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향한 거북이의 질주 - 2화

말랑푸딩 토끼와 강철 등딱지 거북이

by 달빛기차

※ 이 이야기는 성인 독자를 위해 재해석된 '토끼와 거북이'입니다.


“흑…흑흑…으아앙…”

“토끼야, 왜 울어! 이건 지나간 일이야. 봐봐 토끼의 간은 지켜졌잖아!”

우리의 역사 시간에 ‘토끼의 간은 어딨는가, 용왕의 비정함에 대하여’란 이야기를 듣고, 목놓아 울고 있었다. 자신의 간도 빼앗길까 봐 걱정이란다. 포유류로 태어나서 새가슴을 하고 있으니,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지. 아주 걱정되는 부분이다.

“으아앙…나도 간 놓고 다닐래...흑…흑 ”

“토끼야. 간은 빼놓고 다닐 수 없어. 우리 토끼 이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하지? 아무래도 내가 지켜줘야겠다. 내가 듬직한 닌자가 될게! 그래서 네 간 지켜줄게 그러니 울지 마!”

“정말? 흑…흑흑…”

“응, 정말! 네 간은 내가 지켜 줄게!”


분홍 토끼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내 꿈은 거북이계의 일류 닌자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랑푸딩 같은 녀석은 내가 지켜줘야 하기 때문에, 내겐 강철 등딱지가 필요했다. 아직 내 등딱지는 분홍 토끼보다 말캉말캉하다. 이 사실을 분홍 토끼가 알기 전에 빠르게 닌자의 길을 찾아볼 예정이다. 그러려면 닌자 학교라도 가야 하나?


“응. 너만 믿을 게!”

해맑게 웃는 분홍 토끼를 보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 아름다운 우리의 우정이 영원하길.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별은 약속 없이 멋대로 찾아오고 있었다.


검은 토끼 아저씨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한라산에서 검은 귀를 휘날리며 달리고 싶다’고 하셨다. 도시 속 산은 영 달릴 맛이 안 나신다나? 하-한라산도 도시에 있는데, 무슨 소리 신지. 검은 토끼 아저씨는 가끔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그럴 때마다 분홍 토끼가 걱정된다. 그냥 한라산의 한라봉이 드시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왜?’

아무리 한라봉이 좋아도, 왜 꼭 한라산이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어른들은 검은 토끼 아저씨가 '뛴다'라고 한 것만으로 잔치 중이시다. 결국 제주도로 이사 가는 것은 확정됐고, 우리만 눈물의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Canva생성


“히잉. 나 한라산 싫어.”

“응, 한라산은 나도 싫어. 너무 높아. 그래도 너 한테는 분홍 귀를 휘날리며 달리기 좋을 거야!”

“넌 나랑 헤어지는 것이 좋아?”

분홍 토끼는 섭섭함이 가슴에 사무치듯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말했다. 저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면 가슴이 아플 것 같아서 빠르게 눈물이 들어갈 말을 골랐다.

“당연히 싫지. 널 볼 수 없잖아. 그게 얼마나 속상한데.”

“그런데 왜 그래. 나 그냥 너희 집에서 살까?”

“너 우리 아버지 괜찮아?”

분홍 토끼는 잠시 고민을 하듯 눈동자가 왼쪽으로 올라갔다. 다시 오른쪽으로 올라가더니 부르르 떨려왔다. 평소 말이 많고 활기찬 분홍이네에 비해 우리 집은 적막한 편이다. 워낙 말이 없으신 아버지를 따라 식구들이 다 조용히 있다 보니, 절간이 따로 없다. 나만 빼고. 그럴 때는 얼마나 눈총을 받는지, 나도 집에서 말할 때는 눈치 좀 본다. 그러니 분홍 토끼는 우리 집에만 오면 바들바들 떨며 눈치를 보곤 했다. 나는 다시 촉촉해진 눈동자로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분홍 토끼의 등을 토닥였다.

“나도 너무 속상해. 하지만, 우리는 꼭 다시 볼 거야. 그때까지 우리 편지하자!”

“히잉. 정말 편지할 거야?”

“그럼! 그러니까 울지 말고 씩씩하게 뚝! 이별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고 너희 아버지도 말씀하시잖아.”

‘헤어짐’이란 단어에 ‘씩씩함’은 붙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알았어. 약속한 거야!”

우리는 아버지의 등껍질 정도의 단단한 약속을 하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리고 속절없이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연락을 받지도, 만나지도 못했다. 역시 남의 등딱지에 대고 하는 약속은 힘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눈물 콧물로 연락하자고 했지만, 분홍 토끼가 변심했다. 그럼 그렇지 흑염용 검은 토끼 아저씨 아들이 어디 가겠는가. 중2병이라도 걸렸는지 여러 번 편지를 보냈지만 단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못된 말랑푸딩 분홍 토끼 같으니라고. 몇 년은 꼬박꼬박 보내다가, 등껍질이 물러지는 마음에 100번째를 끝으로 펜을 놓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는 뜻하지 않게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다시 만났다.

그것도 입사 수석과 차석으로.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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