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책은 읽어요. 그런데 읽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성인 글쓰기 수업을 하다 보면 정말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의외로 이 말을 하는 분들 중에는 책을 ‘안 읽는 사람’보다 ‘꾸준히 읽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한 달에 한 권씩은 꼭 읽는 분도 있고, 출퇴근길에 전자책을 틈틈이 보는 분도 있어요.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이렇게 느낍니다.
“분명 읽긴 읽었는데,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나요.”
“좋은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설명은 못 하겠어요.”
“읽을 때는 이해한 것 같았는데, 막상 남는 게 없어요.”
저는 이럴 때 늘 말씀드려요. 그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읽는 방식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고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읽기’를 눈으로 문장을 따라가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글자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읽으면, 읽은 것이라고 믿는 거죠. 하지만 사실 읽기에는 그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문장을 따라가는 것과 내용을 자기 안에 남기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어떤 글을 읽었을 때 “아, 좋은 글이다”라고 느끼는 것과, “그래서 이 글이 결국 무슨 말을 하는 거지?”라고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어른들이 여기서 멈춥니다.
느낌은 받았는데, 정리는 안 된 상태.
공감은 했는데, 언어화는 안 된 상태.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막연한 인상만 남고, 내용은 흐릿하게 사라집니다. 특히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이런 일이 더 자주 생깁니다. 문장이 부드럽고 술술 읽히기 때문에 내가 잘 읽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거든요. 그런데 술술 읽히는 것과 또렷하게 남는 것은 다릅니다. 오히려 너무 쉽게 넘어간 문장일수록 내 안에 걸리지 않고 지나가 버리기도 해요.
저는 수강생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읽고 나서 아무것도 안 남는 책이 있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읽은 경우가 많아요.”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이건 굉장히 희망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읽는 능력은 타고나는 감각만이 아니라, 훈련으로 바뀌는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책이 남는 읽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창한 방법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저는 딱 세 가지만 권합니다.
첫째, 한 챕터를 읽고 나서 “그래서 이 부분은 무슨 말이었지?”를 한 문장으로 말해보는 것.
중요한 건 멋지게 요약하는 게 아닙니다.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다만 자기 언어로 한 번 붙잡아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한 문장이 없으면 우리는 읽은 내용을 계속 남의 언어로만 소비하게 됩니다.
둘째, 공감한 문장보다 ‘멈칫한 문장’을 체크하는 것.
사람들은 보통 좋은 문장에 밑줄을 긋습니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실제로 나를 흔드는 건 ‘좋다’보다 ‘왜 이 문장에서 나는 멈췄지?’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상하게 오래 남는 문장, 괜히 불편했던 문장, 나를 찔렀던 문장. 그런 문장이야말로 지금의 나와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읽기는 결국 정보 습득만이 아니라, 나를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셋째, 다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려 하지 말고 읽는 중간중간 짧게 메모하는 것.
많은 분들이 독서를 거창하게 마무리하려고 해요.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뭔가 제대로 정리해야 할 것 같고, 좋은 감상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오히려 아무것도 못 씁니다. 하지만 남는 독서는 대부분 큰 감상이 아니라 작은 메모에서 시작됩니다.
“이 문장은 지금 내 상태랑 닮았다.”
“나는 이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 사람이 말하는 성실함은 내가 아는 성실함과 다르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이 짧은 기록들이 쌓이면, 책은 그냥 지나간 텍스트가 아니라 내 생각을 통과한 경험이 됩니다. 결국 책을 읽고도 남는 게 없는 이유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읽은 내용을 붙잡아 둘 작은 동작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읽기는 많이 한다고 반드시 깊어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읽고, 한 번 멈추고, 내 말로 바꿔보고, 짧게 적어보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이 남깁니다. 그러니 이제는 너무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왜 책을 읽어도 남는 게 없지?” 하고요.
남지 않는 독서를 한 것이지, 남길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책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만 남겨도 괜찮습니다. 그 문장이 내 것이 되는 순간, 그 독서는 이미 충분히 잘 읽은 독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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