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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메리 Mar 08. 2024

우울할 때마다 글을 썼더니 시가 되었다

우울증일 때 글 쓰다가 자가치료가 된 이야기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때는 2012년도. 나는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은둔하느라 누굴 만나지도 않았다. 하다못해 가족들과 소통도 단절한 상태였다. 방 안에서 먹고 자고 일어나며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보냈다.


답답한 속을 털어놓을 길이 없었다. 그때 나에겐 상담 선생님도 없었고, 속사정을 들어줄 친구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장문의 글은 호흡이 버거웠다. 씻기도 힘들고 전화도 받기 싫어서 수신 전화를 거부하던 때였으니, 짧은 글을 썼다. 여백의 미도 좋고 상상의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

글을 어떻게 쓰는지,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썼다. 형식은 시와 비슷한 글을 이었다. 당시 글들 대부분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가 난다.


*


나는 죽었다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나를 죽였다

깨어나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설움을 닮은 고독 속에서

날이 밝은 소리


바람 따라 풍겨오는

컴컴한 새벽 냄새

아득한 삶의 시끄러움


나는 또다시

단조로운 몸을 이끌고서

쳇바퀴를 돌린다


*


위의 시는 2012년 5월에 썼다. 제목은 <시늉>.


사람은 고독이나 힘듦, 외로움 같은 감정을 어떻게든 표현하며 산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그것을 노래로 부르고, 친구가 많은 사람은 전화를 하거나 수다를 떨고, 잘 먹는 사람은 요리를 하거나 먹는 식으로. 나는 그게 글쓰기였다.


이것이 시인지도 모르고, 우울한 기분이 들 때마다 시를 썼다. 원래도 메모를 적거나 끄적이는 걸 좋아했었다. 버디버디 시절엔 홈피 메모장에 어울리는 문장을 썼고, 싸이월드에도 그럴듯한 감성 글을 연재했었다. 이제 보니 나의 취향이 확고한 것 같다.


우울할 때마다 쓴 글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게 먹혔다. 예상치 못한 관심을 받았다. 블로그를 방문하는 이들은 전부 글을 보려고 오는 사람들이었다. 그건 나는 일이었다. 누군가 나를 알아준다니. 실제론 방에만 틀어박혀 살고 있는데! 실제론 친구 한 명이 없는데! 블로그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눈치 빠른 사람 몇몇은 우울증을 걱정했다. 우울할 때 쓴 글이니 당연히 우울한 게 당연지사. 나는 그때마다 괜찮다고 쿨한 척 댓글을 달았지만 뜨끔했다.


다른 한편으로 시나 문학이 도움이 되었던 이유는 우울증이 컸다. 문학은 우울과 꽤 가까운 사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어떤 시인은 '시 쓰는 사람들은 슬픔 중독증에 걸린 듯 하다'고도 표현했다. 그 정도로 문학은 우울하고 고독한 얼굴을 보여주기에 알맞은 영역이다.


그걸 무의식 중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담 없이 계속 시를 지었다. 우울은 가장 좋은 재료이니까.  막힘없이 쓸 수 있었다. 내가 쓰는 것이 시인 줄도 모르는 채 말이다.



2012년도에 쓰던 노트. 거의 메모장이자 일기이자 우울 처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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