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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n 20. 2023

나르는 무엇에 몰두하나 #09

남이 보기에(겉보기에) 좋다 하였다.

권력화할 수 있는 돈, 

남이 보기에(겉보기에) 좋다 하였다.


그는 돈이 안 드는 말로써 모든 것을 포장할 수 있다고 선택 것 같다.

그는 7시 40분경에 퇴근하면 제일 먼저 빠르게 씻고 거실 한 복판에 자기가 산 5만 원짜리 60센티 길이, 폭 40센티의 책상 앞에 앉아 미동도 없이 노트북, 핸드폰, 텔레비전을 동시에 켠 채로 있다가 밤 11시 20분에 큰방으로 자러 들어간다. 그가 주말 시내 나들이에 또 아이들 앞에서 느닷없이 좋은 아빠인척 프레임을 짜고 동시에 나를 비방했다. 저 언어 패턴은 아이들을 혼동시킨다. 내가 10년이 넘게 그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정신적 충격이 심했기에 아이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아빠의 태생적 굴곡에 대해 첫째 5학년때부터 2년을 넘게 말하기 시작했었다. 그땐 중학생이나 되면 그때가 올까 했지만 가족을 향해 모략질이 너무 심해졌기 때문에 방향을 선회해서 말하게 됐다. 나의 걱정을 아이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현명한 사람으로 자라기 바라는 마음을...


남겨진 아이는 소중함을 모를까


우리가 결혼할 때, 그는 나보다 친구가 많아 보였다. 친구가 없는 나는 그 수만큼 인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수치스러웠다. 내가 세상을 보는 창은 아주 어려서 닫혀버렸다. 난 초등 2학년 때 자살을 상상했다. 죽음, 죽으면 가족이 바로 달려오겠지? 아빠는 택시 기사를 하셨다. 한 번은 대전에 시험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내가 대전을 왜 갔는지 왜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지 모르겠다. 지리를 모르는 덕에 버스를 타고 대전에 도착해서는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운전기사님과 도착지까지 잠깐 얘기를 나눴다. 70년대 경기가 막 불타오르는 시점에 택시가 가장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었던 때라고 하셨다. 그때 대전에 일거리가 너무도 많아서 돈을 엄청 버셨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왜 돈을 많이 못 벌으셨을까? 그렇게 버는 돈으로 부동산을 한 사람은 크게 돈을 늘렸다고까지 하셨다. 그렇게 세월이 주는 타이밍. 참 우리 집안은 그런 감각이 참으로 둔한 것 같다. 사위 보는 눈도 없다. 난 계속해서 탓하고 쉽다. 딸이 셋이나 되고 내 위로 딸을 둘이나 보내셨는데, 왜 사람 보는 눈이 없을까? 한심스러웠다. 어려서는 부모님이 너무도 미워서,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 가는 때도 나를 제일 늦게 데려갔기 때문에 난 그때 떨쳐내고 싶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아빠는 아무 생각 없이 사람 놀리는 말을 자주 내뱉었을까? 너는 다리에서 주어 왔다. 제일 나중에 데려가야지 말 안 들으면 안 데리러 온다는 그런 말씀. 몇 달을 나는 혼자 시골에서 학교를 삼촌 댁에서 보내며, 가끔 1주에 한 번씩 들리시는 아빠가 그렇게 반가웠다. 아빠는 어려서 나를 자주 때렸기 때문에 반가우면서 싫었고 어색했다. 그런 감정을 온전히 느껴야 해서 너무 불편했다. 그리고 삼촌은 아궁이에 덴 발가락의 장애가 있었고 연탄가게를 하셨다. 그래서 난 그 집이 무서웠다. 온통 껌했기 때문에. 그리고 외숙모의 얼굴빛은 나를 불편해하는 마음같아 보였다. 나는 밥을 늘 어색하게 먹고 바로 높다란 계단 아래를 거쳐 작은 방에 가 있었다. 그 계단은 상당히 비탈져 있어서 정말 무서웠다. 내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방은 그곳이었던 것 같다.


