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야기] 감정, 마음 건강의 거의 모든 것

by Moonlight journal

* 심리학을 전공하여 대학, 대학원, 대학병원, 심리건강 관련 실무 현장에서 많은 이론적 지식과 임상경험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업으로 삼아 시작한 첫 해인 2016년에서야 비로소 '감정은 무조건적인 수용의 대상'이라는 진리를 처음 깨달았었다. 이것은 그러니까 일종의 명제이다. 가타부타하거나 논쟁의 거리를 제시할만한 문장이 아니기에 이 사실은 그냥 겸허하게 의심할 여지 없이 받아들여도 된다. 적어도 현대 심리학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2300년이나 2500년 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 감정은 마음건강의 거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감정의 인식, 수용, 조절, 그것이 마음건강의 거의 전부라 볼 수 있다. 그것이 잘 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그다지 힘들지 않다. 특히 '나' 자신에 국한해 볼 때는 그것이 잘 이뤄진다면 심리적으로는 건강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 그렇다면 '감정'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겠다.


감정은 매우 다차원적이다. 신체 감각에서 시작해서, 어떠한 심리 내적 과정들을 끌어당기고 촉발시키면서 다양한 생각, 기억, 욕구, 충동들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 똑같이 '나는 지금 슬퍼'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 슬픔을 어떤 식으로 체험하는지는 개인마다 매우 다르다.

나는 어떤 감정을 어떤 식으로 인식하는지를 면밀하고 섬세하게 천천히 살펴보는 것,
이것이 마음건강의 가장 중요한 인식/알아차림의 단계이다.


모든 감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니까 얘들은 늘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 그리고 이 말은 꽤 중요한데, 감정이 데리고 다니는 친구가 "욕구", "소망", "충동"과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내가 진정한(genuine) 내가 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기도 하다. 정서와 욕구를 연결지어 조금 더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긍정 정서: 나에게 중요한 욕구가 충족될 때 느껴지는 감정
* 부정 정서: 나에게 중요한 욕구가 좌절/결핍/부족할 때 느껴지는 감정


* 긍정 정서는 그렇다 치지만, 부정 정서는 누구에게나 다루기 어렵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회피, 억압, 부인, 반동형성 등 다양한 방어제를 사용해 이것을 느끼지 않으려 애쓴다. 부정 정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기를 거부하는 것, 이것을 경험 회피(experiential avoidance)라고 부른다.


* 상담을 하면서 대화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어떤 사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큰 감정적 동요 없이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을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불가능한 목표로, 만약 그 것을 지향할 경우, 외견상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상태가 되더라도 실제 내면은 엉망진창이 된다. 감정은 아무리 깊이 누르고 눌러도, 눈에 안 보이게 숨겨둘 수는 있을 지언정 절대 사라지지 않고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큰 반작용으로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강박이나 이성적 통제가 매우 강한 사람들이 뜬금없는 영역에서 과도한 충동성을 드러내는 식으로 말이다. 혹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체 증상, 통제할 수 없는 침투적인 생각들로 나타나기도 한다.


*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잘 조절되지 않은 감정'은 어린아이와 같다. 알아달라고 칭얼대고 봐줄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 칭얼대는 어린아이를 달래줄 방법은 때리거나 숨겨두는 게 아니라 그저 눈을 맞추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충분히 듣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과정이 잘 이뤄지면서 감정이 나의 친구가 된다면 그때부터는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된다. 그는 내가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한 좋은 선택을 하는 길을 가장 잘 알려주는 무언가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을 어떻게 알아차리는 게 좋을까?



* 가장 첫 번째 단계는 "기분이 나빠"를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 그 다음으로 신체 감각을 보는 게 좋다. 가장 객관적이고 명확하며, 누구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에 힘이 빠지는지 빠진다면 어디에서 빠지는지, 어깨가 축 쳐진다면 그 쳐진 느낌을 좀 더 느껴볼 수 있다. 어깨에 주의를 좀 더 오래 두고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 혹은 심장이 두근거릴 수도 있고, 한숨이 자꾸 나올 수도 있다. 뭔가 터질 것만 같이 몸 안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일 수도 왠지 한쪽 머리가 죄어오는 느낌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좋으니 일단 알아차린다.


*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느낌을 괴로워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때 떠오르는 생각, 감정(예: 불편해, 없애고 싶어, 싫어, 이 상황을 끝내고 싶어, 소리 지르고 싶어 등)을 최대한 평가하지 않고 느껴본다. 이어지는 감정, 생각, 기억 등이 있다면 이 또한 최대한 억압하지 않고 살펴본다. 이것이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 물론 이때 과도한 감정이 올라오며 괴롭거나 압도되는 느낌(예: 공황/불안발작, 심한 우울감, 자살충동, 외상 기억의 재경험 등)이 들 수 있는데, 이렇게까지 이어진다면 사실 혼자서는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그저 "이 감정, 생각, 기억이 올라오면 이렇게까지 괴로워지는구나" 정도를 인식하고 전문가와 함께 다루는 것을 추천한다. 혹은 정서조절을 위한 여러가지 방략들(DBT의 정서조절 기술들)을 활용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 다음 챕터에서는 정서조절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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