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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메리 Nov 05. 2022

밥심이 있어야 산다.

상처 회복에 도움되는 약은 단연 '밥'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끼니를 자주 거르고, 단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아이였다.

엄마가 나를 키울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면, '밥을 잘 먹지 않는 것'이었다.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해도 밥을 먹지 않고 혼자 논다든가 잠을 잔다든가 밥투정이 아닌 밥투정으로 그저 밥 먹기를 꺼리는 아이였다고 한다.

나역시 뚜렷하게 기억한다. 어릴 적부터 '빼빼로' 아니면 '젓가락'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 성인이 되던 해. 은둔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나의 주식은 대부분 '생라면'이었다.

가족들이랑 식사를 하면 늘 싸우기만 하니 식사시간에 빠지기 일쑤였다.

보통은 밥맛도 없는데 배는 고프고. 가족들이 없을 때 부엌을 어슬렁 거렸고 눈에 띄던 것들은 라면 봉지였다. 재빠르게 라면 봉지를 방으로 챙겨 온 나는 그때부터 생라면을 먹었다.

가끔은 나도 배가 고파서 그때그때 유행하는 음식들을 찾아보곤 했었다.

'엽기 떡볶이', '훠궈' , '버블티', '김피탕' '편의점 마크 정식' 등등...

음식 사진 검색을 마치면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최소한의 행복도 못 누리는 죽은 사람 같았다.


배달원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서 배달을 시키지도 않았고,

먹으러 가자니 집안에만 머물러 은둔하는 나에겐 무리였고

애초에 돈도 없으니 음식 사진이나 tv 프로를 보며 대리만족했었다.

꼬르륵 뱃소리가 나도 참고 또 참았다. 생명 연장할 정도로만 먹고 살았다.


당시엔 요리하는 블로그, 요리하는 웹툰, 요리하는 방송 등 쿡이 유행이었는데,

요리를 하자니 젓가락 들 에너지조차 없는 게 현실이었다.

결국 나는 은둔하는 동안 밥도 제때 잘 안 먹고 인스턴트만 찾아서 건강에 악 신호가 왔다.

평소에 생라면, 과자나 주워 먹으니 건강한 몸과는 거의 작별한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변비를 달고 살았고, 역류성 식도염에 기관지도 나빠져서 천식이 있었다.

아플 때도 나는 죽 대신에 생라면을 먹었다. 먹는 게 중요하다는 걸 몰랐다.


아프지 않는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먹는 밥의 중요성을 기본적으로 알고있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만나면 밥 얘기를 하고, 밥 먹자고 인사를 나눈다.

물론 그들도 아픈 일이 생기면 끼니를 놓치게 된다.

(먹방으로 유명한 입짧은 햇님 님도 실연 당했을 때 밥을 안 먹었다고 한다.)

카프카의 단편 중 '단식광대'가 유명한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음식이라는 건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는 요소이자 인간의 행복 중 하나이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밥먹는 행위에도 의미를 담고 이해하고 노력해야 한다.


건강은 잃을 대로 잃고 아픔이 닥쳐서야 정신이 들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숟가락을 드는 것이었다.

부모님께 타박을 들어도 상처를 입어도 눈물을 흘리면서 밥을 먹었다. 일단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정확한 식사 시간을 정하고, 밥맛이 없어도 밥을 먹게 되었다.

내가 당장 집에 있더라도 밥은 아무 때나 먹지 말고 정해진 식사시간에만 먹는다.

악영향을 끼치는 야식은 최대한 줄이고, 설탕과 탄산을 줄이고 콤푸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먹는 일이 재밌어졌고, 먹성이 생겼다. 그때부터 직접 요리를 해보고

맛집 음식을 어설프게 흉내 내며 먹어보고 음식에 눈을 떴고

나 혼자서 잘 먹고 잘살기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은둔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밥을 잘 못 먹는다.

만일 내가 은둔하던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게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이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배달 음식도 좋고, 성의 있게 요리한 음식도 좋고.

락앤락에 정성껏 넣어서 방 앞에 가져다 놓고, 먹으라고 하고 싶다.

일단 밥부터 먹어야 된다. 밥심으로 허기진 영혼과 마음을 채워야 온기 있는 사람이 된다.

그래야 그때부터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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