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거의 10년 넘게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교실에 들어가면 여럿이서 나를 보고 웅성거린 적도 있고, 심심풀이로 샀던 반지를 끼고 등교한 날엔 내 반지를 본 애들이 '원조 교제하는 아저씨와 반지를 맞췄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내서 해명을 한 적도 있었다.
학교폭력 트라우마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 가면 눈치를 보거나 불편해졌다.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못 타서 계단으로 십몇 층을 걸어가곤 했다. 낯선 건물 내부에 들어가는 행위도 교실이 생각나서 다시 나오기 일쑤였다. 하다못해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만날까 봐 우리 동네를 가볍게 돌아다니지도 못했다.
간혹 그 애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나만 얼굴만 알아볼 뿐 그 애들은 갈길을 갔다. 겁이 났던 나는 집 앞을 잠깐 나갈 때도 모자를 쓰고 다녔다. 땀이 나서 머리가 간지러웠고, 앞이 보이지 않아서 불편했다. 축축하고 더러워진 모자를 벗던 어느 날 현타가 세게 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의문이 들었다. 그 순간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이겨내 보자고, 내면이 소리쳤던 것 같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트라우마를 이겨내자고 결심했던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모교에 방문하는 일이었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가 '상처와 마주하는 것'이다. 아마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듯싶다. 학교는 내게 상처이자 결핍이었지만, 용기를 내서 마주 보고 싶었다. 따돌림을 방관한 선생님들을 만나고 싶진 않았고, 애틋한 만남 따위 없었지만, 어린 시절 아팠던 나를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쉬는 날 저녁쯤 학생들과 경비원이 없을 때 학교에 몰래 들어갔다.
어른이 돼서 마주한 학교는 세월이 흘렀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그대로였다. 가장 놀란 점은 학교의 규모였다. 어른이 걷기엔 복도가 무척 좁았고, 내부도 허름했다. 당시에 내게 학교는 그저 무섭고 힘든 곳이었다. 그 세계는 나를 옭아매는 커다란 그물 같았는데, 어른이 되어서 마주한 학교는 그저 '작은 세계'였다. 지금 내가 두 발로 걷고 있는 이 세계가 오히려 바다처럼 넓었다. 학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미소가 지어졌고 힘이 솟았다.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 작은 학교에서 아마도 선생님이든 학생들이든 무서워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선 먼지 쌓인 책장으로 갔다. 학교 졸업 앨범을 펼쳐보며 그때 선생님과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 얼굴을 보았다. 여태껏 앨범을 본 적이 없었다. 과거의 아픔이 나를 괴롭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앨범을 보기 전엔 일진들을 떠올리며,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 마주한 얼굴들은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을 갖고 있었고, 오히려 앳되고 풋풋한 느낌도 들어서 미묘했다. 어른이 된 내가 보기엔 그저 키 작고 머리에 피가 마르지 않은 철없는 십 대였다.
그 얼굴을 확인하니 어린 시절의 나를 토닥일 힘이 생겼다. 어린 시절의 내게 말해주고 싶었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들은 그저 철없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날 밤 나는 어른이 된 내가 어린 시절의 아팠던 나를 감싸주고 편 들어주는 애틋한 일기를 썼다. 그러자 학폭을 당하던 시절을 떠올려도 더 이상 무섭거나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가해자였던 친척 언니나 악질이었던 몇 명은 이런 방법도 통하지 않아서 분노가 치밀었다. 결국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방법은,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게임한다는 소리가 뜬금없을 수 있지만 합법적이고 기발한 치료를 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하던 게임은 얼굴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 이름, 지인, 가족, 악역까지 직접 지정해줄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용서되지 않는 그들의 이름을 빈칸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전투적으로 그들을 공격했고, 때려눕혔다. 코믹하고도 소소한 복수였고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 무력도 아니고 단순히 게임 그래픽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짜릿한 기분이 들었고, 마음이 풀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언젠가 시에서 주최하는 '영상물 제작 수업'을 들었다. 그 모임에서는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영상물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나는 대본을 썼다. 주제는 자유였는데, 나는 학교폭력을 선택했다. 학교폭력에 상처받은 사람이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다가 치유받는 이야기를 짧게 썼었다. '꼭 이걸 해야지' 같은 마음은 없었지만, 마음 가는 대로 줄거리가 나왔다.
피드백을 받았다. 대본은 좋지만, 엑스트라를 구할 수 없어서 제작은 힘들 것 같다고. 제작이 취소가 되고 속상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일주일 동안 골머리 쓰며 대본에 몰입하느라, 그 과정에서 나왔던 스토리가 나름 마음에 드는 엔딩으로 마무리가 되면서 흡족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힘써왔던 것을 알아차렸다. 23살 때 처음 연재했던 소설도 '학교폭력' 키워드를 갖고 있었고, '학교폭력'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일러스트레이터를 좋아했었으며 틈만 나면 '학교폭력'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피해자들에게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학교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옛날엔 학교와 비슷한 공간만 들어가도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었었지만, 지금은 고통을 놓으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