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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Jul 11. 2019

#28 타임아웃 마켓에서 식사하기

이런 게 행복이지

혼자 여행을 하면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시간 중 하나는

바로 식사 시간이다.


그것은 결코 의자가 여러 개인 테이블에 앉아

홀로 식사를 하는 것이 어색하거나 민망해서가 아니다.

처음이 어렵지 먹다 보면 적응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여럿이서 식사를 할 때 누릴 수 있는 것들 -

다양한 음식을 주문해 맛보기,

함께 감탄하며 맛을 공유하기 등을 -

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곳에서

홀로 자리를 맡기가 쉽지 않았고

누군가와 함께 왔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아쉬움에 한몫을 더할 뿐이었다.


소지품으로 자리를 맡아두고

음식을 주문해 올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음식을 받아와서 자리를 찾기에는

먹는 시간보다 자리 찾는 시간이 더욱 걸릴 듯했다.


결국 주문한 음식을 모두 받아 들고

빠르게 자리가 빈 곳을 찾아 걸어 다녔고

(주문 미스가 나서 고생...  튀김 대신 생굴을 받아왔다.)


주류를 판매하는 바에서

화이트 와인 한잔을 주문한 후에야

음식을 올려둘 만한 간이 바 테이블 한 곳을

간신히 차지할 수 있었다.


타임아웃마켓에서 주문한 요리 (오건호 2019)

앉아서 식사를 할 수는 없었지만

음식을 놓고 먹을 자리가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허리 위까지 올라오는 테이블에 몸을 기대어

주문한 생굴 요리와 새우구이 볶음밥을 맛본다.


그 순간 한 겨울의 눈이 녹듯

여태껏 곤두섰던 신경이 서서히 풀리며

평온함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생굴은 알고 있던 맛과 다르게

비린 맛이 전혀 없었고

살짝 뿌린 레몬즙과 어울려

상큼하고 깔끔한 맛이 난다.


자연스럽게 와인잔에 손이 가고

화이트 와인 한 모금을 마시니

생굴이 남긴 여운과 섞여 청량감이 더해진다.


거기에 새우구이 볶음밥을 한 입 먹으면

버터향의 고소함이 입 안에 맴돌며

다시 생굴을 맛보고 싶은 구미가 돌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음식 맛의 궁합이랄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두 그릇의 접시를 싹 비우고

마지막 몇 모금 남은 와인을 털어 넣으니

포만감과 취기가 조금씩 감돌기 시작한다.


빈 접시와 잔을 직원에게 넘겨주고

타임아웃 마켓 밖으로 나오자

해가 뉘엿뉘엿 나의 눈높이를 맞추며

오른쪽 뺨을 비춘다.


햇빛을 향해 고개를 돌려 잠시 눈을 감고 서 있다가

뒤돌아 해를 등진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는다.

해가 따스히 등을 비추는 느낌이 포근하고 좋다.


불그스름해진 두 뺨은 늦은 오후의 붉은 기운과

닮아 제법 조화를 이루고,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으로

유유자적 걸어가던 나는

두 콧구멍으로 뜨끈한 날숨을 크게 내뿜고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래, 이런 게 행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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