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향한 거북이의 질주 - 1화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

by 달빛기차

※ 이 이야기는 성인 독자를 위해 재해석된 '토끼와 거북이'입니다. 시작합니다.


아직은 여물지 않아 말캉한 등딱지가 맘에 들지 않던 시절.

귀를 쫑긋 세운 모습이 귀여운 분홍색 털 토끼를 향해, 옹골찬 선언을 했다.

“네 간은 내가 지켜 줄게!”

“호호호, 토끼는 좋겠네 이렇게 좋은 친구도 있고.”

기린 선생님은 기분 좋게 웃으시며, 우리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분홍 털 사이로 붉어진 얼굴이 사랑스러운 토끼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날 우리는 정말 간을 지켜주는, 건강한 관계가 됐다.


우리들 아버지는 서로 친한 친구 사이셨다. 처음부터 친하셨던 건 아니고, 아주 유명한 일화를 통해 죽마고우가 된 경우다.


분홍 토끼의 아버지는, 화려한 색으로 유명한 토끼계에서도 흔하지 않은 검은색 털을 보유하셨다. 그분은 젊은 날 희귀한 털색만큼, 옆 동네까지 알려진 유명인이셨다고 한다. 좋은 말로 한량, 좋지 않은 말로는 날라리로 유명했는데, 그분은 그래도 됐다. 똑똑하고, 잘생기고, 부자인 삼박자 금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에 뭘 해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이라면 SNS에 박제돼서 인생 피곤해졌을 테지만, 아버지 세대는 그랬다니 믿을 수밖에.


거기다 토끼계에서도 다시없을 0.1%의 근벅지와 여치를 닮은 날렵한 다리를 보유하셨다. 그래서 육상부에서 삼고초려해서 어쩔 수 없이 육상 선수 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선수 생활이었지만, 그 재능은 천재적이었나 보다. 하늘은 왜 한 마리 토끼에게 몰빵해 주었는지, 너무 불공평하다고 술에 취한 아버지가 딱 한 번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선수 생활 시작하자마자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1등을 하시면서, 다이어수저로 진화하셨다. 그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천재’가 운동을 열심히 하셨을까?

그럴 리가, 호랑이 담배 끊는 소리다. 그냥 출석체크만 했다고 하신다.

“하- 운동 연습? 그걸 왜 합니까? 그냥 걸어도 이기는데. 내 오른손의 흑염룡만 있다면 어디든….”

객관적인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당시 검은 토끼 아저씨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중2병의 말기였다고 한다. 흑염용리나... 분홍 토끼가 절대 닮으면 안 되는 모습이다.


‘저놈의 오른손을 소독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는 꿈은 망한다’라고 당시 육상부 선생님은 생각하셨다고 한다. 참고로 그 육상부 선생님은 우리 할아버지다. 세계대회에서 1등은 못 해보셨지만, 거북이계에서는 1등 독점 선수로 맹활약하셨다. 그래서 포유류계의 육상코치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할아버지도 삼고초려 뭐 비스무리하게 코치직을 수락하셨다고 한다. 그런 만큼 검은 토끼 아저씨에 대한 진단은 정확했다고 생각된다.

흑염룡에 물들어가는 검은 토끼 아저씨를 보며, 할아버지는 평소 하루 5만 보 걷기를 해내는 아버지가 생각났다고 하셨다. 아버지를 재능이면 몹쓸 흑염룡을 소환 해제시킬 수 있다는 확인이 들었다고 하신다. 그 후 두 분을 한자리에 자주 부르며, 대놓고 비교해서 두 분의 승부욕을 자극하셨단다.


"검은 토끼 네가 잘 달리는 건 맞지. 달리는 것만 잘하지 끈기가 없어. 반면 우리 아들은 느리니 달리는 건 1등 못해도, 마라톤은 너한테 안질 걸? 아니 확실히 네가 진다."


중2병의 자존심은 보기 좋게 작전에 걸려들었다. 아버지와 검은 토끼 아저씨는 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시합을 했고, 지셨다. 알려지기로는 시합 중간에 낮잠 주무셨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그 정도로 자만하는 분은 아니었고, 그냥 단거리가 맞는 선수였다. 할아버지 분석 대로 지구력 부족이 패배 원인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인생 처음 1등이란 것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알 깨던 힘까지 다해 뛰셨다고 한다. 남들은 걸었다고 하지만. 그리고 차지한 1등의 달콤함은 평생 잊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평소 하루에 한마디도 잘 안 하시는 과묵하신 분이 그 말씀만은 만 번쯤 하신 듯하다.

아무튼 그 경기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된 두 분은 세상에 다시 있을 흔한 죽마고우가 되셨다. 그리고 우리도 그 덕분에 같은 유치원을 다니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독창적. 토끼와 거북이 우화. 검은색 털 토끼 , 중2병, 오른손에 흑염용. 거북이 성실, 하루 5만보. 3D형태로 생성요청..jpg @Canva 생성

아참!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 경기 뒤에 검은 토끼 아저씨는 결국 흑염룡을 방생했다고 한다.

“파충류한테 졌다고? 하하하- 그것도 육지에서? 하하하-“

분홍 토끼 할아버지가 승부에서 진 아들에게 한없는 비웃음을 선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집도 좀 이상하다. 아무튼 검은 토끼 아저씨는 중2 병도 해결하시고 국가대표가 돼서 지금은 성실하게 달리고 계신다. 그런데 신기한 건 분홍 토끼다. 어떻게 그런 ‘와일드 날라리 한량’ 검은 토끼 아저씨한테서, 말캉말캉한 푸딩 같은 분홍 토끼가 태어났을까? 녀석은 똑같이 ‘똑똑하고, 잘생기고, 부자인 삼박자 금수저’임에도 한량은커녕, 수도꼭지다. 옆구리 쿡 찌르기만 해도 눈물을 왈칵 흘리는 고장 난 수도꼭지.


“흑…흑흑…으아앙…”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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