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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jiin Sep 09. 2024

라에코야 광장에서 울려 퍼진 나팔소리

음악 사용법

‘음악 사용법’



 올데 한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우리는 나팔 소리에 이끌려 식당 바로 옆에 있는 라코에야(시청) 광장으로 향했다. 내 인생에서 악기라면 어린 시절 엄마들의 유행 노선에 합류에 고작 몇 개월 퉁탕거렸던 피아노가 전부이다. 그런 내가 들어도 어딘가 많이 어설픈 연주였다. 어설픔은 연주뿐만이 아니었다. 바람에 날아가는 모자를 잡느라 연주가 끊어지기도 했으며, 나팔 소리의 음이탈도 빈번하게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나의 몸은 그의 음이탈까지 음악으로 받아들였는지, 어깨에 이어 엉덩이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비둘기를 파트너 삼아 지금 나의 기분을 발재간으로 전달하기도 하였다. 아마 그의 연주가 완벽했다면 나는 어깨를 들썩이는 대신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은 살짝 벌어진 상태에서 박수만 연신 쳤을지 모르겠다. 음악을 제대로 듣고, 사용하고 있는 거 같아 어쩐지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언제부턴가 경연 프로그램들이 줄지어 방송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선하기도 했고, 쉽게 볼 수 없는 가수들을 매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날들을 보낼 때도 있었다. 또 몰랐던 가수나 댄서를 알게 되며 설레는 마음이 다시 일렁이기도 하였다. 경연에 중독되어 갈수록 나의 몰입은 점점 깊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의 무대를 즐기고 있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무대에서 실수를 하지 않을까 긴장하며 바라봤고, 응원하던 팀이나 가수가 탈락하게 되면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결국 피로감이 쌓인 나는 경연 프로그램과의 안녕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음악을 다시 듣기로 하였다. 






  언제 음악을 가장 많이 들었는지 생각해 보니 예민했던 중,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요동 치는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온몸으로 안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배출되지 않은 감정은 곯기 시작했고, 쌓이고 쌓인 만큼 더 이상 안고 다닐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길로 버릴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나의 감정 배출구는 매일 나와 함께 등하교를 하던 mp3플레이어였다. 취향도 어쩜 이렇게 잡다한지 수록된 곡들을 보니 발라드부터 댄스곡까지 뒤죽박죽 섞여있었다. 이 상태로 음악을 들었다가는 몇 곡 안 듣고 가방에 mp3를 쑤셔 넣는 몇 분 뒤, 미래의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럼, 한 곡만 듣자. 딱 한 곡만. 그렇게 한 곡을 선정하고, 선정된 곡은 '그날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나의 하루를 함께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친구들에게 약속 있다는 핑계를 대며 혼자 20분쯤 늦게 학교에서 빠져나왔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약 4km. 걸음이 빠른 편이기에 한 시간이 조금 안되게 걸렸다. 선정된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걸었다. 개운한 감정이 들지 않으면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거나 집 주변은 반복해서 걸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감정이 사라지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나의 이런 음악 사용법은 어린 나의 슬픔들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보다 가벼워질 수 있었고 그 에너지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한 손으로 가볍게 던져버릴 만큼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줬다. 이 넓은 광장 구석에서 작은 엠프 하나를 들고 연주를 즐기는 그의 모습에서 잊고 있던 지난날의 나의 음악 사용법이 떠올랐던 건 아마도 어설픔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어설픔에 대한 너그러움, 그게 있다면 걷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흥겨워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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