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희철 Oct 05. 2018

누군가에겐 짐짝, 나에겐 사랑.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전부였고,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내게는 사소했던 소개팅에서 만난 그녀.


스물셋..아마 넷 즈음 가을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때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권00군이 내게 소개팅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아 무슨~ 나 그런 거 안해~' 여러 번 거절했지만 포기를 모르는 그는 강하게 권했다. 마침 나는 아무도 만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못이기는 척 소개팅을 하기로 했다.  며칠 후 나는 아무런 기대감이 없는채로 인천 부평의 어느 카페에서 '여성 분'과 마주 앉았다.


"안녕하세요.. 권00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저는 문희철이고요. 학생이에요."

"아..네 저도요..! 저는 000이에요. 유치원 선생님이에요."

...


생전 처음보는 남녀가 서로에 대해 '연인이 될 가능성'(아니 목적이라는 말이 더 맞는 표현 같다.)을 두고 만난다는 건 퍽 자연스럽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그 날의 나와 '여성 분'은 둘 다 제법 어렸고, 기본적으로 소개팅이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 때 소개팅은 내가 두번째, 그 분은 세 번째에 불과했다. 어색한 탐색과 예의를 다하려는 태도. 서로의 이름과 관심사, 인천 부평 지하상가의 복잡함 같은 시시콜콜한 잡담이 이어졌다. 어느새 한 시간쯤 지나있었다.


"저녁 먹으러 갈까요?"

"네..!"

"뭐 좋아하세요?"

"저는 다 좋아요..!"


다 좋다는 말은 정말이지 어려운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사실은 무엇이 싫은지를 묻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내가 주도하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부평에 대해 잘 모르는데..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가던 고깃집에 갈 수는 없잖아. 그렇게 결정을 못한/않은 채로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부평 문화의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나와 그녀는 눈에 보이는 적당한 이자카야에 들어가기로 했다. 나가사키 짬뽕과 튀김st의 뭔가를 주문했다. 이내 그녀가 맥주를 두 잔 주문했다. 이때쯤 그녀와 나는 아주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편하지 않은 긴장'이 있었다.


맥주도 술인 것인지, 우리는 좀 덜 긴장한 채로 두 시간 정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새 시간이 제법 늦었다. 다음날 나는 아침 수업이 있었고 그녀는 출근을 해야했다. 우리는 말을 놓기로 했다. "다음에 또 봐!" 더 늦기 전에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세 시간 반 남짓 그 날의 소개팅을 생각했다. 예고에 없던 비가 왔다.


"그녀는 외모가 단아한 사람이지만, 나의 이상형(?)은 아니다."

"그녀는 고운 말씨를 가진 사람이지만, 나의 이상형(?)은 아니다."

"그녀는 좋은 사람같지만, 연인으로 지낼 정도 설렘은 없다. 그래 그녀는 나의 이상형(?)이 아니야!"


나는 제멋대로 결론을 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번 정도 더 만났지만, 그녀와 나에게는 연인 될 정도의 설렘도, 친구가 될만큼의 편안함도 없었다. 권 군은 아쉬워했지만, 애써 무엇이 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요즘은 좀처럼 하지 않는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에게도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카톡 프로필을 내려보는 취미(?)가 있다. 소개팅으로부터 몇 달 후, 그녀는 남자친구와의 사진을 올려두었다. 둘은 행복해보였다. 그녀는 사랑받는 것처럼 보였다. 1년이 지난 후 프로필 속 그녀는 순백의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턱시도를 입은 그녀의 남자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그렇게도 설렘이 없었다. 내게는 그랬던 그녀는 누군가에게는 운명같은 사랑이었다니.



누군가에게는 짐짝, 내게는 사랑

살면서 '사랑'이라 느낄 수 있는 사람을, 그런 순간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의심없이 사랑이라 느끼고 주저없이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기억.  

언젠가 내가 사랑할 이가 완전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완전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사랑한 너는 사실 대단하지 않다. 나 역시 그렇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짐짝처럼 사소하고

누군가에게는 자신만큼이나 소중할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별 의미가 없고

누군가에게는 전부인 의미일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듯, 내가 사랑할 이도 그럴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전부가 될 의미를 찾는 여정이라면, 그 여정은 어쩌면 이다지도 고된 걸까.

사랑은 어찌나 지난하고, 어쩌면 이렇게나 아픈 걸까. 우리는 얼마쯤 오고야 만 걸까.

굽이 굽이 돌고 돌아 난 길의 끝에. 소중하고 전부인 사랑을 나는, 너는

끝내 이루어낼 수 있을까.



나는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향기인 매력이 있다고.

그 매력에 대해

나는 과신도, 의심도 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짐짝이었던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일 것이다.

내가 사랑할 이 역시 그럴 것을 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서로에게 의미를 두고, 깊이를 가지기로 약속하는 것.


이제 나는 묵묵히 일상의 작은 일들을 해내야지.

나도 사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며


어쩌면 엉망인 당신도 사랑하기에 충분한 사람

누군가에게는 짐짝

내게는 사랑.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떠난 자리에, 같은 사랑이 올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