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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un 04. 2023

타인의 취향을 부정한다고 내 취향이 분명해질까?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9

01. 

3년 전 세상을 떠난 GE 전 회장 잭 웰치(Jack Welch)는 유난히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경영의 귀재로 인정받지만 다른 사이드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 관리 유형으로 평가되기도 하죠. 오늘은 잭 웰치 전 회장의 업력을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가 남긴 재미있는 일화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02. 

"1986년쯤 아주 잠깐 마케팅 부서의 중간 관리자로 일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정말 마케팅에 관해서 아무것도 몰랐죠. 하지만 유난히 승부욕이 강했던 탓에 사람들이 저를 무능력하게 보는 것이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우선 제게 보고가 올라오는 모든 안건들에 대해서 호통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런 전략으로 마케팅이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형편없군요! 당신 자리로 돌아가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부터 이 보고 내용은 싹 다 잊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요.'  

죄다 이런 식이었죠. 정말 창피한 기억입니다. 일단 저부터가 아는 게 없으니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03. 

아마 비슷한 생각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원래 실력이나 역량이 없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까는(?) 걸로 자기 존재감을 채우려고 하지'라고 말이죠.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공식이 '취향'이라는 영역에서도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기 취향이 불분명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취향을 부정하고 평가 절하하려는 것 같거든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정체성은 완성하고 싶지만, 그 요소들이 부족한 만큼 다른 사람을 배척해 나 자신을 구분 짓는 방법입니다. 일종의 '타인 소거법'이라고도 할 수 있죠.  


04. 

우리 대부분이 거쳐온 청소년기 후유증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겁니다. 아직 취향이 여물지 않았던 그때는 음악 하나를 들어도 남달라 보이는 걸 듣고 싶었고, 영화 한 편을 봐도 대중이 다보는 작품 대신 나만 아는 희소한 것에 꽂히곤 했었으니까요. 그러다 나와 조금만 다른 취향의 누군가가 등장하면 '난 저런 부류와는 달라'라는 이야기를 곧잘 하게 되죠. 마치 잭 웰치의 옛 기억처럼 창피한 과거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우리의 성장 과정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05. 

다만 나이를 한두 살 더 먹어가고, 주변에 사람이 늘어나고, 개인이 축적한 경험이 불어나는 데도 여전히 타인의 취향을 부정해 내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결과를 만듭니다.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하나씩 맛보고 도전해 보는 것'과 'O, X 버튼을 누르듯 다른 이의 생각과 취향을 배척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말이죠. (게다가 O, X 버튼 중 O를 누른다고 그게 다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06. 

최근 들어 더 절실히 느낀 포인트인데, 자기 취향이 분명하고 타인의 취향까지 존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통된 화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흡수하는 과정에서도 늘 '오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여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너무 신선해요'처럼 빈말로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고 더 좋은 의견을 끌어내는 대화를 시도하더라고요. 그럼 이야기를 하는 사람 역시 대화의 의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죠. 설사 이 사람이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취향을 공개하고 설명하는 건 가능하겠다 싶으니까요.  


07. 

몇 해 전쯤 다국어 서비스를 하나 준비하면서 최종적으로 번역팀에 문구 감수를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번역 담당자분께서 저희가 사용한 '취향 기반의~'라는 문장을 짚으시며 재차 의견을 확인하시더라고요.  


"여기서 강조하시려는 '취향'이라는 게 taste 일까요? 아니면 preference 나 liking 일까요?" 


아마 취향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음미해 본 건 그때가 처음인 것 같아요.  그러게요. 취향이라는 건 과연 무엇에 가까울까요? taste라고 치면 일단 좋고 싫고를 떠나 내 입맛에 맞아야 하고 적어도 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하겠죠? 대신 preference라는 기준을 대보면 이것보다는 저것, A보다는 B라는 비교 대상에서의 선호가 작동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보다 훨씬 가볍고 단순하게 '나 이거 맘에 들어!'라는 수준이면 like가 맞을 테고요.  


08. 

저는 단어의 뜻을 찾는 걸 좋아하니까 한자로는 '취향'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내 궁금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찾아보니 '취향(趣向)'은 '뜻 취(趣)'자에 '향할 향(向)'자를 쓰더군요. 그래서 사전적 의미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내 마음이 이끌려 조금씩 그 방향으로 마음이 동하고 발을 옮기는 과정이 취향인 것일지도 모르죠.  


09. 

따라서 자기 취향 없이 타인의 취향을 부정하기만 하는 건 자신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왜 저런 냄새에 이끌려 따라가니?', '왜 굳이 그걸 보러 거기까지 가니?'라며 핀잔을 늘어놓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우선 내가 있는 곳의 위치를 살펴보고 남들은 어디로 향하나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좋은 방법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10. 

그래서 저도 언젠가부터는 의식적으로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화법을 써보려 조금씩 노력 중입니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더라도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나 '저도 한 번 제대로 다시 들여다봐야겠어요'처럼 좋은 의지를 드러내는 말을 지니고 살다 보니 실제로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도 같더라고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하고 싶은 마음과 그 방향'을 부정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거니까요. 나쁜 일만 아니라면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들의 발걸음을 작게나마 응원해 주는 것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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