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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journal Dec 16. 2023

마음에는 길이 있다.

  종종 이유 없이 끝도 없는 바닥으로 내려앉는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꽤 오랜 기간동안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해왔고, 이제는 우울증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그래서 정말 나에게 그런 시기가 있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비교적 잘 지내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그런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또 간헐적이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과거의 그 때와 비교해보면 강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그 심연의 끝에 다다르다 보면 이내 잊고 있었지만 내내 익숙했던 '죽음'으로 향하는 생각과 충동의 길이 흐릿하게나마 남아있는 것이 보이곤 하는 것이다.


  여러 심리적 어려움, 특히 우울증을 깊게 앓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종종 '이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두렵다. 최근 힘들 때 나도 모르게 죽고 싶단 생각이 들어 놀랐다가 거기에서 간신히 벗어났다'와 같은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 말을 들으면 순간 내 마음도 함께 덜컹하지만 담담히 이렇게 말한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 마음, 충동이 들더라도 그건 일시적인 것이고 괴로울 때는 그럴 수 있다 

  우리가 그간 해 온 노력들이 절대 빛이 바래거나 어리도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러면서 앞서 말한 내용을 빗대어, '마음의 길'의 비유를 하곤 덧붙인다. [마음의 길을 좀 더 전문적으로 설명하자면 결국 뇌의 시냅스 간의 연결통로 때문인 것이지만]  


  우리의 생각, 기억, 감정, 충동, 소망과 같은 심리 내적 과정들은 반복하면 할수록 더 깊게 길이 패인다. 자주 걷는 곳에 곧 길이 나는 것처럼. 그리고 자주 오래 갔던 곳일수록 그 자국은 선명하고 종종 지름길이 생기기도 하며, 워낙 익숙하다보니 아주 오랜만에 찾아가도 몸에 습관이 되어 곧바로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게 된다. 우울하거나 괴로울 때 했던 많은 고통스러운 생각과 감정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여전히 아주 우울해지고 침잠해질 때면 '과연 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지?', '이대로 몸을 던져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끼곤 한다. 물론 아주 가끔이긴 하고 정말 순간적인 생각에 그치므로 그 생각에 딸려가진 않지만. 그럴 때마다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이 길이 남아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 때의 마음의 자리에 가만히 머문다. 그러면서 그냥 그 길의 입구와 그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길의 형태를, 꼬임과 질감을 가만히 느껴보다가 다시 돌아선다.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여느 다른 진짜 길과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길도 여러 갈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처음에 새로운 길을 만들 때만 해도 그 과정이 참으로 지난하여, 과연 가능한 것일지 의문이었다. 이 길을 만들다 보면 정말 그 끝에 내가 바라는 마음의 평안이나 행복 같은 것들이 있는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물론 나는 아직 이 길의 끝(=삶의 끝)에 닿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이 길의 끝에 내가 바라는 그 무언가가 있는지 확답할 순 없다.


  다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걸어가고 있는 근 몇 년 간의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이 새로운 길이 꽤 괜찮은 풍경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 익숙하고 매혹적이었던 그 길만큼, 어둡고 슬프고 그래서 더 처연하고 아름답고, 온 몸을 휩싸는 끈적하고 농밀한 그래서 더 거부할 수 없는 늪 같은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아니 사실은 아주 많이 다르다. 조금은 심심해보이는 정갈하게 정돈된 나무들과 소소한 들꽃과 잡초들이다. 나에게 와닿는 것이라고는 종종 살갗에 닿았다가 사라지는 바람결, 이파리 사이로 부서지는 작은 빛의 조각들, 코를 간질이다 말고 사라지는 약한 풀내음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생명력'과 '연결감'에 대한 느낌을 전달한다. 내가 지금 여기 이 땅에, 이 지구에 발 딛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심심하고 지난하고 때로는 어색함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려 노력한다.

  이 노력을 반복하다보면 이 길도 타샤의 정원처럼, 다정하게 우거지겠지. 


  나와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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