셔서 그때 읽게 되었어요.
사실 별다른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금방 빠지게 되더라고요.
만약 신앙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더라면 읽지 않았을 소재지만,
신앙의 갈등을 함께 풀어갔기에 더욱 빛을 발휘한 내용이었어요.
표지에 제목 위에 작은 글씨로 “비극과 영원이 만나는 곳”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 한 줄 그대로예요. 비극과 영원이 만나는 오두막에서 보낸 어느 주말에 대한 이야기.
주인공인 맥은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떠났다가 마지막 날 사고로 인해 막내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경찰에 신고해 온종일 매달려 찾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더 깊숙한 산속 한 오두막에
피가 범벅인 채로 남겨진 딸의 원피스죠.
그 후 가정에도 금이 가고, 맥의 인생도 빛을 잃어요.
그렇게 딸을, 또 동생을 잃었다는 슬픔이 온 가족을 덮어버리죠.
그러던 와중 어느 날 그 오두막에서 기다리겠다는 편지가 한 통 도착하고,
딸을 죽인 살인자가 보낸 편지일 거로 생각하고 복수를 하려 다시 오두막을 찾아가는 맥은
그곳에서 뜻밖의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두막에서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주말을 보내게 되죠.
그 시간 동안 가슴에 묻어뒀던, 이해할 수 없었던 질문들을 분노와 함께 던지고 무너지는 듯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맥은 자신을 깊이 갉아먹던 상처로부터 치유를 받게 됩니다.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대다수가 바로 그 오두막에서 보낸 주말, 치유의 과정에 대해 그려나갑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고난을 겪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만큼 큰 고난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맥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너무 비극적이죠.
자기의 실수로 인해 딸을 잃었다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지기에
그 감정이 더 극에 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속에 피어나는 의문들은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본 질문들이 아닐까 합니다.
“당신이 미시를 지켜주지 못한 마당에 어떻게 나를 지켜줄 거라고 확신할 수 있겠어요?” (140)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당신은 나를 버렸듯이 예수도 버렸어요!” (147)
“미시는 보호받을 권리가 없었나요?” (215)
“가끔씩은 당신이 통제해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231)
“아마도요. 하지만 하나님에게서 미시를 전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미시를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그 아이가 그런 무서운 일을 당하게 놔두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그 아이는 순진했어요.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죠.” (264)
“파파는 멈추게 하지도 않았어요.” (265)
“그래도 미시가 왜 죽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아요.” (266)
고통의 형태는 다를지라도, 그 고통 가운데에서 드는 질문은 같은 것 같아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실 수 있을까? 어떻게 그저 쳐다보기만 하실 수 있을까?
보호해주셔야, 지켜주셔야, 막으셔야, 혹은 이렇게 진행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
한 번쯤은, 아니 여러 번 우리가 생각했을 법한 질문들 있잖아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지금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맥에게는 그게 딸을 잃은 슬픔이었어요. 그것도 딸이 유괴되고 살해되는.
아버지로서 자기 자신이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또 가족이 멍들고 찢어지는.
죽음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고난 있잖아요.
모두 다 하나씩은 갖고 있는 상처.
근데 그 상처의 시작이 된, 악몽의 상징인 오두막으로 돌아가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아픔의 뿌리에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은
맥이 생각한, 맥이 판단한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걸 그 주말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맥은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할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당신,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돌아가셔야 했던 건 정말 슬픈 일이었어요.”
파파가 식탁을 빙 돌아와서 맥을 크게 포옹했다.
“그런 줄 알고 있었어요. 고마워요. 하지만 우리가 전혀 슬프지 않았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죠.”
파파가 그때 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예수에게 동의를 구하자 예수도 “그럼요!”라고 대답하며 맥에게 말했다.
“당신만을 위해서였대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159)
왜 미시가 그런 고통을 당해야 했는지 맥이 분노에 가득 찬 채로 울부짖을 때
이러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랬다는 직접적인 답을 주시지 않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뭔가 깔끔하지 않은, 어딘가 찜찜한 느낌이 남을 수도 있어요.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럴 때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알지 못할 때가.
요셉이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이러이러한 이유로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귀띔해주시지 않잖아요.
옳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유를 알 수 없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절망했던 거 같아요.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건 아니지 않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않냐고.
“미시 생각이 계속 나요. 트럭에서 혼자 무서워하면서…”
예수가 팔을 뻗어 맥의 어깨를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맥, 미시는 절대로 외롭지 않았어요. 내가 그 아이 곁을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우리는 한순간도 그 아이를 떠나지 않았어요. 내가 나 자신을 버릴 수 없는 것처럼 그 아이나 당신도 버릴 수 없어요.” (280-281)
맥의 질문들로 시작해 하나님의 대답으로 끝나는 흐름은 치유의 과정을 담고 있어요.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혹은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때
맥이 던지는 여러 질문에 끄덕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겠지만,
책의 끝에선, 혹은 영화의 끝에선 그 분노, 좌절감, 실망감, 답답함을 뛰어넘는
평안이 마음에 찾아올 것입니다. 저는 그랬어요.
그래서 지금도 내 마음을 관찰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맥의 질문과 하나님의 대답을 꼽아요.
오늘 나는 맥의 질문들이 더 공감이 가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대답들이 더 공감이 가는지.
김수환 추기경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머리에 있는 것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길’이라고 하신 것처럼
맥의 질문들로 시작해 하나님의 대답까지 가는 길은 어쩌면
한평생의 길고 긴 치유의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의 질문이 하나님의 답으로 변화되는 과정 말이죠.
그 과정을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머리로부터 가슴까지, 나의 질문들로부터 그분의 대답까지.
오두막, 상처의 근원이자 뿌리인 바로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만나주시는,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떠나는 여정.
영화를 통틀어서 딱 한 장면만 꼽으라 한다면
부엌에서 하나님과 맥이 나눈 대화 중 당신이 그러셨으면 안 된다고 분노를 터트리는 맥에게,
어떻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끌려가던 미시를 버릴 수 있었냐고 분노하는 맥에게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읊은 하나님의 답이에요.
“No Mack, you misunderstand the mystery…
Don’t ever think what costs my son didn’t cost me, too.
Love always leaves a mark.
I never left Him. I never left you. I never left Missy.”
맥의 상처의 여정에 마무리를 짓기 위해 하나님과 떠나는 치유 여행.
책 한 권, 그리고 영화 한 편일 뿐인데 그 하나가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길.
고난과 역경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하는 동행,
그 동행에 대하여.
비극과 영원이 만나는 곳,
그곳 오두막에서.
있잖아요, 그 스물일곱 번째
27. 오두막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