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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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모임을 자주 갖는 편은 아니지만 시즌이 시즌인지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일 년에 한 번 보더라도 인연만 안 끊기면 가까운 사이'라는 말을 절감하며 그래도 그동안 못 뵈었던 분들과는 가벼운 티타임이라도 갖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게 바로 이맘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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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함께 만난 자리에서는 그동안의 안부와 근황을 공유하다 어김없이 새해 목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새해에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내년 목표나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요.' 같은 말들로 소중한 사람들의 새해를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또 연말연시의 미덕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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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새해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편은 아닙니다. 평소에는 계획 세우는 것도 좋아하고, 실천하는 것도 좋아하고, 루틴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회고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누군가 새해 계획을 물어오면 그때서야 '아.. 음.. 새해 계획이요..?'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럼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왠지 계획이 있는데 말해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라며 몰아세우고 추궁할 때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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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몇 해 전부터는 저 자신도 그런 제가 좀 신기해서 한 번 이유를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내린 나름의 결론은 두 가지였는데요, 하나는 '목표'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 때문인지 어느샌가 저도 모르게 '내년에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새해에는 뭐 이런 쪽도 좀 기웃거려 볼까 싶고~'라는 식으로 목표라는 직접적 워딩 대신 이미 예정되어 있는 To-Do List나 관심이 가는 것들을 언급하는 버릇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표를 떠올리는 습관이 줄어든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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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조금 의아하실 수도 있는 포인트인데요, 저는 생각보다 꽤 일찍 내년의 목표성 과업들을 생각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개인 자랑은 절대 아니고...) 그냥 의식적으로 찬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 즈음이 되면 슬슬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으로 넘어가려는 리듬을 타기 시작하는 것 같고, 내년에 있을 중요한 과제나 새롭게 주어지는 기회들이 어느 정도 예측되면 솔직히 한 여름 때라도 미리 조금씩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 12월의 그 (판타지가 살짝 섞인) 특별한 분위기와 1월 초에 느끼는 현실감 100%의 분위기 사이의 리드 타임을 조금씩 줄여가는 게 제 개인적인 스타일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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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목표를 딱히 세우는 성향이 아님에도 이렇게 새해 목표를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 역시 여러분들에게 작은 관점 하나를 보태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서인 것도 같네요.
저는 '끝'과 '시작'의 그 충돌 지점에서 현타(?) 없이 스무스한 일상을 이어가려면 두 가지 방향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제목에서 소개한 '연장형 목표'와 '추가형 목표'가 그것이죠. 말 그대로 연장형 목표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고, 추가형 목표란 이런 일상 속에서 새롭게 하나 더 끼워 넣어보고 싶은 것들은 무엇일지 떠올려 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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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거창한 새해 목표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 마무리하거나 잘 이어가기 위한 집중력', 더불어 '삶의 각도를 조금 틀어보거나 마치 집에 새 물건을 들이듯 내 삶에 새로 뭔가 더할 게 있을까를 생각하는 기회' 이 두 가지를 챙겨보는 것에 가까운 거죠.
누군가에게는 좀 밋밋하고 재미없을 수 있고,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그게 무슨 신년 계획이냐?'는 소리 듣기 딱 좋은 관점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또 이런 슴슴한 계획을 떠올리는 시간도 한 번쯤은 가져볼만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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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새해의 그 희망찬 포부와 밝고 큰 꿈을 잠시 접어두라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그런 맛이 없다면 새해를 맞이할 에너지는 또 어디서 얻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도 이상적으로 접근해서 생각을 크게 펼쳐볼 때가 있고, 또 조금 현실적으로 접근해서 디테일하게 생각을 다듬는 순간이 있듯이 두 가지 안을 두루 살펴보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점을 상기시켜드리고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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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새해 목표를 여쭤야 한다면 저는 올해는 이렇게 묻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내년엔 좀 변화를 주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혹은 '내년을 기점으로 내 삶에서 딱 한 가지 변화시킬 수 있는 쿠폰이 주어진다면 뭘 바꾸고 싶나요?'라고 말이죠. (제가 쓴 표현이지만.. 당신에게 '연장형 목표란?'하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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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해를 하지는 않으셨으면 하는데... 제가 막 '나는 괜히 연말이라고 들뜨는 게 맘에 안 드네 어쩌네'하는 그런 타입이 전혀 아닙니다. 오늘도 '나는 크리스마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라는 친구의 말에 '맞아 맞아!!!'를 연발하고 왔거든요. 작은 변명을 하자면 이 연말의 행복한 분위기와 올해의 좋은 것들을 가득 챙겨 내년으로 자연스레 넘어가고픈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하고 싶네요. 좋아해서 더 좋아하는 법을 찾는 사람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