오백 원 뭉칫돈


나는 초등4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주산학원을 다녔다. 나를 학원으로 소대해 주는 것이 너무도 고마웠다. 소개한 친구와 소개받은 친구는 소년동아 한 권씩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부분은 좀 서운한 면도 있었지만 친구와 원장선샘님이 고마웠다. 나는 주산을 열심히 배워 1단까지 땄다. 그런데 수기로 하는  산수 계산법은 오히려 다 까먹었다. 주판이라는 도구로 하는 암산 체계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나중에 수기로 하는 산수는 완전히 잼뱅이가 되어 버렸었다. 아빠는 학원 보냈으니 써먹어야 한다면서 1년 정도를 버스표값을 합산하게 하시고 일이 끝나면 500원짜리 동전 한주먹씩 주셨다. 다섯 형제 중 나만 줬다. 둘째 언니는 나 좀 주라면서 무지 부러워 했고 나는 절대 주질 않았다. 주먹만 한 돼지 저금통에 그 돈을 모두 넣고 내 서랍에 고이 간직했는데 어느 날 돼지배가 갈라져 있고 배는 쑥 눌려있었다. 처음 반정도 사라졌는데 나중에는 전부 없어졌다. 남동생 둘 중 누구일까? 난 그때 누구냐고 묻질 않았다. 그냥 둘 중 누구인지만 궁금했다. 배신감. 그런데 난 가끔 한 달에 4-5번? 정도는 아빠의 버스표 합계를 정산을 틀렸다. 3-4번씩 주판을 튕기는 데도 왜 틀렸는지. 난 그 시간이 좋으면서도 너무 싫었다. 아빠가 어려서 때렸던 기억으로 나는 평생 몸이 경직돼어있었다. 아빠랑 마주 앉아있는 것이 너무도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리고 내가 계산이 틀릴 때는 "너 때문에 창피했다."라고 늘 핀잔과 비난을 했다. 그래서 점점 싫어졌는데도 아빠는 계속 1년 정도 나를 이용하셨다. 그러다가 전자계산기를 용하셨다. 해방이었다. 내가 그렇게 작은 돈을 받아서 수전노 같은 남편을 만났을까. 가끔 헷갈린다.


나르 아빠의 사랑이란


아니다. 난 그 사람의 앞뒤 안맞는 언행들로 낌새를 채고 오히려 그에게 파혼을 종용받은 거였지만, 내 입으로 먼저 파혼을 선언하기로 합의 하에 우린 헤어졌다고 아빠에게 상세히 전했다. 그런데 아빠가 모든 것을 조작했다. 그리고 자기가 사람 볼 줄 안다며 아들들한테 자랑했다니, 뭐라고 해야 할까. 인생이 너무도 우습다. 자식 몰래 조작할 수 있다는 의식은 왜 자신이 학대한 애한테 지속적으로 가해를 하는 것인가.

남편은 우연히 <나쁜 남자>의 첫 장면을 보고서 평을 했었지, "그러니 뭐 하러 흘겨봐! 사람을 그렇게 무시하니 너도 한번 내 수준보다 더 낮은 상태로 배로 당해봐라 그런거지. 그렇게 짓밟아 줘야지."라는 말, 그 말을 남편이 내게 실천한 것 같다. 파혼 이후에 아빠가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남편 될 그 사람을 단 둘이 대면하면서, 아빠가 그에게 무시 발언을 했던 것. 참 다 소시민답다. 비굴하다. 어쩜 남자라는 놈들이 그렇게 생겼을까. 그들에게 소리치고 싶다. "니깐 것이 돈이나 바라꼬 그러는 것 같은데, 난 돈 없다. 있어도 내 돈은 절대 못준다." 라고 이미 파혼한 사람한테 그런 얘길 했다고 엄마에게 몇년 전 전해들었다. 참 가관이다. 내가 정황을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런 사람에게 결혼을 시키고 싶다는 건가? 차라리 자기돈 예단비 300만 원을 내달라고 하시지? 그게 아까워서 없던 일로 할 테니 빨리 결혼하라고 했던가?


