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정지 버튼을 누를 줄 알아야 한다.
꿈에서 깨어난 건 익숙하지 않은 침대의 감촉 덕분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나는 탈린 주택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한참을 헤매다 눈을 떴는데, 천장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난간 하나 없는 2층 침대에 누워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가 어제 무슨 정신으로 기어 올라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놀란 가슴을 달래며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6시 30분. 습관이 이렇게도 무섭다. 아무리 피곤해도 7시를 넘기지 않는다. 잃어버린 어제의 시간들을 부지런히 주워 담고 싶어 몸을 움직여 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한데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무겁다 못해 땅으로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느껴지는 찌를듯한 허리 통증. 아, 익숙한 이 느낌. 이번에는 정신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벌떡 일어난 몸이 2층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화장실로 냅다 달려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자연의 순환 시간이 찾아왔다.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준비해 왔지만 일주일이나 먼저 생리가 시작했다.
이 순간을 부엉이와 공유하고 싶었지만 다시 저 위로 올라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화장실 앞에 보이는 소파에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기분 좋은 찬 공기가 두 뺨을 스쳐갔다. 분명히 이불이 없었던 거 같은데, 목 끝까지 이불이 덮어져 있었다. 이번에는 코가 멋대로 반응을 했다. ‘음.. 이 냄새는…. 커피, 커피다’ 조용히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부엉이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말을 걸어왔다.
“일어났어? 커피 마실래?”
근래 들었던 어떤 말보다 감미롭게 들렸다. 대답 대신 짧은 환호성으로 지금의 기분을 전했다. 건네받은 커피를 들고 창문에 걸터앉아 탈린을 마주했다. 밤새 내렸던 비 덕분인지 땅은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바람은 다시 겨울이 찾아온 듯 차가웠다. 내가 상상했던 북유럽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커피를 몇 모금 마신 뒤 오늘 아침 나에게 일어난 환상적인 상황을 부엉이에게 알렸다. 탈린 일정이 워낙 짧기도 했지만 이미 페리 연착으로 하루를 날려 먹은 상황이라 마음이 조급했다. ‘어디부터 갈까?’, ‘구시가지를 먼저 가야겠지?’, ‘밥은 어떻게 하지?’ ‘찾아 놓은 맛집으로 갈까?’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는 나의 말을 부엉이가 가로막았다
‘오전에는 이대로 쉬는 건 어때? 아니면 그냥 쭉 쉬다가 헬싱키로 넘어가도 좋고’
‘그냥 이대로 있자고?,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소비해도 되는 거야?, 아직 내 캐리어는 텅텅 비어 있는데?’ 요즘 자주 회자되는 한 아이돌의 ‘원영적 사고’ 방식이 당시 나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아’
‘오히려 잘 됐어’
어떤 조각들이 모여야 그런 말들이 입에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올 수 있을까? 단단하게 구겨진 종이를 아무리 손으로 문지르고 닦아 봐도 그 자리에 구멍만 생겼다. 나는 또다시 뚫려버린 구멍에만 몰두했고, 그런 나를 멈춰 세운 건 부엉이였다. 고작 몇 시간 쉬는 걸 가지고 이런 거창한 생각을 하는지 할 수도 있지만,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멈춰 서는 법을 하나, 하나 알려줘야 할 때가 있다. 스스로 멈추고, 받아들이고 보내는 것.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라는 시집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말이다. ‘흘러간 것과 보내는 것은 다르다’.
‘몇 시간 없는 그 시간들을 나를 위한 보내보기로 했다.’
다시 소파에 누워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나에게 부엉이가 화이트와인 한 잔과 초콜릿 두 조각을 가져다주었다. 당시 결혼 7년 차인 우리에게 초콜릿은 교집합의 한 부분이었기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만나는 2년 동안 우리는 참 많은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했고, 함께 살아간 지 7년 만에 우리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우리의 사소한 다툼 중 하나가 내가 예민해지는 날이었다. 매번 반복되는 그날의 전투로 한 달에 한 번, 우리는 했던 얘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러다 내가 부엉이에게 ‘뭔가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초콜릿 한 조각 건네주면 되는 거야’라고 말했는데, 이 말로 인해 이 친구에게 그동안의 내 이야기가 추상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입력과 출력값이 정확한 사람에게 정확한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초콜릿 한 조각'으로 우리의 전투는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여행 전 읽었던 핀란드 관련 서적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있었다. ‘부끄럼 많은 핀란드 사람들이지만 당신이 커피와 초콜릿을 건넨다면 그들의 미소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초콜릿이 가진 위력에 감탄하며 한 조각을 밀어 넣었다. 약간의 쓴맛 위로 달콤함이 쏟아졌다. 달다. 하루가 녹아내리듯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