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사이로 번지는 유채색들
오전 내내 홀짝 거리며 마신 화이트 와인 덕분인지 취기가 살짝 올랐다. 창 밖에서 들려오는 모든 움직이는 소리를 음악 삼아 단잠에 들었다. 세상이 멈춘 것 같이 흘러가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아침부터 부산스럽던 부엉이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식사가 준비된 모양이다. 냉장고 안에는 Indrek가 준비해 놓은 다정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빵, 버터, 소시지, 잼, 귀리죽으로 보통 아침을 즐긴다고 한다. 우리의 냉장고 안에도 빵, 계란, 치즈, 우유, 주스 등이 부족함 없이 채워져 있었다. 점심 같은 아침을 먹고 노란 집을 나섰다. 그냥 하루 쉬는 게 어떻냐는 부엉이에게 ‘충분하다고’ 답을 하며 우리는 구 시가지(올드 타운)로 향했다.
에스토니아를 처음 만난 건 ‘제천 국제 음악 영화제’이다. 지금은 여건상 참여를 못 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가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때 봤던 영화는 가족의 비밀( Family Lies)이라는 영화였는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영화를 통해 느꼈던 시각적 느낌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축축함, 팔짱을 끼고 고뇌하는 사람들, 짧은 대화와 정적, 클래식 음악과 열정적인 몸사위, 그리고 그 사이에 희미하지만 선명한 유채색들의 향현. 그 에스토니아가 눈앞에 하나씩 펼쳐지고 있었다.
질척해진 땅을 밟으며 누군가 끝없이 그려놓은 흔적들을 보고 있으니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오후 4시가 다 되어갔지만 거리에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구글맵에 의지하며 트램길을 따라 걸으니 ‘DEPOO’라는 시장이 나왔다. 사실 이곳이 시장이라는 것도 여행을 다녀와서 알게 되었다. 'DEPOO' 시장에서 5분 정도 더 걸어가면 탈린 기차역이 나온다. 이 기차역 너머에 오늘 우리의 목적지인 구 시가지(올드 타운)가 있다. 기차역에 도착할 즈음 인기척이 느껴졌다. 역시 기차역에는 사람이 있다며 반가움을 느낄 찰나, 수십 마리의 비둘기 떼가 우리 머리 위로 날았다 다시 누군가에게로 돌아갔다. 영화 '나 홀로 집에' 나올법한 복장의 비둘기 아주머니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있었다.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해 구 시가지(올드 타운)를 방문하기 때문에 비루 게이트(Viru Gates)를 통과하게 된다. 비루 게이트(Viru Gates)는 14세기 만들어진 건축물로 현재는 두 개의 탑만 남아있다. 비루 게이트(Viru Gates)를 시작으로 구 시가지(올드 타운)의 모습들을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게이트를 사이에 두고 중세시대로 빠져드는 환상적인 경험 대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어쩌다 보니 중세시대에 들어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토끼에 쫓기는 것 마냥 정신없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갔던 길을 다시 가고, 구 시가지(올드 타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힘들 줄 알았는데, 보이는 모든 곳이 신비로워서 계속 걷게 되었다. 첫 번째 행선지는 파트쿨리 전망대였다. 구 시가지(올드타운)에는 두 곳에 전망대가 있는데, 하나는 코투오차 전망대이고, 또 하나가 우리가 오른 파트쿨리 전망대이다. 우리가 오른 파트쿨리 전망대보다 코투오차 전망대가 라에코야(구시청) 광장과 가까이 있다 보니 올드 타운 전체를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고, 파트쿨리 전망대는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두 전망대 모두 노을 진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주황색 모자를 쓴 탑들과 수많은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 작은 마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벅찬 감정을 느꼈다. 구 시가지(올드 타운) 너머로 보이는 발트해를 보고 있으니 그저 황홀하게만 느껴지는데, 14세기에 나와 같은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같은 바다를 바라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토니아는 기후가 차고 습한 대륙성 기후를 가졌지만, 평야와 벌판이 많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한 성향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약소국으로 강대국들로부터 끝없는 지배를 받아온 민족이기도 하다. 강한 정신력으로 끝내 지켜낸 나라와 언어. 그리고 이 아름다운 도시까지. 같은 장소에 서서 별다른 걱정 없이 아름다움만 만끽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니, 미처 두고 오지 못하고 싸매고 왔던 문제들이 하찮게 느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