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밤토끼 Oct 30. 2022

빨대 없는 아메리카노의 맛

우리 매장에 없는 것(1)

몇 달 전 남편과 오랜만에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아주 소소해서 내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에 놀랐고 또 즐거웠다.


카페 겸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를 운영하기로 결정한 뒤 쓰레기가 덜 배출되는 방식으로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 결정해야 하는 몇 가지가 있었다. '빨대 사용 여부'도 결정 사항에 포함되었다. 사용자 혹은 소비자 입장일 때는 관심이 적었던 것이 제공자 입장이 되려니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 고민하고 결정을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메뉴에 따라 빨대가 필요한 경우가 있으므로 빨대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면 그에 맞는 메뉴 구성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과일청이나 크림이 들어가는 음료는 빨대가 없으면 마시기 불편함으로 메뉴에서 제외해야 했다.


최근에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생분해 빨대와 종이 빨대도 있고 스테인리스나 유리로 된 다회용 빨대로 쓰레기 배출을 줄일 수 있지만 나의 커피 습관을 떠올렸을 때 빨대는 꼭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매장이 나의 습관과 취향에 치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장사를 할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커피 습관은 아메리카노나 라떼를 선호(빨대가 없어도 마시는데 큰 불편이 없는 음료), 테이크아웃보다는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는 편, 빨대가 꽂힌 상태로 커피가 제공되어도 빨대를 사용하지 않음, 테이크아웃 시 텀블러 사용(하려 노력), 그리고 집에서 커피를 마시게 되면 빨대를 사용하지 않았다(왜냐하면 집에는 사용할 빨대가 없으니까).


결국 우리 카페는 빨대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고, 음료도 빨대없이 마시는데 불편함이 없는 메뉴로만 구성하기로 했다. 아인슈페너가 유행하는 메뉴였지만 메뉴 구성 시 제외했고, 덕분에(?) 메뉴는 꽤나 간소해졌다.  


보스턴 여행에서 호기심으로 구입했던 실리콘 빨대. 구입 후 가방에 넣어다녔지만 실제 사용 횟수는 2,3번에 불과할 정도로 나에게 빨대는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부부는 2년 가까이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있고 고객들에게도 빨대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빨대가 반드시 필요한 고객이 있을 수 있으므로 다회용 실리콘 빨대를 준비해두긴 했으나 매장에서 음료를 마시고 가는 손님 중에 빨대를 요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녹은 얼음과 음료를 썩어주는 용도로 컵 사이즈에 맞는 스푼을 제공한다. 빨대 미제공에 호감을 표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혹시나 이것이 불편해 재방문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차가운 커피를 빨대 없이 2년 동안 마시고 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은,


커피 맛이 더 풍부하게 느껴지네요.


빨대 없이 커피를 마셨을 때 커피 맛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것이다. 나 역시 수년 동안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마시는 것에 익숙해져 미각을 느끼는 혀의 기능을 꽤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다는 점은 꽤나 놀라웠다. 혀는 부위에 따라 특정한 맛을 더 민감하게 느끼는데 단맛은 혀끝, 짠맛은 혀 가장자리, 신맛은 혀 양옆, 쓴맛은 혀 뒤쪽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2000년 이후에는 감칠맛(우마미)과 지방맛이 미각으로 추가되어 인간의 혀는 총 6가지 맛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빨대로 커피를 마시게 되면 커피가 혀의 특정 부위에만 닿거나 목으로 바로 넘어가기도 하니 혀가 커피 맛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2006년 <네이처>에서는 혀 부위별 느끼는 맛의 차이는 미미하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컵에 입을 대고 커피를 마시면 커피가 닿는 혀의 면적이 넓어지니 맛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입안 전체에 커피가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커피의 질감까지도 놓치지 않고 즐길 수 있으니 즐거움이 추가 된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빨대 사용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빨대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좋은(혹은 풍부한) 커피 맛을 조금 더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기쁨이기도 하다.

원두의 노트를 보면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난다고?’ 싶은 맛과 향이 그득하다. 빨대로 쪽 빨아 꿀꺽 삼켜버리기엔 그 복합적인 맛을 즐기기 부족하지 않을까.

흔히 커피 맛을 즐기는 방법으로 원두(품종, 가공법, , 로스팅, 신선도 등), 추출 방법, 다양한 커피 메뉴 등을 소개하는데 나는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마시는 방법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혀와 입안 전체로 커피를 즐기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커피의 새로운 맛과 질감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올테니까.


단,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커피를 마실 때 주의할 점은 커피의 좋지 않은 맛까지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는 것. 한편으론 취향의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를 조금 더 쉽게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멋있게 나이 들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