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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메리 Jul 26. 2022

강아지가 병원 치료없이 나았던 이유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


내 마음은 늘 구더기가 꼬인 것처럼 더럽고 황망했다. 세상은 무섭고, 겁이 나는 일 투성이고, 내 자신이 사랑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늘 변화하고 싶었다. 마음을 유리처럼 뽀송뽀송하게 닦아낼 수만 있다면 뭐든 하리라. 마음 치유를 해보자. 다짐했다.


명상은 나 스스로 찾은 방법이었다. 뜻하지 않은 계기로 명상을 시작했으니까. 우리 집 강아지 때문이었다. 우리 강아지가 만 열 살이 되던 해 갑작스레 깽깽발을 시작하더니 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기어 다녔다.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고 애견미용을 맡긴 지 이틀 째였다. 강아지 카페와 애견미용을 한 번에 해결하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 외엔 추측뿐인 상황이었다.


CCTV를 내놓으라고 소리치며 싸울 수 있었지만, 가족의 지인이 관련된 가게였고, 소심한 성격 탓에 큰 싸움으로 만들지도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만 했다. 강아지를 급하게 데리고 간 병원에서 의사에게 손 쓸 수 없단 말만 들었다. 허리디스크가 의심되니 대도시의 큰 병원을 찾으라고 했다. 좌절뿐이었다. 나는 우리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은둔하던 이후 후유증 때문이다.


'우리 강아지가 죽으면 어떡하지?'


강아지는 내 삶에 유일한 친구였다. 강아지가 없이는 나도 완성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기운 없는 강아지 앞에서 나는 한참을 울었다. 처음으로 내 아픔에 치를 떨었다. 나는 공포증이란 공포증을 다 갖고 사는 겁쟁이 었다.


'대인기피증' '사회 공포증' '광장 공포증' '병원 공포증' 20살 때부터 25살 때까지 은둔 경험이 있었던 터라 사람들을 꺼렸고, 어린 시절부터 입원을 밥먹듯이 했던 경험에 병원을 극도로 무서워했다. 병원만 들어가면 말을 꺼내기 무서웠다. 그런데 강아지를 데리고 촌동네를 벗어나 대도시의 동물병원에 가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더구나 CT촬영비를 마련할 돈도 없어서 그저 막막했다. 나는 결국 집에서 야매로 공부하며 강아지를 간호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다니던 산책 길을 강아지를 안고 다녔다. 유명한 강아지 관절 약을 샀고, 디스크에 좋다는 강황가루를 먹였다. 조금이라도 걷는 연습을 시켰다. 강아지를 돌보면서 하루하루 지냈는데, 차도가 보이지 않는 날엔 좌절하느라 밥도 못 먹었다. 누가 보면 실연당한 사람처럼 처량하게 울면서 길을 다녔다. 강아지는 나의 노력에 보답하듯 조금씩 움직였고, 30일 만에 네 발로 땅을 걸었다. 강아지가 건강을 회복한 일은 기뻤고, 강아지를 되찾은 기분에 행복했다. 이 일은 내게 큰 깨달음의 선물도 안겨주었다. 그건 '마음 치유'였다.


강아지가 아픈 동안 나는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울고 불안해했다. 잠도 한숨 못 자고, 가만히 있어도 죽는 기분을 느끼며 공황에 시달렸다. 이대로 미쳐서 날뛰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때 이상하게도 명상이 떠올랐다. 예전부터 나는 명상에 관심이 있었다. 마음 속 내면의 세계를 깊이 유영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방법을 잘 몰라서,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깔짝깔짝 공부만 했는데, 그 기회를 통해 명상을 해보고자 마음먹었다. 어쩌면 살고자 하는 선택이었다.


