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지도자 과정이 끝나고 제주에 가다
요가 지도자 과정이 끝나기 한 달 전쯤인가 갑자기 제주행 비행기를 끊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에 종강을 했고, 지금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글을 쓰고 있다.
겨울의 추위를 지독히 못 버티는 사람이라 겨울이 싫어 제주도에 왔는데, 웬걸, 올해 가장 추운 날씨. 제주도에 머무는 크리스마스부터 28일까지 폭설 예상이다. 오늘 바다에 갔는데 서있으면 몸이 휘청 거릴 정도로 바람이 심했다.
그런데 이제 겨울이 싫지만은 않다. 차가운 겨울의 바다도 아름답고 얼어붙은 공기에 비치는 햇살도 좋다.
나의 20대는 해외여행이었다.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왜 그렇게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걸까. 새로운 사람, 환경, 문화를 접하고 그 속에서 여러 삶을 배우고 다름을 경험하며, 그 과정에서의 나를 바라보고 싶었다. 켜켜이 쌓이는 여행들은 나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밖으로 나갔고, 끊임없이 갈망했다.
20대 중후반이 되고 나서는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으나 여행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서웠다. 혼자서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걱정들과 막막함, 피곤함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한동안 여행을 가지 못했다. 언젠가 멀리 길게 가자라는 생각만 하면서 말이다.
당시 만나던 남자와도 일 년에 딱 한번 여행을 갔고 매번 싸우거나 골이 깊어져 돌아왔다. 참 힘들었다. 그도 나도 각자 노매드처럼 여행을 하던 20대를 보냈고, 삶은 여행이라고 믿는 사람들인데, 둘이 만났을 때는 여행을 가지 않을뿐더러, 여행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어디를 가는 건 중요하지 않다. 마음이 어떠한가의 문제였다. 우리는 밖이 아닌 내면의 여행이 필요했다. 사실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서로에게 맞지 않은 방향으로 억지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먼저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끝나게 될걸 알기에. 깊게 만난 2년의 시간 뒤에 우리는 친구라를 관계로 돌아섰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서로를 응원하고 편하게 바라볼 수 있다.
헤어짐 이후에도 여행은 생각에만 존재하며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꿈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요가 지도자 과정을 하면서 혼자 떠날 용기가 다시 생겼다. 가자. 다시 떠나자.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어떤 감정이나 깨달음보다 벅찼다.
무엇이었을까 그 마음은.
이번 과정을 통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스스로 안에서 많이 채워진 것 같다. 나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만을 살며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것. 이 생각이 중심이 되니, 집착도 걱정도 적어지고 진짜 내게 필요한 것들, 내가 원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 속에서 쉬며 정리하고 싶었고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덜컥 크리스마스 비행기표를 사게 된 것이다.
제주로 떠나기 직전, 갈 곳 들을 정하면서 이것도 저것도 하고 여기도 저기도 가야지 하면서 욕심이 생겼고,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짝 걱정되었다. 언제나 혼자 여행했고, 홀로 여행하는 것을 사랑하지만 항상 그만큼 외로웠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한다는 압박감, 커플을 보면 부러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라는 걱정들. 이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계속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달랐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 가고 싶은 요가원에서 실컷 요가하기, 운전하며 노래 부르기, 바다에서 사진 찍기, 카페에서 차 마시며 책 읽기, 맛집 안 찾고 숙소 옆 식당에서 밥 먹기, 게스트하우스에서 글쓰기. 내가 하고 싶은 작은 것들,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그대로 하고 있다. 행복하다.
나는 누군가가 될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기억할 필요도 없으며, 지켜야 할 것도 없다.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아무도 아니다. 그냥 '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