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어서 미안해
있잖아, 기억나?
저녁에 선선한 바람이 불면
이쪽으로 걸어와 너와 손잡고 한길 한길 걸으며
산책하는 게 소중한 일상이었는데 말이야
이렇게 세상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 싶었으니까
기억하나 궁금해서
있잖아, 기억나?
여기 옆에 카페 말이야
멀다며 투덜거리던 너도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거 두 개 시키던 너도
어제 왔는데 또 몇 시간 대화로 보내던 우리도
문 닫을 때 즘이면 걸어온 길 되돌아가
집 앞까지 바래다주던 너도
그랬던 우리말이야
너는 기억하나 궁금해서
있잖아, 나 생각보다 괜찮아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삶을 나누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더라
나 생각보다 괜찮다고
여기 오기 전에 너와 연관이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갔다
네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걱정했거든
여길 오면 잠들어있던 추억들에 무너질까 봐
근데 나 생각보다 괜찮아
나 생각보다 되게 잘하고 있어
널 만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
집이 많이 그리울 뿐이야
어쩌면 그 차이이었나 봐
네가 있고 없음이
그러니 너도 잘 지내고 있겠지
나와 만날 때도 내가 꼭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 너니까
그러니 나도 잘 지내야겠지
너 없이 하루도 못 살겠던 날들이 길었는데
나 또 하루를 보냈네
있잖아
여기 옆에 있는 모든 게 시작됐던 그 벤치 말이야
거기를 찾아가서 앉으면
네 기억이 돌아와 힘들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어
그저 손만 조금 차가울 뿐
눈물이 안 났어
나 이제 괜찮아졌나 봐
근데 이곳 말이야
너와 처음 한 이별을 마무리했던 여기
여기에 다시 앉으니
그건 좀 힘들더라
아직 다 괜찮은 건 아닌가 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차이는
조건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차이인 거 같아
나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 있을까
나의 가치를 몰라준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맞는 걸까
아니겠지, 이제 너를 놓아줘야겠지
네가 없는 이곳은
더는 반짝이지 않아
내 마음속에 소중했던 별 하나가
오늘에서야 드디어 영원히 잠이 든 기분이야
이번에 떠나면 더는 그립지 않겠지
이곳에서 정리를 마치고 떠나면
내 마음속 가장 아름답던 별도 잠이 들겠지
그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겠다
너를 만나기 전으로
우리가 사랑하기 전으로
그게 내가 온 이유이자 목적이니까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일
잘 지내고 있어?
힘든 건 없고? 그리운 것도 없고?
내가 보고 싶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걱정할 필요도 없었던 걸까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은데
지금도 전화를 걸어 말해주고 싶거든
이제 네 가까이에 있다고 말이야
이제 우리, 그때 없었던 시간도 많다고 말이야
그냥 한 번만 더 안아봐도 되겠느냐고
우리 한 번만 더 아무 말 없이 이곳을 산책하면 안 되겠느냐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아
우리 또 똑같은 문제로 무너지겠지
그런데 내가 한 번은 더 물어볼 수 있잖아
내가 보고 싶지 않았냐고
내 생각이 조금도 나지 않았느냐고
넌 이미 떠나고 없는데
내가 너무 늦어서 미안해
너 힘든 거 다 시키고, 이제야 와서 미안해
나 없는 일 년 동안 그 그리움을 다 안고 지내느라
많이 보고 싶었을 텐데
늦게 온 나도 네가 이렇게 보고 싶은데
많이 원망하지는 않았는지
다른 시간 속에 멀어진 나를 말이야
있잖아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고 갈 거야
나 여기서 잘 정리하고 갈 테니까
너도 거기서 잘 지내야 해
이 다음엔 네 옆에서 네 손 꼭 잡아 줄 수 있는 사람 만나
나처럼 멀리서 그렇게 해 준 사람 말고 말이야
나도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돌아가서 좋은 사람 만날게
알겠지? 우리 꼭 더 행복하자
우리 꼭 더 행복해야 해
서로를 잃었어도 행복했다 말할 수 있게
내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