아빠의 프레임은 천민이다. 언니는 아빠가 노예의 삶을 살았다고 했다. 배운 것이 없어서 큰 집에서 농사나 지으라고 일을 심하게 시키니 도망가고 싶어 그 시골에서 탈출했다면서 아빠가 의기양양하게 둘째 언니한테 말했다고 했다. 그때 매를 맞으며 노예처럼 일했다고 아빠가 말했다고 한다. 그그리 그 큰 아빠가 구십삼 세의 연세로 어제 돌아가셨다. 그렇게 다 돌아갈 거면서 인간들은 왜 그렇게 탐욕을 부릴까.


그래도 아빠가 낫다면, 아이들에게도...


차라리 우리 아빠처럼 솔직히 무식해도 정직하게 "난 돈이 없어서 그랬다." 고 말하면 좋겠다. 남편은 다르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온갖 수법을 쓴다. 나는 좋은 사람인데 네 엄마가 못난 사람이라 아빠가 해외 여행을 못 가는 거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그런 조작을 할 때는 천 원짜리 음료를 사주면서, 아니면 누군가 준 쿠폰을 쓰면서 그렇다. 뭐 돈 한 푼 안 쓰려하니 외식은 10년이 넘게 거의 어떻게 선물로 받은 쿠폰이 생길 때만 가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땐 왜 그렇게 거드름을 피우시는지. 이제 그의 대화패턴이 조금씩 인식되지만 여전히 헷갈리면서 당하기 일쑤다.


스스로 뭔가 대견한 그의 선택은, 좋은 아빠인 척하기?


친구가 줬다는 설빙 15,900원짜리 망고치즈설빙을 먹으면서

"일본여행 싸드라고, 이번 여름에 일본 가자."

"뭐? 난 일본 가기 싫어. 오염수 등 때문에 걱정돼서, 음식이 어떻게 유통되는 지도 모르고 내부 피폭당하면 큰일 나니까."

"뭐? 너같이 폐쇄적이면 평생 어딜 못 가겠다."

"지진도 잦으니 일본은 가기 싫어."

"저렇게 폐쇄적이어가지고 뭘 어떻게 사냐? 잠깐 4인이면 200만 원이면 가겠는데."

등등 아이들 앞에서 핀잔을 주더니


남편은 밤 12시가 다 되어 아이들 방에 있는 나를 찾아오더니

"제타 살까? 저렴하고 좋은데."

"뭐? 그런 돈 있으면 여행이나 가. 언제는 일본 간다면서?"

"뭐? 너랑은 안 간다니까. 너는 여행을 먹으러 가잖아. 그러니까 너랑은 안 가고 싶어."

"참나 그게 말이 된가? 그럼 왜 일본 얘기했어?"

"네가 말했잖아."

"또 그런가. 얘기한 건 자기야. 자기가 얘기해서 내가 다시 생각해 본 거라고."

"그러니까 너랑 갈 일 없다고. 너랑은 안 간다고 그래서 너랑 가기 싫은 거야."

하고 나가버렸다.


그는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고 모략(척하는 속임수)을 기획하고 느닷없이 실행한다. 가장 기분이 좋고 감사해 할 때, 외식도 자주 안 하다 이렇게 자기 생일이라고 받아온 쿠폰을 가지고 넷이 함께 도란거리면서 먹는 시간이 마냥 좋은 때, 꼭 아이들 앞에서 모든 것이 엄마 때문에 여행을 안 가는 것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아이들 없는 곳에서는 상황을 왜곡시킨다.


이런 과정은 수시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늘 누구보다 더 나은, 우위를 견주고 싶은 사람, 그런 대상이 왜 그는 아내일까. 날마다 봐야 하는 사람 앞에서 늘 이기고 싶은 심리가 쌓여야, 밖에서 쓰는 가면을 견딜 수 있는 것인가. 그는 특히 큰애한테 뭘 그리도 잘 보이고 싶은지? 자신의 가장 추악한 부분을 숨기고 좋은 아빠인척. 속이고 싶은 것도 부성애라고 해야 할 까. 영화<부산행>에서 공유가 딸을 구해내기 위해 좀비가 되는 찰나, 마지막 인간성이 남아 있을 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그 고귀함은 없는가? 인간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물질이라면 영원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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