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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jiin Jul 15. 2024

화단 속 꽃

모든 건 예상 밖의 일이지


'딱 2년만 도와드리고,

다시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자.'


'돌아갈 수 있어.'








 당시 우리는 하루 10시간에서 11시간 정도 일을 했었다. ‘선택’을 해야 했지만, ’ 선택지’가 없었던 일. 결혼과 동시에 나는 부엉이의 부모님 사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결혼 전, 부엉이 부모님이 눈길에 미끄러져 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다. 그 길로 부엉이는 하고 싶었던 일을 멈추고, 부모님 곁에 머물게 되었다. 그 시기 나는 대학원에 합격했다. 두 가지의 선택지 앞에서 공부는 다시 할 수 있을 거 같았지만, 이 친구 같은 사람은 다시 못 만날 거 같았다. 그리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우리에게 부엉이 부모님의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화단에 무리 지어 모여 있는 꽃들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제 막 개간을 마친 땅 위로 일정 시간이 되면 적정량의 물이 떨어졌다. 그 위로 내리쬐는 햇살.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 있냐는 말을 수백 번 들으며 우리는 우리의 꽃이 피길 기다렸다. 수년간을-








비옥한 땅이던, 척박한 땅이던 각자가 자랄 수 있는 흙은 따로 있다.










 부모님 품 안에서는 겨우 나왔지만 겁 많은 우리는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세하게 작은 진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나는 여행 영상을 담아 오고 싶어. 너는?”

“나는 사진을 찍고 싶어. 아! 기록도!! 블로그를 해볼까? ”




여행 준비물들이 많아졌다. 카메라가 2대, 각종 장비들, 일기장, 노트북 등. 그전에는 소비만 하는 여행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보이지 않은 많은 것들을 담아 올 수 있을 거 같았다. 일의 특성상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일 시간을 더 늘려야 했다. 그렇게 일에 쫓기다 보니 어느덧 떠나야 할 날이 다가왔다. 분명 기대되는 여행이었는데, 피로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우리는 여행의 긴장과 설렘을 느낄 시간조차 없이 일들을 처리했다. “내일 오전 비행기인데, 이제 짐도 꾸리고 자야 하지 않을까?” “비행기에서 잔다고 생각하자.” 이 대화를 끝으로 반쯤 눈이 감긴 상태로 짐을 싸고 잠을 잤다. 아니 눈을 감았다 떴다. 눈을 떠보니 인천공항에서 반타 공항으로 우리가 옮겨졌다. 헬싱키와 우리나라의 시차는 약 6시간 정도이며, 비행시간은 8시간 50분 정도 소요됐다. (2024년 현재는 러시아 우크라니아 전쟁으로 우회 운행하여 13시간 50분이 걸린다고 한다) 반타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이 오후 1시 정도 됐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비행기에 내렸는데, 갑자기 불어 온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헬싱키의 5월은 생각보다 추웠다. 그제야 보이는 낯선 글씨들과 낯선 간판들. 설렘과 긴장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 왔구나. 핀란드’





 




이틀은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보낼 계획이었던 우리는 설렘을 뒤로하고 서둘러 여객 터미널로 향해야 했다. 페리 탑승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램도 처음, 페리도 처음, 거기다 헬싱키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낯설지만 이 또한 환대로 느껴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보다 아주 조금 낯선 것들에 자신감을 보이던 부엉이가 구글맵을 열어 트램을 찾았다. 시간이 갈수록 진눈깨비는 점점 거세졌고, 어느새 우리가 입은 옷들도 촉촉한 상태에서 축축한 상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여유라고 느꼈던 시간이 점점 우리를 무섭게 쫓아오고 있었다. 멈춰 선 트램 정류장 앞에서 구글맵 한번, 정거장 한번, 다시 구글맵 한번, 자동차에 세워 놓은 흔들 인형처럼 둘이서 얼마나 위, 아래로 고개를 신나게 흔들었는지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할머니는 우리의 목적지를 확인한 뒤 자기를 따라오라며 멋지게 돌아섰다. 당황함도 잠시 우리는 어린이집에 처음 입소한 어린아이처럼 할머니 선생님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할머니 뒤를 따라갔다. 거센 눈바람에 맞서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늠름함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이윽고 할머니는 한 트램 정류장 앞에 멈춰 섰다. 본인도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하니 함께 타자고 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쑥스러움이 많다고 했는데, 우리가 만났던 핀란드 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절했고, 한결같이 따뜻했다. 함께 트램을 타고 가는 동안 할머니는 이것저것 묻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만 도와주고 내리셨다.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우리도 그제야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풀린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입을 다문 건 불과 몇 초 뒤였다. 페리 탑승까지 이제 5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터미널 분위기가 이상했다. 사람이 없었다. 주위를 살피며 가방에서 프린트해 온 예약 페이지를 꺼내 들고 발권 창구로 향했다.








“미안해, 눈이 많이 와서 배가 결항됐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이 말을 인식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직원과 우리 사이에 짧은 정적이 흘렀고, 직원은 다시 한번 조금 큰 소리로 배가 없다고 얘기해 줬다. 일단 옆으로 빠져 상황 파악을 해야 했다. 상황 판단을 마친 우리는 다시 직원에게 그럼 다음 페리는 언제인지 물었다. 알 수가 없다는 대답과 밤 10시나 돼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은 오후 4시, 하지만 눈이 그칠지, 그리고 페리가 운행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 탈린 숙소 호스트에게 지금 상황을 알렸다. 호스트는 오히려 우리의 상황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다. 불안과 긴장 사이, 그 사이에 번지는 다독임이 생각보다 큰 안도감을 들게 했다. ‘배가 뜨면 타고, 안 뜨면 여기서 자자.’ 이 무거운 짐들을 끌고 눈이 쏟아지는 헬싱키 거리를 배회할 자신이 없어 그대로 터미널에 남아 노숙을 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노숙을 하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편해진 틈으로 본능이 꿈틀거렸다. 배고픔. 순간 내 몸이 순수해 보였다. 터미널 매점에서 산 샌드위치와 커피로 끼니를 때우며 지금 이 순간을 음미했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아무 노트나 꺼내 지금 상황을 끄적거렸다. 부엉이는 그런 내 모습을 그림이라고 부르기 뭐 한 낙서로 담아냈다. 근래 보냈던 시간들 중 가장 평온했던 시간이었다. 



타인이 만들어 준 큰 행복보다,

스스로가 선택한 작은 불행이 나는 편안하다. 

2017.04.29



그렇게 소박한 즐거움이 쌓이는 사이 밤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계속 한산할 줄 알았던 터미널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눈치로 배가 뜬다는 걸 직감한 우리는 그 무리 중간쯤에 끼어 발권을 하고 밤 9시 30분쯤 페리를 탈 수 있었다. 끝나지 않을 거 같았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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