처음엔 나를 위한 명상이었다. 몰입하기도 힘들었는데, 한 삼십 번쯤 반복하자 명상에 빠져들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불안함이 사그라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명상 때문에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편안히 잠에 빠졌고, 강아지 아픈 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불안과 근심을 내려놓고 명상에 집중할수록 강아지의 병세는 점점 나아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꾸준히 명상을 하며 마음 치유를 했다. 초반엔 힘든 일이 있을 때만 명상을 했는데 이제는 습관처럼 명상을 하게 됐다. 나를 컨트롤하고 평안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러자 어떤 불안도 나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컴퓨터 초기화를 한 것처럼 무의 상태로 돌아가니 평안함을 찾았고, 나를 이해하는 여행도 되었다. 내가 변화하자 나의 상황도 변했고, 주변의 문제는 저절로 치유되었다.


명상을 하며 감정에 속지 않는 법을 배웠다. 감정은 나 자신이 아니다. 분노하는 감정은 분노하는 내가 아니고, 억울한 감정은 억울한 나 자신이 아니다. 무서운 감정도 무서운 내가 아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나를 착각하게 만드는 함정일 뿐이다. 감정을 흘러가는 강물처럼 놓아주면 다시 평온의 상태로 돌아간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나는 내 눈대로 세상을 보게 된다. 나의 세계에서는 사랑이 있고, 공포가 없었으며 미움은 사라진다. 명상을 하면서 얻은 선물이었다. 이건 우주의 먼 공간에 떠있는 우주 정거장에서 지구 속 나를 내려다보는 일과 같았다. 햄스터장의 햄스터가 제 앞에 케이스 벽을 뚫을 순 없지만, 주인이 손을 내밀면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강아지가 아팠던 건 운이 나쁜 일이었지만, 사실 갑작스럽게 생긴 일도 아니었다. 병원을 무서워하고 이별을 두려워하는 내 마음이 세상 바깥으로 표출된 사건이었다. 나는 언제나 병원을 회피하여 살았었으니까. 결국 그 두려운 마음이 풍선처럼 커져서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간절히 낫길 기도하는 나의 염원과 에너지가 강아지의 에너지 파동과 맞닿아 기적을 이루어냈다. 이 과정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없어졌다. 때 묻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정화된 손길을 통해 강아지는 살아가는 탄력성을 길러냈다.


강아지를 처음 데려온 날. 그 어린 몸은 아팠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좌절했었다. 그 시절 나는 병들었던 어릴 때의 과거와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픔의 공포가 있었다. 정도 들기 전에 강아지를 떠나보내야 한다니.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강아지를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강아지가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강아지가 내게 돌아온 건 기뻤지만, 언제나 내 곁을 떠날 수 있다는 공포가 마음에서 똬리를 틀고 자라난 모양이었다. 공포는 내가 겁먹는 걸 보고 기뻐하며 몸집을 키웠다. 어느 곳에 가든 나를 잡아먹었다. '네 강아지는 언젠가 아프게 될 거야' 악마처럼 속삭였던 그것과 작별하니 두꺼운 옷을 벗어던진 것처럼 온몸이 가벼워졌다.


병원의 공포와 질병의 아픔에서 얽매이지 않는 연습을 했다. 공포가 느껴지면 명상으로 받아들이고, 공포가 나가길 기다렸다. 내가 치유되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강아지가 신나게 뛰노는 모습을 상상했다. 어딜 가든 강아지가 나와 같이 걷는 그림을 그렸고, 병원은 나와 강아지를 돕는 공간이라고 여겼다. 그 이후 강아지는 점점 나으며 건강함을 보여주었다. 결국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졌다.


강아지가 못 걷고 다리를 끌고 낑낑거릴 순 있지만, 그 일은 강아지가 쉽사리 죽을 일은 아니었다. 다리가 아픈 강아지를 데리고 살 수 없는 나의 약한 의지가 두려움의 괴물을 만들어냈다. 어떤 형태든 받아들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강아지는 나의 긍정적 변화를 알아차렸고 자신도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버텼던 것이다. 고맙게도 강아지는 내 마음에 연결된 사랑 그 자체였다.  

공포와 겁이 사라지자 어떤 일이 벌어져도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어떤 감정도 놓아버리고, 어떤 세상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자 좋은 일이 벌어졌다. 그날 이후, 나는 명상과 마음 치유에 더더욱 관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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