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꽃을 사랑하게 됐어
결국 꽃을 사랑하게 될 거야,
탈린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나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배 시간까지 두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 돌길 위로 발을 올려보았다. 불과 전 날까지만 해도 이 돌길이 꽤나 불편하고 걸림돌처럼 느껴졌었는데, 이제 조금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다시 만난 비루 게이트(Viru Gates), 전날에는 보지 못했던 상점들이 줄 지어 있었다. 대부분이 꽃 가게들이었다. 푸드 트럭에 익숙한 우리는 왜 하필 꽃집들이 늘어져 있는지 생소하기도 조금은 들뜬 기분이 들기도 했다. 꽃집들 덕분인지 비루 게이트(Viru Gates) 앞은 향기로웠다. 한 상점 앞에 놓인 샛노란 꽃이 내 시선을 머물게 했다. 그 꽃을 보고 있으니 한 사람이 떠올랐다.
문지인, 이름 앞에 성만 바꿔 사용하고 있다. 달을 좋아하기에 문(moon)이라고 가끔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고는 하지만, 문은 엄마의 성씨이기도 하다. 엄마를 보면 나는 언제나 연민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짐.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게 나의 생존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짐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엄마와 나 사이의 건널 수 없는 다리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나의 삶을 철저하게 분리했다. 그리고 그 다리 넘어서 엄마를 바라봤다. 마치 타인보다 조금 가까운 사이를 보는 것처럼_
‘다시 태어나면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나는 이번 생으로 충분한 거 같아. 그러니 다시 태어나면 자유롭게 살아, 우리 만나지 말자’. 엄마를 바라보는 내 모습에는 죄책감이 끈적하게 달라붙어있었다. 떼고 싶지도, 뗄 수 도 없는_ 너무 떨쳐 내고 싶은 감정들. 어느 날, 한 아이돌이 한국의 수많은 딸들이 엄마의 삶을 동정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저는 아니에요. 저는 엄마가 절 빨리 낳아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엄마의 행복이야, 그러니 우리 빨리 만나’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간신히 막고 있던 댐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넘치다 못해 범람하는 물속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보니 어느새 강물도 잠잠해져 있었다. 막았던 댐이 무너질까 두려웠는데, 막상 무너지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젖은 몸을 일으켜 바위에 앉아 한동안 내리쬐는 햇살에 몸을 말렸다. 그리고 다시 다리를 찾았다. 아직 건널 용기가 없어 다리 끝자락에 서서 엄마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건 있어?’ 그 첫 번째 물음에 엄마의 대답은 꽃이었다. 유난히도 꽃과 식물을 사랑하는 엄마. 죽어가던 식물들도 엄마 손을 거치면 금세 살아났다. 그 모습들을 아주 어릴 적부터 지켜봐 왔지만 최선을 다해 외면했었다.
‘꽃이 왜 좋은 거야?’
‘다시 피잖아, 이렇게 죽은 거 같아도 잘 돌봐주면 봄에 꽃이 펴. 왜 꽃 키워보게?’
‘아니, 내 손에 오면 다 죽을 거야’
‘지인아, 너도 분명히 꽃을 좋아하게 될 날이 올 거야’
아직도 누군가에게 ‘꽃을 좋아해요’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궁금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꽃들마다의 계절과 꽃들마다의 살아가는 방식을, 당시 에스토니아를 여행할 때만 해도 우리 집에는 그 흔한 식물 하나 없었다. 신혼집 선물로 들어온 다육이도 죄다 죽어나갔던 때였다. 부엉이와 나는 핀란드 여행에서 돌아와 콩고라는 대형 식물을 하나 집으로 데려왔다. 그 녀석이 우리의 첫 번째 식물이다. 지금까지 8년째 함께 살고 있다. 지금 보니 비루 게이트 앞에 있었던 샛노란 꽃은 엄마를 닮았던 거 같다. 밝고, 반짝였을 내가 보지 못 한 어린 날의 엄마.
나는 그렇게 꽃집 앞에서 그 노란 꽃을 한참을 보고도 차마 꽃을 살 용기가 없어 그대로 몸을 돌렸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선물 중에서도 꽃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고 했다. 특히 에스토니아의 국화인 ‘센토레아'(centaurea)를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달구지 국화', '수레국화'라고 불린다고 한다. 꽃잎이 수레바퀴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만약 지금의 나였다면 핀란드로 가는 길에 우리가 머물 곳의 주인을 상상하며 꽃을 샀을지도 모른다. 엄마 말대로 꽃이 좋아지고 있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