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들과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함께 사랑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
이 정의대로라면 저는 아마도 지금도 앞으로도 작가는 아닐 겁니다. 단 한 번도 '문학작품', '사진', '그림', '조각' 같은 예술품을 만들 생각은 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예술품을 만드는 사람이 '작가'라면 작가는 나의 팔자에 없겠다 싶습니다.
예술이 담긴 무엇을 만들, 작가가 될 생각은 도무지 하지 못했습니다. 쓰는 이가 작가를 참칭 할 수는 있겠으나 나는 글로든 무엇으로든 '예술품'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20대 내내 나는 대입 자소서, 논술 등을 가르쳤고, 대학 연구팀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일을 했죠. 내가 쓴 글들은 하나같이 목적이 너무나 뚜렷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쓴 목적은 '살기 위해서'였다. 겠습니다. 만들고 쓰는 것이 업이라지만, 이런 내가 어찌 예술을 하는, '작가'일 수 있겠습니까?
쓰는 기술로 먹고살던, 나는 어떤 단절을 만났습니다.
스물일곱에 입대를 했고, 훈련소에서는 한 소설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참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만나 처음으로 '소설가'는, '작가'는 꼭 멀리 있는 존재는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와 나는 언젠가 함께 무언가를 해보기로 기약했고, 2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사회로 던져진 그와 나는 더 많은 이들과 글쓰기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신하람 디자이너, 안솔티 작가와 함께 글쓰기의 즐거움을 나누는 모임 <윤문하다>가 시작되었죠.
우리는 함께 '윤문'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막 쓰고 있던 이들, 쓰기 시작한 이들은 지난 겨울부터 8개월 동안 글쓰기의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목적있는 글만 쓰던 나도 처음으로 나를 위해 썼지요.
그리고 기회가 닿아 에세이 단행본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를 쓰게 되었습니다.
쓰는 사람들과 쓰기 시작한 사람들은 부단히 썼습니다.
신하람 디자이너와 안솔티 작가가 편집장이 되어 그들의 일상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21인의 사랑에 관한 글 42편이 모여.
독립 잡지 <윤문하셨습니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윤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윤이 나도록 매만져 곱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보다 많은 것들을 윤문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관계, 감정, 말과 행동,
더 나아가 우리의 일상이 될 수도 있겠지요
시 쓰는 안솔티, 소설 쓰는 윤재성, 에세이 쓰는 문희철, 디자이너 신하람 이 4인은 어느날부터 삶을 윤문하는 방법으로 “쓰기”를 제안했고 쓰고 있던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윤문을 시작했습니다.
매거진 첫 호는 <내가 사랑한 것들>에서 우리는 사랑을 윤문했습니다. 다른 넓이와 다른 높이 다른 풍경과 다른 해상도 다른 주파수로 사랑을 어떻게 윤문해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우리는 당신도 쓰기 시작하길 바랍니다. 오늘도 윤문한 하루 되길!
- 기획 : 모임 <윤문하다> 운영진(문희철, 신하람, 안솔티, 윤재성)
- 편집 및 디자인 : 편집장 신하람
- 목차 구성 및 인쇄 : 편집장 안솔티
- 22명 작가들의 사랑에 대한 글(시, 소설, 에세이) 총 42편과 주제에 맞는 사진이 실려있습니다
- B5 사이즈 고급 용지로 233페이지 풀컬러 인쇄했습니다.
* <윤문하셨습니다> 1쇄는 인쇄로 가업을 잇고 있는 시인 안솔티가 직접 인쇄합니다.*
안솔티 "인쇄소는 놀이터, 글쓰기는 탈출구…'잘' 살아야 한다"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721565
* 추가 인쇄 및 발송은 6월 10일부터 주문 순으로 시작됩니다.
* 판매가 1권당 1.7만원. (*택배비는 착불로 별도입니다.)
* 입금계좌 : 국민은행 546902-01-395436 (예금주 문희철)
* 문의 - 인스타그램(@yoonmoonhada)/ Yoonmoonhada@gmail.com
https://forms.gle/j2bCEwaQ21APCEwf8
사랑의 여러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랑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나는 작가는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쓰는 것으로 삶을 채워가는 그런 삶은 그립니다.
쓰는 삶을 그립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십 년도 훌쩍 넘었습니다.
열 살, 열다섯 살, 스무 살, 스물다섯 살, 스물아홉 살.
처음은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소설로 바꿔서 썼습니다. 이른바 ‘팬픽’이었던 셈인데, 아직도 주인공의 이름이 기억납니다. 처음에는 영식이었고 그 다음 글은 수철이었으며 또 다음은 아레인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국적이 바뀐 이유는 순수문학을 쓰던 꼬마가 본격적으로 장르문학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내용도 극적인 변화를 맞아서, 눈 내리는 서울을 배회하던 주인공들은 가상의 세계에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차원으로의 외도外道는 고등학교 3년을 꽉꽉 채우고도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덕분에 남들 다 가는 대학은 문턱만 밟았다가 나와야 했고, 심지어 그것이 맞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뒤 없는 외길을 걸었습니다. 계속 장편소설을 썼고 단편소설을 썼고 생계를 위해 탄원서를, 선언문과 팜플릿을, 반성문이니 어버이날 편지니 하는 것들을 써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자책 세 권을 냈고 종이책 두 권을 출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억세게 운이 좋았다 싶습니다. 실력에 비해 좋은 성과를 거둬서가 아니라, 그만두기 직전의 문턱마다 행운이 찾아온 탓입니다. 놓으려던 펜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그래서 더 잔인한 작은 행운들 말입니다. 예술이 고통이라 말하지만 진정으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나의 집착입니다.
지난 몇 년간 제게 생긴 변화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싫어졌는데도 쓰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기에 그 싫음은 점점 커졌습니다. 소설은 악과 깡만으로는 쓸 수 없습니다. 소설은 쓸 것이 있어야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쓰는 소설들은 날마다 조급해졌고 조급한 제 글이 미웠습니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과정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그럼에도 글을, 소설을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 악에 받친 목적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저와 제 소설에게 죄스럽습니다.
지금은 다시 소설을 사랑하게 됐느냐, 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애매합니다. 저는ㅊ제가 애초 소설을 사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것은 소설로 인생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 성공의 단꿈, 부, 명예 같은 단어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사랑하게’ 되었느냐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더이상 미워하지만은 않습니다. 화곡이 출간되고 첫 스승을 만나며, 저는 비로소 글쓰기가 편안해졌습니다. 낭떠러지에서 한 발 비켜선 탓도 있겠고 나름의 성공을 거둔 탓도 있을 것입니다. 진작 학교를 갔으면 스승이 생겼을 거고 그럼 이렇게 돌아오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모든 것이 순리였거니 싶습니다. 내가 찾은 땅에 내 발로 서기 위한. 어쩌면 작가는 글쓰기를 사랑하기 전에 자신부터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지도 모
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소설가로,살고 있습니다.
https://forms.gle/j2bCEwaQ21APCEwf8
사랑을
'윤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