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트를 펴보는 것, 다시 펜을 드는 것, 다시 내 삶에 맞서보는 것
무언가를 하다보면 뭔가 잘 되는 것 같을 때도, 잘 안될 때도 있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어떤 기대를 안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잘될지 안될지는 알기 어렵다. 물론 성패를 어느 정도 가늠은 해볼 수 있겠다. 누군가 가진 [자원, 능력, 실력, 네트워크..etc] 이러한 지표들을 투입하면 결과들은 많은 경우에서 ‘이미 예상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사 사례들은 이미 결과를 말한다. 운이라는 변수를 감안해도 성공은 모르겠으나 실패는 대체로 예상이 된다.
대다수의 시도는 많은 경우 실패한다. 같은 이유로 나의 시도가 딱히 잘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세상에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는 없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그저 일개 개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의 어떤 시도가 좋은 때를 만나 잘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이것이 온전히 나의 덕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저 나의 ‘좋은’ ‘꾸준한’ 시도는 운을 잘 만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특출난 바보가 아닌 이상 저마다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닐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한들 사회인으로서 1인분의 책임을 다하는 이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때 ‘반드시 될 것’이라는 주술 같은 낙관은 하지 않는다. 성공할 대단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많은 시도가 확률적으로 예정된 실패인지 모르나 비관도 하지 않는다. 특히 나에 대해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 대다수는 씻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씻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살아남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튼 ‘씻기’는 살아남는 이들을 살아남게 했다. 무엇이든 해내려는 의지가 있기에 인간은 인간이 된다.
뭔가를 다시 해야한다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다. 매우 높은 확률로 그것은 잘 될리가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다시 내 자리에 앉을 용기를 내보는 것. 얼마나 팔릴지 모를 책을 쓰러 다시 노트를 펴보는 것. 다시 내 삶에 맞서보는 것.
포기하지 않는
다시 용기를 내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