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법부터 바꿔야겠어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한 답으로는 뭐가 있을까? 일상으로부터 도피, 휴식, 새로운 경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많다는 인증을 위한 여행 등 대부분으로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여행을 떠난다. 나도 여행을 떠난 이유를 생각해 보니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도피였기 때문이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숲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 숲을 왜 지구 반대까지 와서 찾아야 했는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의 일상은 우울증에 걸려있었다. 어떤 기대나 의욕도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 삶.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우리만의 방법으로 우리만의 미래를 만들어나간 적도 있다. 하지만 하나의 모습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우리는 그저 다듬어지지 않은 조각이었던 거 같다. 그렇게 완성품이 되기 위해 다듬어지는 동안, 나는 나를 스스로 구해내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던지는 말 한마디, 한 마디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냈었다.
미완성 작품을 바라보며,
아니, 애초에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을 바라보며-
보물 찾기를 하듯 여기에 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떠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떠한 기대감은 있었다. 기대감. 그래, 나의 하루에는 기대감이 없었다. 그 결과는 나를 과거 속에서 살게 만들었다. 나는 선택의 후회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 반복되는 생각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갈 수 있다면 멀리, 그리고 도망친 그곳에는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카모메 식당>의 발자취를 따라오다 보니 여기 톰페아 언덕에 앉아 탈린을 내려다보고 있게 되었다. 톰페아 언덕에서 내려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날이 맑아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궂은 날씨에 기분도 조금 가라앉았는데, 어느새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찌푸려야 했다. 그 순간의 눈부심을 잊을 수가 없다. 날씨 하나로 모든 게 달라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그날의 날씨에 내 기분을 맡겨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어색하지만 카메라에 담아 보기도 했다.
톰페아 언덕을 지나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러 라코에야 (시청) 광장으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구 시자지(올드 타운)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울퉁불퉁한 돌길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구 시자지(올드 타운)는 독일 뤼베크를 중심으로 상인들의 이익과 안전을 목적으로 이뤄진 한자 동맹의 주요 요충지였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이 돌길 위로 에스토니아는 많은 발전을 이뤄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로부터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 사람들의 환호와 비명소리를 품은 돌길 위로 나의 공허함도 얹어본다. 처음 걷게 된 돌길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잘 보존된 중세 시대의 건축물에 매료되어 시선이 길을 잃었다. 하지만 감탄사를 뱉기도 전에 돌길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아, 또 걸렸네’
몇 걸음 못 가고 자꾸 돌에 걸려 휘청거렸다. 문제는 내 걸음걸이였다. 나는 걸을 때 발에 힘을 살짝 풀고 발을 살짝 끄는 버릇이 있는데, 이런 내 걸음이 돌길에게는 재미난 장난감이었나 보다.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평소 걷던 높이보다 약간 높게 다리를 들어 올려야 했고, 보폭도 보다 넓게 걸어야 했다. 그렇게 넘어지지 않기 위해 새 걸음걸이를 획득하는 사이 내 걸음에 음률이 생겼다. 돌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은 흡사 놀이터로 향하는 아이의 모습과 같았고, 이 작은 돋음은 온몸으로 흘러 5월에 봄을 불러내고 있었다.
나풀거리던 걸음이 멈춰 선 곳은 우리의 허기진 배를 달래 줄 올데 한자(olde hansa)라는 식당이었다. 올데 한자(olde hansa)는 라에코야(시청) 광장 우측에 있는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식당이다. 외관부터 실내, 종업원들의 복장과 중세 시대의 음식까지 높은 수준으로 재현해 놨기에 구 시가지(올드 타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식당이기도 하다. 건물 외관부터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기대감과 긴장감을 가지고 식당 입구에서 짧은 심호흡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내를 기다리며 식당 내부를 훑어보니 오히려 우리의 복장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중세 시대 복장을 한 종업원이 우리를 2층으로 안내했다. 종업원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데 계단의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더듬거리며 종업원의 뒤를 따라 2층으로 오르니 어둠이 한층 더 내려앉았다. 테이블 위에 촛불들이 놓아져 있었지만 그 주위만 밝히고 있을 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도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에 앉아 어둠이 익숙해지길 기다렸다.
어둠이 익숙해지니 조금씩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박물관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종업원이 건네준 메뉴판은 어둠과 함께 꼬불거리는 글씨체 덕분에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그 읽어내기 어려운 와중에 'Beer'라는 단어는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허니 비어를 찾아낸 것으로 맡은 소임을 다한 듯 음식은 종업원에게 많이 주문하는 음식으로 부탁했다. 원하는 것을 향한 집념이 'Beer'에서만 그치질 않길 바라본다. 종업원이 가져다준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먼저 받은 허니 비어의 달콤함에 취해 음식에 관심이 조금 떨어진 상태였다. 스쳐가는 기억으로는 토끼였던 거 같다. 사슴과 곰, 토끼, 양 등이 올데 한자의 주메뉴였다. 앞에 놓인 음식을 보며 낯섦을 넘어 약간의 불편함도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이 불편함도 끌어안고 싶었다. 입 안으로 한 입 크게 넘어 본 음식은 조금 낯선 식감의 고기였다. 나는 부엉이를 향해 '나쁘지 않아'라는 눈빛을 나누고 식사를 즐기며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대화들을 이어나갔다. '만약에, 우리가', '앞으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등 흐리지만 분명히 앞으로를 향한 밑그림이 그려지는 대화들이었다.
불과 한국을 떠나온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는데,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안전하다는 것들과는 멀어졌다. 연착, 배회, 돌길, 토끼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한 조각씩 모이고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들이 주는 자극은 여름날 쏟아지는 소나기와도 같았다. 나는 집 밖으로 뛰어나와 소나기를 그대로 맞고 싶은 충동이 들었고, 이 낯설고 불편한 것들이 내 것이 되어야 한다는 걸, 우리는 스스로 꽃을 피워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이때부터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