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라면 같이 해도 행복하겠다 - 싶었던 것이
“만약에
중요한 회사 클라이언트랑 미팅을 잡아놨는데
알고 보니까 예전부터 가족과 여행 가기로 한 날짜인 거야
모르고 깜빡한 거지
근데 약속한 날짜는 다 되었고
너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어?”
교재를 읽다가
서론에 나와 있는 질문을
물어보더라
“글쎄
가족한테 미안하다 그러고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가지 않을까?”
“음… 그렇구나”
“넌 어떻게 할 건데?”
“난 클라이언트한테 미안하지만 미팅 날짜를 바꾸자고 하고
가족 여행을 갈 거야”
별거 아니었을 수도 있는 질문과 네 대답이
그 순간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어
그런 상황에서 가족 여행을 간다고? 정말?
“왜?”
“가족이 더 중요하니까
더 중요한 걸 선택할 거 같아”
사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거든
원해서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일과 가족,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는
대부분 일이었거든
굳이 핑계를 대자면
우리 아빠도 항상 그러셨고
“넌 왜 클라이언트를 선택했는데?”
“난…
누가 더 내 상황을 이해해줄까를 놓고
클라이언트는 내게 더 이해심을 베풀 이유가 없는 사람이지만
아무래도 가족은 좀 더
이해해주지 않을까 해서…”
덜 소중해서가 아니라
더 이해해줄 테니까
“아, 그렇구나”
가 아닌
사실
덜 소중해서였을까
상처는 똑같이 받을 텐데
이해를 해준다는 게
괜찮다는 의미는 아닐 수도 있는데
나에게 더 소중한 사람들한테
상처를 더 쉽게 주지 않았나
그 날이었어
그 질문이었어
너를 늘 좋게 보았지만
너를 좀 달리 보게 된 것이
내 기준을 바꾸어준 것이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다잡게 된 것이
내가 네게
마음을 더 내어준 것이
이런 사람이라면
같이 해도
행복하겠다
싶었던 것이
너도 나의
우선순위가 된 것이
너는 바빠도, 아파도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를 전해오고는 했지
온종일 못 본, 혹은 중간에 잠깐 인사만 한 대다수 날에는
우리 집 앞으로 걸어오고는 했지
나 같았으면 과제, 시험, 강의 준비 뒤로 미뤘을 만남을
너는 미루지 않았어
보고 싶으면 바로 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내게는 따뜻한 위로였어
원래는 따지고 계산할 것이 많았거든
오늘 할 일이 얼마나 남았는가
그 친구는 지금 얼마나 바쁜 시기인가
다 나열하다 보면
결국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는 게
친구였어
근데 너는
처음으로 내게
전화 한 통이면
손 흔들며 웃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어줬던 거야
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오늘은 못 봤네’ 하면
길어봤자 5분, 10분일 것을 알면서도
‘내려와’라는 문자를 보내던
그런 친구가 되어줬던 거야
그게
내가 너를
좋아했던
이유야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리 어떻게 잊을까”
Reference.
나미의 “슬픈 인연”
나미 작사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