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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밤토끼 Jun 27. 2023

존재의 순수함을 찾아서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잖니.
어쩌면 우정 이상이었는지도.
난 네가 부럽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2018년 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中  펄먼의 대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티모시 샬라메, 목가적이고 고풍스러운 이탈리아의 시골마을, 좋은 사운드트랙, 훌륭한 퀴어 영화라는 점 등에서 인상적 작품이다. 일명 '콜바넴'이라고 축약한 영화 제목이 생길 정도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영화관에서 봤던 2018년, 나는 아주 조금이지만 열심히(?) 명상을 하며 마음의 번잡함과 늘 불만족스러운 나라는 존재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영화를 본 덕에 영화 말미 아버지 펄먼이  아들 엘리오를 위로하고 응원하던 시퀀스에서 나온 대사는 나에게 아주 큰 통찰력을 선사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언젠가 엘리오의 부모 같이 감정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를 처음 관람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나에게 '존재의 순수함'에 대한 이야기로 남아있다. 성소수자의 사랑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퀴어영화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나에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느끼고 수용할 때 인간은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명상을 통한 수행이 '존재의 순수함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임감 빼면 시체'라는 글에서 썼듯 아토모스는 '차별없는 가게'를 지향한다.  차별없는 가게라는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것은 '과거'의 배움과 일경험으로 지극히 나의 '비영리적'이고 '공공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흔히 사회학이나 정책을 다루는 영역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에게 좋은 사회라고 이야기하곤 하니까. 그래서 아토모스는 시작할 때부터 노키즈존/노시니어존이 아니었으며, 약간의 규칙을 안내하고 반려동물 입장도 가능했으며, 휠체어가 들어와도 공간 상의 불편함이 적도록 테이블을 배치했다. 본래 규모 작은 공간에 테이블 간격을 여유롭게 두었더니 테이블이 4개밖에 배치되지 않았지만 그 여유로운 간격이 방문하는 모두에게 편안함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매장 운영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넘어갈 무렵부터 흥미로운 모습을 포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반려견에게 끌려오다시피 매장을 들어서기도 했고, 갓 걸음마를 뗀 아기손님이 엄마보다 앞장서 매장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가끔은 문 앞에서 버티는 반려견과 아이 때문에 계획에 없던 커피를 마시고 가기도 했다. 숨김없는 모습으로 커피를 즐기고 가는 LGBT 커플들, 낯선 이에게 적극적으로 인사하는 반려견, 산책 중 인사를 하고 가는 반려견과 아기를 보며 '영리적'이고 '사적'인 공간의 편안함과 안전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방문객들로부터 반려견도 아기도 아토모스를 편안하게 느끼고, 아토모스에 가면 자기들을 예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여러 번 받았다.


매장을 운영하는 동안 내 핸드폰에는 남의 집 반려견 사진이 늘어나고 있다. 종종 휴무일에 대한 개념이 없이 방문한 반려견들의 시무룩한 뒷통수 사진을 받기도 한다.




차별없는 가게 캠페인은  '과거'의 배움과 일경험에서 시작했지만, 그 덕에 '존재의 순수함'과 순수함을 바탕으로 한 '온전한 상태'에 대한 배움을 방문객들을 통해 현재진행형으로 학습하고 있다.

 

몇 달 전 자주 방문하는 아기 DD가 매장 내에서 엎어진 적이 있었다. 울음을 터트리지 않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DD가 했던 첫마디는 "도와주세요"였다. 생후 25~27개월쯤 된 DD의 말에 문득 '나는 타인에게 저렇게 간절하고도 순수하게 도와달라고 요청해 본 적이 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최근에는 매장에 자주 방문하는 DH가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장에서 아주 가끔 마주쳤던 DH를 보곤 DD가 합석을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술자리에서도 합석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30세가 넘은 DH와 30개월쯤 된 DD가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을 보니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아마도 DD와 DD의 어머니, DH는 동네에서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는 되었을 것이다.




이용자 입장에서 상업공간을 평가하는 요소는 잘 준비되고 관리된 공간과 일하는 사람의 전문성, 서비스 정신이 우선적일 것이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장을 운영하며 알게 된 것은 카페를 이용하는 좋은 방문객들이 공간의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그들로 인해 또 다른 좋은 방문객을 이끈다는 것이다. 운영자가 'Wellcome All'을 지향하더라도 그 공간을 방문하는 고객이 'Wellcome All'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심지어 차별과 혐오의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면 그 공간은 긴 시간 좋은 공간으로 평가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토모스의 'Wellcome All'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 준 방문객들에게 감사하고 아토모스를 통해 존재의 순수함을 찾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길 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존재의 순수함을 찾아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길 바란다.


덧. 물론 아주 가끔 듣고 싶지 않은 차별과 혐오의 발언을 듣게 될 때가 있으므로 이 부분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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