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사랑이 사랑을 말할 때
관계의 본질은 책임이며, 사랑은 가장 본질적 관계이기에 특별한 책임을 요구한다. 사랑의 몰입이 주는 도취적 행복을 지나 언젠가 찾아오는 아픔은 사랑이 우리에게 내미는 청구서다. 쉬운 쾌락과 단절, 성적 긴장만이 있는 유사 사랑에는 책임이 없다. 사랑의 책임을 회피하는 이들은 자신이 지난 자리를 불태우고 떠나는 관계의 화전민이 된다. 그러나 사랑이 사랑인 이유는 좋은 때만 좋은 것이 아닌, 아픔과 고난을 마주할 때 진정 힘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사랑이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사랑이 주는 도취적 행복의 이면에는 노여움과 슬픔이 있고, 그로 인한 관계의 아픔이 있다. 나는 왜 상대가 되지 못하느냐고, 상대는 왜 내가 되지 못하느냐고. 이 본질적인 한계는 우리에게 도취적 행복을 넘는 존재적 아픔을 준다. 이때 감정은 충동처럼 강하다. 노여움과 슬픔은 우리의 자아를 흔든다. 이렇게나 아픈 나를 제발 바라봐 달라는 외침. 그러나 그 '순간의 진심'은 자신과 상대,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끝을 암시하는 말을 하고, 사랑에 조건이 덧붙는다. 사실은 바라는 것이 아닌 것임에도. 어쩌면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랑이 조각이라면, 충동의 말과 행동들은 모양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의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조각을 새겨내는 목수의 손짓이 아니다. 깊은 자상을 내는, 생채기를 내는 칼질이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감정들, 애써 만들어낸 사랑의 숲을 불태울 지 모를 위태로운 불씨다. 이 생채기는, 불씨는 우리의 결의를 흔든다. 사랑의 결의를 위협한다. 사랑의 결의는 빛을 잃는다. 그것을 끝내 넘어서지 못한다면.
때로 사랑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사랑이 삶을 닮았기에 사랑하며 고난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의 결의는 고난을 이겨내게 한다. 나와 너는 녹아내리고, 우리로 거듭나게 한다.
사랑에서 어떤 순간 부끄러웠다. 그 마음을, 남긴 교훈을 새기고 싶었다.
당신과 사랑의 결의를 지키고자 문득 이 글을 남긴다.
쓰기를 멈춘지 오래였다. 삶을 사랑을 써야겠다.
사랑이 사랑을 말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