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향한 거북이의 질주 - 4화

라이벌 그리고 추월

by 달빛기차

※ 이 이야기는 성인 독자를 위해 재해석된 '토끼와 거북이'입니다.


나에게는 커다란 기회가 생겼다.

“이번 신규 사업 TF 팀에 우리 팀에서는 하이에나 대리랑 거북이씨가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거북이씨는 아직 신입이긴 하지만, 그동안 지켜보니 능력이 좋아요. 아이디어도 많아서 TF 팀에서 충분히 역할을 잘할 겁니다.”

“어머 잘 됐네요.”

“오, 분홍씨 대단한데!”
“오오!!! 축하합니다~!!”

선배들과 함께 분홍 토끼는 정말 축하라도 한다는 듯이 기쁘게 박수를 쳤다.

‘진심… 인가?’

그래 내가 너무 속 좁게 굴었을지도 모른다. 여린 분홍 토끼가 커봐야 말랑이지 얼음과자가 되진 않을 테니까.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녀석을 보며 반성했다. 물론 100통의 편지를 잊은 것은 아니다. 그건 내 단단한 등껍질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만큼 아픈 일이니까. 언젠가 꼭 이유를 들을 생각이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거북아! 진짜 축하해. 한턱 쏴~”

“그래 나중에, 일 마무리되면”

분홍 토끼는 진심인 듯 귓속말로 다시 한번 말했다.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속이 간질간질해졌다.

“그전에 밥이라도 한 번 먹자”

“그래.”

“오늘 어때?”
“아! 오늘은 TF 팀 멤버들끼리 회식한다고 해서...”
“어! 그렇구나 아쉽다. 그럼 다음에 먹자”

“좋아.”

생각해 보니 다시 만나고 나서, 단둘이 밥을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이 너무 바쁘기도 했고, 마음도 바빴다.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동기고 한 팀인데 몇 달 동안 한 번도 같이 한 적이 없다니. 간질대던 속이 다시 거북스러워졌다. 의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속 좁게. 이제라도 녀석과 다시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번에 밥을 먹으면서 100통의 편지에 대해서 물어볼 준비도 해야겠다.


하지만 그 다짐은 이뤄지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너무 바빴다. 일을 배워야 하는 입장이라 팀에서 맡았던 일을 그대로 진행하면서, 프로젝트까지 진행하느라 하루가 48시간처럼 필요했다. 점심도 챙길 시간이 없어서 자리에서 샌드위치로 때웠다. 정시퇴근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매일 같이 야근이 이어졌다. 몸은 지쳐갔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을 한다는 사실에 보람찼다. 등껍질이 더욱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바쁜 거 아니야? 하루쯤은 쉬어 가면서 해.”

뭣모르는 분홍토깽이 같으니라고. 아무래도 이런 큰일을 맡아본 적 없는 녀석이다 보니 생각이 단순했다. 프로젝트는 기회이지만, 조금만 삐끗해도 그대로 무너질 수 있다. 아주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쉬라니. 난 단호하게 “안돼!”라고 한마디 했다. 설명할 시간도 아까웠다.

한참이 지나고 보니 퇴근시간이 지나 있었다. 자리에는 초밥이 놓여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거 토끼씨가 두고 갔어요. 둘이 친구였다며?”

@Canva생성

나의 야근 메이트 오소리 선배였다. 늘 나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가는 선배는, 길어지는 야근에 든든한 동지이자 롤 모델이었다.

“덕분에 나도 하나 받았지. 호호 잘 먹을게요~”



오소리 선배는 초밥 도시락을 살짝 흔들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분홍 토끼가 산 도시락을 왜 나한테 고맙다고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감사는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아- 네. 맛있게 드세요.”

다시 도시락을 바라봤다. 문어, 광어 등 내가 좋아하는 생선들로 구성돼 있었다. 마음 한편에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이 프로젝트만 성공하면, 모두 보상하면 된다. 성공만 하면, 동기 중 가장 빠른 승진을 할지도 몰랐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일을 시작했고, 시계는 고장이라도 난 듯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 분홍 토끼는 밥 먹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 가끔 간식을 가져다 놨다. 그리고 내가 간식을 발견하고 고마워서 돌아보면, 녀석은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그럴 때면 나도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휴-우. 아니야, 성공을 위해서는 참아야지. 이번에야말로 꼭 일등으로 승진할 거야. 그래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는 거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야근에 매진했다.

사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내에는 알게 모르게 분홍 토끼와 회색 등딱지 거북이인 나를 두고 말이 많았다. 우선 입사부터 수석과 차석이었으니까,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대학도 차이 나는데 친구라고 하니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자득된 것 같았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비교를 하는 동물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왜 수석이 아니라 차석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는지.

나도 그것이 의문이긴 하지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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